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의원으로 백의종군 하겠다"

▲  18대 국회 전반기 입법부 수장인 김형오 국회의장이 27일 퇴임 기자회견을 가졌다. 
18대 국회 전반기 입법부 수장인 김형오 국회의장이 27일 퇴임 기자회견을 가졌다.

미디어법, 예산 격돌 등 임기내내 여야간 대치로 부침이 심했던 만큼 마음고생도 많았다.

정치적 중립과 소신의 딜레마속에서 여야 양측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친정인 한나라당으로부터는 ‘의장이 친정을 버리고 직권상정을 거부한다’는, 야당으로부터는 ‘한나라당 의장이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라는 파상공세를 받곤했다.

하지만 김 의장은 입법부 수장으로서 외로운 선택을 강요받을 때마다 철저하게 객관성과 평정심을 유지 했다.

김 의장은 그때마다 ‘당장은 알아주지 않더라도 후대에 평가를 받을 것’이라며 여야의 정치적 압박을 견뎌냈다.

김 의장은 평의원으로 돌아가 이명박 정부의 성공적 국정운영 마무리를 위해 백의종군할 예정이다.

김 의장은 퇴임을 이틀 앞둔 이날 국회의장 집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개헌에 소극적인 민주당도 지방선거 이후에 개헌을 하겠다고 수차례 공언해왔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개헌 시 권력구조 개편 방향에 대해서는 “현행 5년 단임제가 아니면 어떤 것도 수용할 수 있다”면서도 “5년 단임제의 핵심 문제를 개선하지 않은 채 임기만 8년으로 늘리는 4년 중임제는 8년 단임제와 다름없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의장은 “국회의장 2년을 하면서 직권상정을 과감히 없애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여당은 다수당의 힘으로 직권상정을 밀어붙이고, 야당은 회색분자로 몰릴까봐 양보하지 않아 모든 것을 의장이 직권상정하도록 하는데 이런 3류적 국회제도를 하루 속히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김형오 국회의장 퇴임 기자 간담회 전문이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언론인 여러분,

저는 이제 국회의장에서 물러나 평의원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동안 보내주신 국민여러분의 따뜻한 격려와 성원, 그리고 깊은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열악한 취재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해주신 언론인
여러분에게도 고마움을 표합니다.

언론인 여러분께서 직접 목도했듯이 지난 2년은 역대 국회 중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정권교체와 의회 세력의 교체가 동시에 이루어져 여야간 대치가 어느 때보다 험하고 첨예했습니다.

저는 입법부 수장으로서 그동안 18대 국회가 보여준 대치와 파행, 점거와 농성 등에 대해 이유가 어떻든 정치권의 자성을 촉구하면서 국민 여러분께 먼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2008년에 원구성, 추경안 상정문제, 연말 입법전쟁, 2009년 들어 미디어법, 노조법, 예산안 등 아홉 번의 위기와 고비를 넘기며 최악의 상황을 막고 정국의 중심을 잡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때로는 숱한 공격과 압박, 일방적 모욕과 왜곡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오직 나라와 국민을 위해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처리하려고 했습니다.

국회의 자존과 위상을 세우려 외로운 투쟁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언젠가 국민과 역사의 평가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저는 힘의 정치와 버티기 정치, 다수결 원칙과 소수자 보호, 효율과 형평의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출 것인지 부단히 고민하면서 결단을 내려왔습니다.

강퍅한 대결과 대치 상황에서도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며 중재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저는 3권 분립의 헌법 정신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 역사에 부끄럼 없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자부하지만 훗날 어떠한 평가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저는 2년전 취임하면서 밝힌 3대 목표, 정책국회, 상생국회, 소통국회를 만들기 위해 일로매진(一路邁進)했으나 많은 점에서 부족했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너른 이해를 구합니다.

그동안 고난도 많고 아쉬움도 남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성급하게 서두르면 일이 성사되기 어렵다(欲速不達)는 옛말은 지금 시점에서 시사하는 바 적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평의원이 된 만큼 어떻게 해야 우리 정치현실에서 ‘화해와 통합의 정치’를 구현할 수 있는지 동양과 서양의 사례와 역사를 통해 두루 공부해볼까 합니다.

햇빛을 영원히 가리는 구름이 없듯이 한국정치도 조만간 흑백정치에서
컬러정치로 발전,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흐름을 거역하지도 않으면서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것이 물입니다. 이때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흐르는 물처럼 부드럽고 낮은 자세로 일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저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 제가 해야 할 의무와 소명을 조금은 해냈다고 느끼며 이만 물러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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