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기업의 ESG 활동, 단순한 경영 트렌드를 넘어선 시대적 책무이자 생존 전략
21세기 기업 경영의 키워드는 더 이상 단순한 매출 확대나 이윤 극대화가 아니다. 세계는 이미 기후 위기, 불평등, 사회적 갈등, 기업 윤리 문제에 직면해 있으며, 이를 외면한 기업은 결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어갈 수 없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ESG경영이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로 떠올랐다. ESG는 환경 보호,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기업이 단순한 경제 주체를 넘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존재로 변화하는 길을 의미한다.
과거 기업이 이윤 창출이라는 본래의 목적에만 매달렸다면, 이제는 그 과정에서 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며, 윤리적이고 투명한 경영을 실현하는 것이 시대적 책무가 되었다. ESG는 단순한 도덕적 요구가 아니라, 기업 생존과 직결되는 전략이자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필수 조건이다.
환경(E) : 기후위기 시대, 기업이 환경의 수호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더 이상 환경 문제를 ‘미래 세대의 과제’로 미룰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폭염·폭우·가뭄·초미세먼지 같은 현상은 일상이 되었고 각국 정부는 탄소중립 목표를 내세우며 기업에 강도 높은 규제를 예고하고 있다. 이때, ESG의 환경(E) 부문은 기업이 단순히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산업 전략으로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요소다.
예를 들어, 글로벌 IT 기업 애플은 2030년까지 공급망 전체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고 유럽연합(EU)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통해 이산화탄소를 다량 배출하는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한국 기업도 이런 흐름 속에서 SK·포스코·LG 같은 대기업들이 RE100(재생에너지 100% 전환)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으며, 현대자동차는 전기차·수소차 중심으로 미래차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러한 친환경 투자는 단순히 이미지 제고에 그치지 않는다. 탄소감축 기술개발은 미래 신산업의 핵심 동력이자, 글로벌 경쟁력 확보의 수단이 된다. 결국,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기업에는 더 이상 시장이 허락되지 않을 것이며, ESG 활동은 지구와 인류를 위한 선택인 동시에 기업 자신을 위한 투자다.
사회(S) :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신뢰를 구축한다
기업이 사회와 맺는 관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밀접해졌다. 한때, 기업의 사회공헌은 기부금 전달이나 봉사활동에 한정된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 사회(S) 부문은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핵심 요소가 되었다.
기업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 우선 고용 창출은 사회적 책임의 가장 직접적이고 중요한 방법이다. 청년 실업, 고령층 일자리 부족, 경력단절 여성 문제 등은 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영역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면, 기업은 사회적 신뢰를 확보함과 동시에 우수한 인재 풀을 확보하게 된다.
또한, 공정거래와 상생 경영은 기업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을 강화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기술을 공유하고 공정한 계약을 체결하면, 산업 전반의 혁신 역량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네이버와 카카오는 소상공인을 위한 온라인 플랫폼을 무상 지원하며 디지털 전환을 돕고 있고 현대자동차는 협력사와 ESG 평가를 공유해 공급망 전반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지역사회 기여 역시 ESG의 중요한 축이다. 기업이 공장과 본사가 위치한 지역에 문화·교육·복지 인프라를 제공하면, 지역 발전과 주민 삶의 질 향상에 직접 기여할 수 있다. 예를 들어,CJ는 문화재단과 디지털 창작자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청년 창작자들에게 교육, 네트워킹, 창작 기회 등을 제공하며 이들의 성장을 돕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ESG 경영이 단순히 기업 이미지 제고를 넘어 청년 세대의 창작 생태계와 지역사회 발전을 함께 이끄는 지속가능한 모델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배구조(G) : 투명성과 윤리가 기업 가치를 결정한다
ESG의 세 번째 축인 지배구조(Governance)는 종종 간과되지만,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근본적인 요소다. 기업이 아무리 친환경 기술을 개발하고 사회공헌 활동을 벌여도 내부 경영이 불투명하거나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면, 사회적 신뢰는 한순간에 무너진다.
지배구조 개선은 단순히 형식적인 이사회 구성 문제를 넘어, 투명한 회계, 윤리경영, 공정한 의사결정 구조, 내부고발자 보호, 성평등 리더십 확보 등, 전방위적인 개혁을 요구한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ESG를 투자 판단의 핵심 지표로 삼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배구조가 건전한 기업만이 위기 상황에서도 장기적 가치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현대자동차·SK 같은 대기업들이 ESG 보고서를 발간하고 사외이사 독립성을 강화하는 이유 역시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지배구조 개선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ESG는 규제가 아니라 새로운 성장 기회다
일부에서는 ESG를 기업에 대한 새로운 규제로 인식한다. 환경 규제는 비용을 늘리고 사회적 책임은 부담을 안기며, 지배구조 개혁은 경영권을 위협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ESG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다.
탄소중립 기술개발은 수소·전기차·재생에너지 같은 신성장 산업을 만들어내며, 사회적 책임 활동은 임팩트 투자, 공유경제 같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한다. 또한, 투명하고 윤리적인 경영은 해외 투자자와 글로벌 공급망에 편입될 수 있는 신뢰의 토대를 마련한다. ESG를 진정성 있게 실천하는 기업만이 글로벌 경제 질서 재편 속에서 살아남고 성장할 수 있다.
기업이 사회에 기여하는 실천 전략
기업이 ESG를 통해 사회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려면, 구체적인 전략과 실행 체계가 필요하다. 단순히 선언적 구호를 외치는 수준을 넘어 측정 가능한 목표, 산업 간 협력, 디지털 혁신, 이해관계자 소통이 결합된 종합 전략이 요구된다.
① 측정 가능한 ESG 목표 설정 : 탄소 감축률, 공정거래 지수 같은 수치화된 지표를 설정하고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② 산업 간 협력 플랫폼 구축 : 대기업·중소기업·정부가 연계해 ESG 생태계를 조성하고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③ 디지털 전환 활용 : 빅데이터·AI를 통해 에너지 효율, 공급망 투명성, 사회공헌 효과를 정량적으로 분석하고 관리할 수 있다.
④ 이해관계자 소통 강화 : 소비자·직원·지역사회와 ESG 활동 성과를 공유하며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ESG는 기업과 사회가 함께 살아남는 길
기업의 ESG 활동은 단순한 도덕적 요구나 일시적 유행이 아니다. 그것은 기업이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자,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다.
환경을 지키고 사회적 신뢰를 쌓으며, 투명한 지배구조를 확립하는 기업만이 미래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ESG는 기업이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이자, 기업 자신이 장기적으로 번영할 수 있는 전략이다. 한국 기업들이 ESG를 진정성 있게 실천할 때, 기후위기 대응, 산업 혁신, 일자리 창출, 사회 통합이라는 거대한 선순환이 가능해질 것이다.
21세기 기업의 성패는 더 이상 단기 실적이 아니라 사회와 함께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능력에서 결정될 것이다. ESG는 바로 그 길로 가는 가장 확실한 나침반이다.
윤영민(現 한국ESG기업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