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와 나라 사이의 교섭은 외교라는 이름으로 특별히 포장된다. 외교는 상대국을 존중하고 결코 배척하지 않는 것을 대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모든 교섭의 원천은 어느 누구와도 갈라 가질 수 없는 이익 확보에 있다.

갖출 수 있는 예의는 항상 정중하게 갖추는 것으로 겉맞춤을 하고 있지만 자국의 이익에 눈곱만큼이라도 해가 된다고 하면 결단코 물러설 수 없는 것이 외교의 한 단면이다. 따라서 외교는 힘을 바탕으로 한다. 힘이 없는 외교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할 수 있고 결국 상대국과의 교섭에서 그들이 요구하는 바를 따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구한말 제국주의 열강과의 외교전에서 치열한 두뇌 싸움을 거듭하였으나 무력(武力)의 뒷받침이 없는 힘없는 외교였기 때문에 일본에게 먹힐 수밖에 없는 처참한 위치로 변했다.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일본에게 내준 조선은 5년 후에 강제합방이라는 최후를 맞이해야 했다.

그 후 우리는 36년의 기나긴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 조선에 있던 모든 문화재는 탐욕스런 일본의 약탈 대상으로 수십만 점이 일본으로 유출되었고 숨어버린 것 말고도 10만점 이상이 아직도 일본을 떠돌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은 지금도 강제적인 한국지배가 한국의 근대화를 촉진했다고 변명하고 있지만 도로를 정비하고, 철도를 건설하며, 교육지평을 넓힌 것은 그들의 식민통치에 필요한 불요불가결한 요소를 보충한 것에 불과하다. 조선의 풍부한 쌀과 광물, 그리고 인재를 나르고 길러야 할 절대적 수요가 일본총독부로 하여금 인프라 건설을 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일본은 그러한 물질과 인적자원을 이용하여 조선통치를 일본의 이익에 맞게 효율적으로 시행했던 것이며 전통적인 조선 문화는 우선적으로 말살하는 야만적 정책을 꾸준히 진행해 왔다.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명분으로 조선인을 일본화 시키면서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한국어 사용을 금지하였으니 세계제국주의 역사상 가장 악랄하고 비열한 식민정책을 쓴 나라로 명명된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樞軸國)이 된 군국주의자들을 조선인들을 징병에 동원했고, 노무자로 끌어갔으며, 공출로 숟가락 하나까지 모두 빼앗아갔다. 심지어 나이 어린 처녀들을 공장노동자로 취직시켜 준다고 하면서 강제로 끌어가 군대위안부로 치욕적인 삶을 살게 만들었다.

위안부로 끌려가 인면수심의 일본군 성노예로 살아야했던 분들이 이제는 80이 넘은 할머니가 되어 불과 50여명만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다. 해마다 몇 분씩 세상을 떠나고 있어 그들의 마지막 소원인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와 피해보상이 일본정부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하나 아베 정권은 오히려 그들의 강제동원을 부인하고 있다. 삼척동자도 부인하지 못할 성노리개를 자청해서 갔다는 말인가.

일본군 위안부는 식민지 조선에서 가장 많이 끌어갔지만 중국,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일대에서도 다수 끌어갔으며 그들의 살아있는 증언으로 이미 확증이 잡혀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네덜란드에서도 위안부 할머니가 증언에 나섰으며 일본 여인들도 상당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1993년 일본정부 관방장관이었던 고노 요헤이(河野洋平)는 담화를 통하여 ‘위안부는 일본군에 의하여 강제 동원되었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정중하게 사과한 바 있다. 일본정부가 공식 대변인을 통하여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했다는 것만으로도 세계의 환영을 받았다. 전쟁에서 패한 독일이 공식적으로 시간 있을 때마다 잘못을 참회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과 같이 일본도 독일의 뒤를 따르는 것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정권이 바뀌자 또 달라졌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더냐싶게 고노 담화를 부인하고 끝까지 위안부 강제 동원을 없었다고 강변한다.

특히 우경화한 아베 정권은 이번에 고노담화에 대한 검증을 통하여 ‘이 담화 문안은 한국 정부와의 집중적이고 구체적인 조정에 의한 것’으로 폄훼했다. 자기네 정부 외교교섭이 주체적 결정이 못 되고 한국의 간섭을 받아 결정된 것이라는 발표다. 그렇다면 일본은 한국정부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인가.

이는 외교상 있어서는 안 되는 내면조정의 비밀까지도 스스로 폭로하는 것으로 두고두고 아베정권의 부담으로 남을 내용이다.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서 강경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외교단절’이라는 최후의 카드까지도 쓸 수 있다는 확고한 자세를 보여야 한일외교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외교가 정상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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