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한국 PF시장, 미국과의 차이를 직시하고 구조개편에 나설 때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금리 상승 속에서 한국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시장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부동산 중심의 PF 사업들이 대규모로 진행되었지만, 분양 실패, 미분양 증가, 건설사 부도 등의 사태가 이어지며 PF의 부실 위험이 금융시장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증권사, 캐피탈사, 저축은행 등의 제2금융권이 대거 얽혀 있고, 건설사들이 상호 지급보증을 서며 리스크를 확대해 온 결과다.
이에 비해 미국의 PF 시장은 고금리·경기 둔화 상황 속에서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다양한 산업군에 걸쳐 PF 사업을 운용하고 있으며, 정부와 민간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차이는 단순한 시장 규모나 경제력의 문제가 아니라, PF 구조와 정책 시스템, 리스크 관리 방식 등 금융과 산업을 바라보는 기본 철학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한국 PF 시장의 구조적 취약성
한국의 PF 시장은 몇 가지 근본적인 취약점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도 자산군 편중이 극심하다. 국내 PF 사업은 90% 이상이 부동산 개발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 중에서도 아파트, 오피스텔, 복합상업시설 등, 민간 분양사업 비중이 압도적이다. 도로, 철도, 항만, 에너지 같은 인프라 PF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이로 인해 부동산 경기에 따라 PF 사업 전반이 출렁이는 구조가 되어버렸고, 시장 외부 충격에 매우 민감해졌다.
또 하나의 문제는 비은행권의 과도한 개입과 고위험 구조 설계다. 국내 PF는 은행권보다는 증권사, 캐피탈사,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서 주도해왔다. 이들은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며 후순위 대출, 자산유동화(ABCP, ABSTB), 복합 지급보증 등의 수단을 통해 복잡하고 불투명한 구조를 만들었다. 사업 리스크는 제대로 분석되지 않은 채 자금이 흘러갔고, 유사시 손실은 투자자와 금융기관에 돌아가는 구조가 정착됐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비소구금융’이라는 PF의 기본 원칙이 사실상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법적으로는 PF 대출이 비소구 조건을 갖춘 듯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건설사나 시행사가 완공 보증, 이자 보전, 분양률 보장 등의 형식으로 책임을 지고 있다. 이는 구조적으로 위험을 분산시키는 데 실패한 채, 내부 이해관계자끼리 책임을 돌리는 ‘내부 리스크 순환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미국 PF 시장의 구조적 안정성
미국의 PF 시장은 한국과는 구조적으로 확연히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자산군의 다양성과 분산이다. 미국에서는 에너지(특히 재생에너지), 교통 인프라, 통신, 환경, 의료,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PF가 활용된다. 특히, 탄소중립 시대에 부합하는 풍력, 태양광, 수소 등, 에너지 프로젝트에 민간자본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장기적 수익성을 전제로 한 사업들이 많다.
또한, 미국 정부는 이러한 PF 사업에 대해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과 리스크 분담 구조를 제공한다. 미국 에너지부(DOE)는 청정에너지 PF에 대해 직접 보증을 제공하거나, 민간 투자자들이 손실을 일부 회피할 수 있는 금융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주정부 및 지방정부는 세금 감면, 장기 매입계약(PPA), 사업 보증 등, 다양한 방식으로 민간 참여를 유도한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투명한 구조와 철저한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다. 미국 PF는 사업 착수 전부터 수익성 분석, 리스크 평가, 시공 능력, 운영계획, 현금흐름 예측 등, 모든 요소를 정밀하게 검토한다. 제3의 전문기관들이 이를 분석하고 투자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며, 그 결과는 신용평가에 반영되어 시장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는 투자자들이 사업 내용을 정확히 이해한 상태에서 투자 결정을 할 수 있게 한다.
한국 PF 시장의 개혁 과제
한국이 PF 시장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유동성 지원이나 금융 규제만으로는 부족하다. 시스템 전반을 바꾸는 구조적 개편이 필요하다.
첫째, 자산군의 다변화가 시급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도로나 철도 같은 사회간접자본, 친환경 에너지, 지역 균형발전 프로젝트 등에 민간자본이 참여할 수 있도록 PF 프레임워크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부동산 외 자산군으로 PF를 확장하고, 경기 변동성에 강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다.
둘째, 정부의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 현재처럼 사후 규제나 부실 구제 형태의 개입이 아니라, PF 프로젝트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리스크 분석, 정책 보증, 인허가 연계 등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선제적 인프라 제공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미국처럼 정책금융기관이 PF 사업의 초기 투자자로 참여하는 모델도 고려할 수 있다.
셋째, 정보공개와 투자자 보호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PF 사업의 사업계획, 수익구조, 참여자 역할, 리스크 항목 등은 모두 공공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어야 하며, 일반 투자자들에게도 명확한 안내가 제공돼야 한다. 지금처럼 수익률만 강조된 채 구조가 불투명한 PF 유동화 상품은 대규모 손실을 낳을 수밖에 없다.
넷째, PF를 바라보는 인식 자체를 전환해야 한다. PF는 단기 수익을 위한 자금 조달 수단이 아니라, 국가의 중장기 인프라 및 산업 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이다. 민간과 정부가 함께 위험을 분담하고, 사업의 실현 가능성을 공동 검토하며, 책임 있는 투자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지금이 PF 구조개혁의 골든타임
PF는 자금이 부족한 공공 또는 민간 개발 프로젝트를 실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수단이며, 동시에 금융시장과 실물경제를 연결하는 핵심 고리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PF 시장은 이 중요한 수단을 투기적 자금 조달 방식으로 전락시키며, 구조적 부실을 키워왔다.
이제는 미국 등, 선진국 사례를 교훈 삼아, PF 시장의 철학과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지금의 위기를 단기적 유동성 문제로 치부한다면, 앞으로 더 큰 시스템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다. 반대로, 지금 이 시기를 기회로 삼아 PF 구조를 정비하고 시장 신뢰를 회복한다면, PF는 한국 경제에 새로운 성장의 축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성공 여부는 자금 규모나 기술력보다도 얼마나 정직하게, 얼마나 투명하게, 얼마나 책임 있게 구조를 설계하고 운영하느냐에 달려 있다. PF를 진짜 ‘프로젝트 기반’ 금융으로 되돌려 놓는 개혁, 지금이 바로 그 골든타임이다.
고병욱 ㈜패스트파인더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