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를 읽다 / 김인구
 
 
고구마를 캔다
무성한 순들의 곡선이 얽히고 설킨 덩굴손을
거둬 올리며 땅속에 호미를 조심스럽게 들이민다
단단한 흙들이 서로의 어깨를 풀어내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삼삼오오의 행렬
 
보랏빛으로 자주빛을 다스린 고구마를
밭둑가로 밀어 놓는다
 
젖은 흙 말라가는 고구마에는
그물보다 촘촘한 한 바닥의 햇볕이 숨어있고
한 잔 구름을 마신 하늘 한 칸의 여유가 들어있고
이미 바다를 떠나온 비의 예찬이 들어 있으며
들락거린 바람의 구멍 잃어버린 조각 하나
퍼즐처럼 맞춰져 있다
 
밤마다 내려오신 神과
허리 굽은 어머니의 노동요가 빼곡히 들어있는
둥글게,
둥글게 연결된 우주의 자화상이
한 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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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 내 고향에서도 고구마 캐기가 한창일 것 같다.
시인은 왜 고구마를 캔다고 하지 않고 고구마를 읽는다고
했을까,
봄부터 고생한 농부의 손길에 보답하듯 땅 속에 고이
숨어있다가 자주빛 몸 빛나는 토실한 몸들,
한알한알 고구마의 숨소리를 읽어내는 시인의 눈빛이
포근하고 깊다.
고구마가 다칠세라 호미질도 조심조심... 밭둑에
수북히 모아두면 뿌듯한 바람이 달려와 땀 씻겨주는
그 맛, 가을이 주는 한 기쁨 아니겠는가.
쌀이 부족했던 그 옛날 밥 대신 고구마에 김장김치 쭉쭉
찢어 먹던 그 맛이란!
어린 날의 일기장 속에만 있는데 이제는 웰빙식품이 된
귀하신 몸이 되었다
고구마를 읽노라면 흙 한줌 바람 한줄기 빗방울의 고마움과
농부의 진한 땀을 느끼게 된다.
그저 손쉽게 사먹을 수 있는 고구마지만 잠깐만이라도
고구마를 경건히 읽어보게 하는 시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 가을 감사한 열매가 어디 고구마 뿐이랴마는...
오늘은 고구마다.
(최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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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구 시인/
전북 남원 출생. 1991년<시와 의식>에 <비, 여자>외 2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2014년 신작시집<굿바이, 자화상>,
작품집으로<다시 꽃으로 태어나는 너에게> <신림동 연가>
<아름다운 비밀>외 공저 다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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