▲ 11일 서울시내 한 주유소에서 차량이 주유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중앙뉴스=신주영기자]한국주유소협회가 12일 예고했던 동맹휴업을 유보하기로 함에 따라 정부와 소비자들은 일단 한시름을 놓게 됐다.

주유소협회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날부터 12일 새벽까지 10시간이 넘는 마라톤협상을 벌였으나 타협안을 도출하지 못하고 협상을 중단했다.

하지만 주유소협회는 정부가 전향된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오는 24일 동맹휴업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혀 갈등의 불씨는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다.

주유소협회는 석유제품 거래상황 기록부 주간보고제 시행을 2년 유예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산업부는 7월에 시행하되, 과태료 부과를 6개월 유예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계속 평행선을 달리던 협상은 주유소협회가 새로운 안을 제시하면서 진전되는 듯했다. 주간보고제 시행을 정부안대로 7월에 시행하되, 시행 후 2년 동안은 주유소협회가 회원사들로부터 보고를 받아 한국석유관리원에 이를 넘겨주는 종전 방식을 유지하겠다는 안이었다.

협회측이 종전 입장에서 물러선 것은 정부와 협상이 결렬돼 실제 동맹휴업에 들어갈 경우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소비자들을 볼모로 제 밥그릇을 챙기려 한다'는 비난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산업부는 그러나 협회의 수정안 역시 '6개월 이상'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혀 협상은 끝내 중단됐다.

그런데도 주유소협회가 동맹휴업 유보를 결정한 것은 사실상 휴업의 동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정부와 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 "주유소협회가 휴업을 철회했다"고 회원사들에 잘못 알려지면서 혼란이 벌어졌고, 협상의 주도권을 쥐지 못했던 점도 회원사들에게 실망감을 준 것으로 보인다.

또 정부가 동맹휴업에 참여할 경우 주유소 사업자를 처벌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휴업에 참가할 뜻을 밝혔던 주유소 업주들 가운데서도 이탈자가 상당수 나온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에 반해 정부는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에 힘입어 강경대응으로 일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주유소들의 동맹휴업에 대해 "국민을 위해 필요한 정책을 업계가 국민 생활을 볼모로 단체행동으로 막으려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다만 주유소가 우려하는 과도한 규제가 되지 않도록 보완할 점은 없는지 짚어봤으면 한다"며 산업부가 마지막까지 대화로 문제가 해결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주문했다.

주유소협회는 "대화로 문제 해결해달라"는 박 대통령의 주문에 일말의 희망을 걸었지만, 산업부는 오히려 협회를 비판한 발언을 더 주목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주유소협회와의 기 싸움에서 일단 승기를 잡은 모습이지만, 업계의 공감을 충분히 얻지 못한 채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다 갈등을 초래했다는 비판만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정부가 '석유제품 거래상황기록부 주간보고제'를 7월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히면서 시작했다.

주간보고제는 기존에 한 달에 1차례 보고하던 석유사업자들의 거래 현황을 매주 1번씩 보고하도록 주기를 단축한 것이다.

정부는 2011년 가짜 석유로 인한 주유소 폭발·화재사고가 발생하자 가짜 석유를 뿌리 뽑기 위해 이런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주유소업계는 이 제도가 모든 주유소 사업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과도한 규제라며 반발해왔다.

특히 거래상황기록부를 작성하려면 추가 인력을 고용해야 하지만 경영난으로 그럴 형편이 안 되고, 과태료가 늘어나 주유소 경영난이 심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주유소업계가 동맹휴업 카드까지 꺼낸 것은 그동안 정부에 쌓인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한 측면도 있다.

현재 국내 주유소의 수는 1만3천여개로, 포화수준인 8천 개보다 5천 개 이상 많다. 이는 정부가 1990년대 주유소간 거리제한을 폐지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2011년 '기름 값을 잡는다'며 정부가 도입한 알뜰주유소는 현재 1천38개로 불어나 주유소간 생존경쟁은 한층 치열해졌다.

이에 따라 지난 한 해 문을 닫은 주유소가 310곳에 달했고, 휴업한 주유소도 393곳에 이른다.

일각에서는 이번 싸움을 '협회의 밥그릇 지키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정부가 주간보고제를 시행하기로 하면서 보고기관을 주유소협회 등 각 소속협회에서 석유관리원으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주유소협회 관계자는  "협회는 회원들의 입장을 보호하고 대변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지 대단한 권한을 가진 곳이 아니다"면서 "오히려 정부가 한국석유관리원이라는 '관피아'를 내세워 시장을 통제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