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가리키는 말로 ‘조선팔도’ ‘삼천리금수강산’등이 있다. 조선시대에 지방행정구역을 여덟 개로 나눠 다스렸기 때문에 팔도라는 말이 생겼고, 제주도에서 함경도까지 길고 먼 거리를 대충 삼천리로 쳐서 아름다운 땅이라는 이름으로 금수강산이라고 붙였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불행히도 남북이 분열되어 반 토막 금수강산이 되었고 남한 땅만 해도 16개 시도로 나뉘어 팔도의 2배로 불어났다. 북한에도 10여개의 시도가 있기에 한반도의 지방행정구역은 30개에 가깝다. 남한에서는 이들 지방행정구역에 자치제를 시행하고 있어 각 지방마다 특색을 나타내려고 발분망식(發憤忘食) 노력중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아무리 중앙집권제를 실시한다고 하더라도 지방행정을 전담하는 조직을 지방자치단체라는 이름으로 두고 있다. 물론 지방자치가 아닌 중앙에서 임명한 단체장이 그 지역을 관장하는 나라도 부지기수다. 우리나라만 해도 20여 년 전 까지는 자치제가 아니었다.

지방자치를 한답시고 그동안 광역단체와 기초단체로 나뉜 선거를 다섯 번이나 치렀다. 이 과정에서 온갖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는 지역색이 확연히 드러나는 정치적 거점 때문이었다. 그 지역 출신의 걸출한 인물이 지배하는 정당의 공천을 받기만 하면 ‘묻지마 투표’로 당선이 보장되는 어처구니없는 양상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지난 6월4일 시행된 지방선거 역시 그와 같은 선거양상이 되풀이된 것은 물론이다. 경상도는 새누리당, 전라도는 새정치민주연합. 수십 년을 두고 귀신처럼 끈질기게 따라붙는 이 저주스런 현상은 우리 정치의 시계를 한참이나 뒤로 밀어냈다. 가장 혁신적이고, 가장 개혁적이어야 할 정치를 전근대적 지역구도에 파묻히게 만든 사람들이 정치인들이고 그에 놀아난 유권자다.

지방색 정치가 시작된 단초는 박정희 시절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고 자신의 이익으로 삼은 사람은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다. 김영삼 김대중은 군사독재의 강한 칼날에 맞서  민주화운동이라도 했지만, 김종필은 10.26 이후 3김의 하나로 떠받들어지면서 덩달아 충청권의 대표주자로 부각했다.

공교롭게도 3김의 출신지역이 겹치지 않는 통에 그들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를 자연스럽게 대표하는 것처럼 국민을 속일 수 있었고 국민들도 어쩔 수 없이 속는 체 하면서 3김을 밀어줄 수밖에 없는 모순에 빠져야 했다. 특정지역을 구분하는 색깔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철옹성이 되어 3김의 오만을 충족시켰고, 그들의 주머니는 눈 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선거에 출마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선거가 있기 훨씬 전부터 3김의 주변 비서진과 접촉하며 금품을 건네는 것으로 일을 삼았다. 정책을 개발하거나 정상적인 정당 활동을 하는 것은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았다.

오직 퇴행적인 아부 아첨 그리고 공천헌금만이 지상최고의 선거운동이었다. 공천만 받으면 빗자루도 당선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분위기가 들떠 있었다. 그 지역의 유권자들은 스스로 3김의 투표노예가 되어 아무리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 다른 당이나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음에 찍어줄게” 하면서 3김 정당으로 붓 깍지를 들이댔다.

그런 다음 후회한다. “아이고, 내가 저런 사람을 찍다니. 내 손가락을 잘라버려야지.” 자탄망조 해봤자 이미 때는 늦었다. 이런 세월을 우리는 살아왔다. 몇십년 계속된 지역정치에 신물이 날 때가 되었어도 변화의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득표율에 차이가 나긴 했지만 당선으로 이어지지 않는 득표에 의미를 두긴 힘들다. 그러다가 이번 국회의원 재 보궐 선거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새누리당 공천을 받은 이정현이 고향인 순천 곡성에서 압승을 거둔 것이다. 전라도 지역에서 새누리당 공천자가 당선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바보 아니면 천치다. 물론 군사독재가 기승을 부릴 때 남원 양창식, 군산 강현욱이 여당공천으로 총선에서 당선한 사례가 있지만 재 보궐선거에서 박근혜의 복심인 이정현의 당선은 이변이다. 이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만 일삼는 새정치연합이 자초한 바 크다.

아무튼 지역 구도를 깨야한다는 물꼬는 텄다. 대구에서 김부겸은 총선을 겨냥하며 칼을 간다. 그의 식견과 올곧음은 반드시 승리의 월계관을 겹쳐 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대구는 원래 외지인에게 넉넉하다. 전라도 조재천, 서울 조병옥, 경기도 목요상 등이 모두 대구에서 당선했다. 대구사람 엄민영은 전북에서 당선했다.

지역을 떠난 인재를 뽑는 것이 나라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예 지역색깔을 나타낼 수 없도록 행정구역을 개편하는 대 단안이 필요하다. 그것은 전국 행정구역을 100만 인구단위로 쪼개면 된다. 경상 전라 충청도라는 이름은 아예 없애버리고 광역시도를 없앤다.

1일 생활권이 되어버린 주먹만한 나라에서 ‘광역과 기초’를 구분한다는 것은 난센스다. 100만 도시 50개를 만들어 모범적인 자치제를 실시하면 지역색은 사라진다. 불필요한 예산도 대폭 줄어들어 민생안전에 크게 기여한다.

지역정당이 없어지면 정치지도자도 깨끗한 사람만 나오게 된다. 활연대오(豁然大悟) 모든 국민이 크게 깨닫고 춤을 춘다. 한데 김영란법도 통과 안 되는 국회에서 제 밥그릇을 깨겠나?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지.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