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뉴스 = 박주환 기자] 서양화가 김정선 화백이 현대백화점 미아점에서 오는 31일까지 자연을 주제로 한 작품 '김정선 작품전을 전시한다.

한편 김 작가는 이번 전시회에 이어 오는 10월 10일부터 20일까지 청담동 소재 표갤러리에서 기획초대전을 갖고 신작 발표를 겸할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진 위) Greenbelt in paradise,oil on canvas,90x130cm,2011, (사진 아래) This is oil-falls 40,oil on canvas, 120cmx130cm,2013     © 중앙뉴스


▲작가노트
이것은 내 작업의 제목이다. 단순히 화면에 보여 지는 형상이 아닌 이미지의 속성을  읽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가시적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대상의 색, 형태 등의 변화를 통해 시각적으로 그 정열과 마음의 상태를 포착해 주길 바라며 끝없이 치닫는 우리삶 속에 생산적인 에너지가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래는 김종근 교수의 작품평론이다.
김정선이 돌아왔다. 오랫동안 마산에서 레지던시 기간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온 그녀의 작업은 한층 더 세련되고 용감해졌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레지던시 동안 집요하게 추구해온 '물'의 이미지 연작은 우리들을 숭고한 감정과 내면의 침묵적 언어로 안내 한다. 그녀가 폭포에 풀어 놓은 푸른 색채의 진동에서 우리는 저항할 수 없는 그녀의 파도와 물결에 흔들림을 발견한다.

김정선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그 흔들림의 본질과 에너지는 무엇일까 ? 우리가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적인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 공동묘지에 뛰어놀던 그의 어린 시절과 어머니의 죽음을 살펴 봐야하듯이, 김정선의 그림을 해석하기 위해 그녀의 소녀시절고백으로 거슬러 가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소녀시절 물에 빠져 본 몇 번의 경험이 있다. 한번쯤은 경험해 볼 수 있는 일이겠지만 나에게 물이란 공포의 상징이자 가까이 할 수 없는 위협의  대상이었다. 허우적대는 그 순간 물은 인체처럼 살아서 꿈틀대더니 수 많은 사악한 생명체가 되어 날 밀고 당기는 듯 한 엄청난 공포가 느껴졌다"

이처럼 그녀에게 어린 시절 물은 추억속의 친근한 대상이 아니라 생명과 죽음의 순간을 넘나드는 위험한 경계의 지대로 각인되어 있다. 김정선은 그림자 시리즈 이후 작품 속에 이런 공포의 트라우마가 감지되는 어린시절 단편의 이미지를 일관되게 고집 해왔다.

구체적으로는 그 공포가 강이 되거나 바다로 태어나는 것이다. 어쩌면 그녀에게 강이나 바다는 물의 힘을 가진 위협적인 곳으로만 인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 아픈 추억을 서슴없이 악몽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악몽의 이미지는 그녀 자신에게 아주 깊은 기억의 층이 되어 물의 이미지로 되살아 나는 것이다.

그에게 회화란 이런 상처와 트라우마의 흔적이 되는 것이다. 마치 화가 뭉크의 그림속 공포처럼 말이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이 악몽의 색조는 푸르게 때로는 붉게 그리고 보라색으로 변해왔다. 작가는 그 두려움의 대상들이 사라지는 찰나들을 끈질기게 붙잡으면서 그림이 무엇인가라는 회화의 물음에 이렇게 답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아이러니이다.

그녀가 그렇게 싫어한 물을 다시 화폭 속에서 천연덕스럽게 물의 이미지로 재현한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역설적이다.  작가에게 이런 아프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다시 현실에 덤벼들면서 묘사한다는 것은 그 악몽을 벗어나기 위한 작가의 지독한 의지이며 그 공포에서의 탈출일 것이다.

그는 그 어린시절의 흔들림을 이렇게 색채로 파도의 표정으로 폭포의 떨어짐처럼 끌어 올린다. 그러기에 집요하게 물의 다양한 이미지들을 향한 그의 열정은 작가의 내면을 드러내는 예술가의 오랜 관습처럼 격정적이다.

모네가 지베르니의 정원에 수련을 통해서 어떤 평화를 얻었듯이, 조지아 오키프가 사막의 풍경에서 자신의 초상을 발견하듯이 그녀도 그 물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존재 방식을 숨겨 놓는다."강이나 바다란 인간에게 부정 할 수 없는 친숙한 자연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괴력을 가진 무서운 대상일 뿐이었다" 어쩌면 그가 화면 가득 물의 이미지를 그려내는 일은 그 자신의 말처럼 아이러니컬한 일임은 틀림없다.

"물 안에서 한없이 약해지고 추락해 가는 자신감을 극복하고 싶었다. 그것은 내가 만든 억압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본능" 같은 그런 것, 이처럼 그녀는 화가로서도 매우 본능적이며 적극적이다. 마치 해일이 이는 바다 위에 거침없이 뛰어 들어가 휘저으며 캔버스의 표면에 닻을 내려놓고 요동치듯 붉고 푸른 물감을 풀어 제친다.

어린시절 아픈 순간과 감정이 그로 하여금 이제는 매우 절제된 색채와 함축적인 형태로 물의 세밀한 표정들을 포착한다. 그림을 보는 우리들은 주저없이 그녀의 강물이나 파도 혹은 폭포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그 안에 본능적인 삶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때로 그 열정은 절대적인 차원에서 풍경처럼 느껴지지만 작품들은 하나 같이 내면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이제 그의 그림은 바다나 강 같은 화면속의 풍경에서 여행하고 있다. 그 여행에서 그녀는 여자로서 겪어내야 하는 삶의 흔적들을 바다에다 강에다 쓸어 담는다. 그리고 그림 속에 두려움과 거대한 해일들은 이제 그녀에게 예술적 영감과 힘이 되어 화폭 속에서 서서히 부활한다.

그것은 마치 뱃 머리에 몸을 묶어 폭풍과 파도의 해일을 직접적으로 겪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고자 했던 화가 윌리암 터너에 심경이 그러했으리라. 김정선에게 이제 물은 더 이상 공포의 대상도 슬픔의 모티브도 아니다.

비록 그의 화면 속에 폭포나 물의 이미지가 한편의 삶을 보듯이 드라마틱하고 격정적이지만 그 삶의 풍경처럼 서술적이고 순간들이 만나 거대한 파노라마를 연출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THIS IS OIL" 라 불리는 그녀 작업의 제목들은 시각적인 것으로만 보아서는 안되고 가슴과 뜨거운 색채로 읽어내야 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곧 파도가 되고 , 자신의 기억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바로 삶이며 자신의 기억속의 상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모든 예술가들이 새삼스럽게 창조적인 순간에 자신들의 속내와 본질을 드러낸다는 사실들을 확인하게 된다.

회오리 치듯 눈길을 사로잡는 그윽한 색채놀이와 자신의 감추어진 초상, 그 곳에 던져 새롭게 일어나길 꿈꾸는 열망,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김정선 그림의 감출 수 없는 매력이 이것 아닐까 ?
                                                   
-김종근 홍익대 겸임교수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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