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에나 훈장제도는 존재한다. 훈장이란 국가가 개인에게 주는 가장 영예로운 포상이어서 누구든지 한번쯤은 받아보고 싶어 한다.

그런데 훈장을 받으려면 국가를 위해서 뭔가 큰일을 한 것이 있어야 되는데 필자 같은 신문사 대기자로서는 언감생심이다. 훈장을 받을 수 있는 직책은 군인들에게 기회가 많이 찾아온다. 특히 전쟁이라도 났다고 하면 무더기로 훈장이 수여된다. 나라를 지키기 목숨을 걸고 싸운 공로에 대한 당연한 보답이다.

무공훈장의 종류도 여러 가지다. 흔히 듣는 이름으로 화랑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등이 기억된다. 무공훈장은 오직 군인들에게만 해당되며 이번에 천안함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장병들에 대해서는 계급에 따른 서열대로 훈장이 수여되었다. 모든 훈장에는 급수가 정해져 있어 국가를 위한 공로가 클수록 높은 급수의 훈장이 수여될 것은 물으나 마나다.

국가를 위해서 평생을 헌신한 공무원들에게도 퇴직할 때 훈장을 주기도 하지만, 교육계에 근무한 선생님들에 대해서는 빠짐없이 포상한다. 여기에도 근무연한이나 교장, 교감 등 직책에 따른 훈장의 종류가 달라진다. 이처럼 공식적으로 정부에 근무하거나 군에 복무한 경력자들이 받는 훈장을 제외하고 일반인들이 훈장을 수여받을 기회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일반인들이 국가를 위한 공식적인 봉공의 기회는 많지 않으니까.

다만 일제에 항거하여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에 대해서는 지극정성으로 그들의 공적을 발굴하여 포상을 하고 있다.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도 조그마한 기록이라도 남아있기만 하면 찾아내고 있으며 중국이나 러시아 등 해외에 살고 있는 후손들을 찾아내 그들의 선조들이 이룩했던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널리 알리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정부부처가 국가보훈처다. 국가보훈처가 하고 있는 일은 여러 부처 중에서도 과거를 찾아내 미래를 살찌게 하는 일이다. 국가를 위해서 공적을 쌓은 사람을 포상하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귀감이 된다.

이런 업무를 맡다보니 간혹 엉뚱한 사람을 국가유공자로 양산하는 비위사실이 적발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묵묵히 맡은 바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필자가 이번에 훈장을 받은 것은 이미 50년 전의 4.19혁명에 대한 공로를 내세워서다. 당시 전북대학교 3학년이었던 열혈청년으로서 자유당정권의 무분별한 부정선거에 항의하여 대학생으로서는 최초로 4.4 시위를 주도하였다는 것이 수훈의 공적이다.


당시 대학생들이 부정선거 규탄시위에 가담한 것은 자기를 들어내기 위한 것도 아니요, 나중에 훈장을 받으려고 한 일도 아니다. 진리를 탐구하는 대학생으로서 부정부패를 그냘 놔둘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 길거리로 뛰쳐나오는 계기였다. 이를 총탄으로 제압하려 했던 이승만정부와 경찰은 180여 명의 희생자를 낸 끝에 결국 정권에서 쫓겨난다. 초등학생에서 대학교수까지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쏟아져 나와 부정선거를 규탄했다.

이 공적으로 훈장을 받는다는 것은 일면 부끄럽기도 하다. 데모에 참여했던 수많은 국민들이 모두 포상을 받아야 하는 일인데 나만이 중뿔나게 훈장을 받다니 하는 자괴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만인이 다 수상자가 될 수는 없겠기에 기록상 주도자가 확실한 사람들을 선정하여 4.19혁명 공로 건국포장을 수여하게 된 것으로 안다. 이번에 4.19혁명공로로 훈장을 받은 이는 모두 272명이다.

국가보훈처가 당시 발간되었던 신문과 잡지 등을 샅샅이 검토한 끝에 본인이 포상을 신청하지 않았어도 포상자로 결정한 처사는 참으로 올바른 보훈결정이다. 특히 대학교수 데모에 참여했던 분들은 대부분 노령으로 이미 고인이 되었는데 그 분들까지 찾아낸 것은 보통의 성의가 아니었다.


그 중에서 7명을 선정하여 4.19혁명 50주년 기념식에서 이명박대통령이 직접 훈장을 수여했다. 필자도 친수대상자로 뽑혔다.  TV생중계로 기념식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전혀 모르고 있던 사람들도 이를 보고 축하한다는 전화가 빗발쳤다. 다만 민망스러운 것은 만나는 이들이나 전화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포상금은 얼마나 주더냐하고 묻는 일이다.

때마침 천안함 장병들에 대한 막대한 포상금과 전사자 위로금에 대한 보도가 있었던 시점이라 건국포장을 받은 사람도 그러한 물질적 혜택이 있는 것으로 지레 짐작할 만도 하다.

그러나 훈장에는 돈이 따르지 않는다. 오직 명예일 따름이다. 자녀들의 학비지원이 있지만 이미 70을 넘긴 나이에 학교 다니는 자녀가 있을 수 없다. 수훈자들이 모여 앉아 얘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공적을 세운 이들에게 주는 ‘건국포장’이라면 그 이름에 걸 맞는 일정금액의 ‘연금’은 줘야 되지 않느냐 하는데 화제가 집중된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더라도 유가족이나 부상자는 모두 연금이 지급되는데 유공자만 제외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 아무튼 뒤 늦게나마 4.19혁명의 공로가 인정된 것은 국가와 사회에 대해서 고마워해야 할 일이지만 정부에서도 국가유공자에 대한 연금은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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