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주식시장은 호황인데, 왜 기업들은 어렵다고 아우성인가?
최근 한국 주식시장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호황’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정도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정작 기업 현장에서는 견디기 어려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매출은 제자리이거나 오히려 줄고 신규 고용은 얼어붙었으며, 투자 확대 계획도 보류되는 실정이다.
자본시장은 불꽃을 튀기는데, 왜 실물경제는 차갑게 식어가는가? 이 모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금융과 실물의 괴리, 글로벌 자본 이동, 그리고 한국 기업 환경의 구조적 문제를 입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동성 장세와 실물경제의 괴리
우선 주식시장의 호황은 실물경제의 성장세를 곧장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 자본시장은 기업 실적보다 유동성, 금리, 글로벌 자금 흐름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세계 각국 중앙은행은 전례 없는 양적완화 정책을 펼쳤다. 금리를 사실상 제로에 가깝게 낮추고 막대한 유동성을 시장에 풀었다. 그 결과, 시중에는 갈 곳을 잃은 돈이 넘쳐났다.
그러나, 기업의 생산, 고용, 설비투자 확대는 소비 회복·수출 증가 같은 실물 수요가 뒷받침될 때 가능하다. 하지만, 코로나 19 팬데믹, 미·중 갈등, 공급망 붕괴, 원자재 가격 불안 등으로 실물경제는 구조적 충격을 입었고 기업 현장에서는 매출 부진과 비용 압박이 동시에 나타났다. 이처럼 실물경제가 주춤하는 가운데서도, 금융시장은 유동성에 힘입어 ‘그림자 없는 호황’을 누리는 것이다.
글로벌 자금의 이동과 한국 주식시장
한국 주식시장의 호황은 상당 부분 해외 자금 유입의 덕을 보고 있다. 미국 연준이 금리 인하 사이클로 돌아서자, 글로벌 자금은 높은 성장 잠재력을 가진 아시아 신흥국 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특히, 반도체, 2차 전지, 인공지능(AI) 등, 미래 산업을 주도할 한국 대형주들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투자처다.
하지만, 이러한 자본 유입이 국내 기업 전반의 경영 여건 개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해외 자금은 매출이 줄어도 주가가 오를 만한 ‘스토리’가 있는 특정 기업에 집중된다. 반도체, 플랫폼, 배터리 등, 미래 산업에 투자 자금이 집중되는 동안, 내수 제조업과 서비스업에 몸담은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매출 부진과 비용 압박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처럼 금융시장의 활황과 현실 기업 현장의 어려움 사이의 괴리는, ‘주가가 활짝 웃는 동안, 기업들은 속으로 탄식을 삼키는’ 모순을 여실히 보여준다.
고금리·고원가 시대의 압박
또 다른 문제는 고금리와 원가 상승이다.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을 위해 고금리를 유지하고 있다(코로나 19 팬데믹 초기,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1.25% → 0.75% → 0.5%까지 두 차례 인하되었음. 0.5%는 한국 역사상 최저 금리였으며, 2021년 하반기부터 경기 회복과 물가 상승 우려로 금리 인상이 재개되었음. 현재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연 2.5%로, 2025년 5월에 2.75%에서 0.25%포인트 인하된 후, 두 번째 연속 동결되었음). 하지만, 이 고금리 기조는 기업 대출 이자 부담을 크게 늘리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이나 한계기업들은 금융비용 급등으로 숨이 막히는 상황이다(대기업은 자체 현금 유동성이 충분해 2.5% 기준금리 부담이 크지 않을 수 있음. 반면, 중소기업·부채 비율 높은 기업·영업이익이 낮은 기업은 대출 금리 상승(은행 대출 금리 3~4% 수준)으로 인해 금융비용 부담을 느낄 수 있음).
게다가, 원자재·에너지 가격 변동성까지 겹치면서 제조업체들은 이중고에 시달린다. 판매 가격에 원가 상승분을 전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업 수익성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주식시장이 아무리 뜨겁더라도, 실제 기업이 벌어들이는 영업이익이 줄면, 고용과 투자 확대는 불가능하다.
환율 효과와 수출 편중 문제
최근 원화 약세로 수출 대기업들은 단기적으로 환차익을 누릴 수 있었다(반도체나 자동차 같은 대기업 중심 산업은 글로벌 브랜드, 대규모 생산설비, 기술력 등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환율 혜택 및 수요 유리한 면이 많지만, 중소기업이나 내수 중심 업종은 그만큼의 혜택을 받기 어렵고 원가 상승이나 수입 가격 부담에 더 취약함). 그러나, 이 효과는 일시적이며, 글로벌 경기 둔화로 수출 물량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한국 경제는 반도체·자동차 등, 소수 품목에 수출이 편중되어 있어, 글로벌 수요 변동에 지나치게 취약하다.
특히, 유럽 경기 둔화, 중국 경제 성장률 하락,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는 한국 수출 기업의 미래를 불확실하게 만든다. 수출 대기업이 흔들리면, 중소 협력업체들은 직격탄을 맞는다. 그 결과, 주식시장 시가총액 상위 기업 몇 곳이 호황을 누리는 동안, 산업 생태계 전체는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현상이 나타난다.
노동·규제 환경의 구조적 문제
노동·규제 환경의 구조적 문제는 한국 기업 경쟁력의 근본적인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기 침체기에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비용 구조를 재편하고 인력 효율화를 단행하려 하지만, 한국의 노동시장은 해고 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하고 노사 갈등이 잦아 유연한 인력 운용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불황기에 더 깊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고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위험에 상시적으로 노출된다.
더 큰 문제는 각종 규제 장벽이다. 첨단 산업과 신성장 분야에서 혁신을 시도하는 스타트업과 대기업 모두 복잡한 인허가 절차와 오래된 규제 체계에 가로막혀 미래 성장동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다. 반면, 주식시장은 기업의 실적보다 잠재력과 미래 비전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현실 속 기업들은 투자자들의 기대와 달리 규제, 노동 비용, 복잡한 행정 장벽 속에서 성장의 숨통이 조여드는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금융 호황이 실물 호황으로 이어지려면!
결국, 주식시장의 호황이 곧바로 기업 경영 환경의 개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금융시장은 유동성과 기대 심리에 의해 움직이지만, 실물경제는 매출·고용·투자 같은 현실적 지표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어렵다”라고 아우성치는 현실을 바꾸려면, 다음 조건이 필요하다.
① 고금리 완화 : 물가 안정과 함께 금리 인하 여력이 생겨야 기업 금융비용이 줄어든다.
② 수출 다변화와 내수 진작 : 특정 산업 편중을 해소하고 내수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③ 노동·규제 개혁 : 유연한 노동시장과 혁신 친화적 규제가 필요하다.
④ 산업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 강화 :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중견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산업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주식시장은 오늘도 호황이지만, 실물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한, 이 호황은 ‘모래 위의 성’에 불과하다. 금융시장의 불꽃이 진정한 경기 회복의 불씨가 되려면, 기업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 변화와 구조 개혁이 절실하다.
김성수(現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