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리더는 사범처럼, 조직은 도장처럼 : 권위보다 존경으로 움직이는 경영
태권도의 세계에서 사범(師範)은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제자들의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본보기’이자, 도장(道場)의 정신적 중심이다. 사범의 한마디는 구호가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되는 신뢰의 언어다. 그가 먼저 인사하고 먼저 청소하며, 먼저 절제할 때, 제자들은 자연스레 그를 존경한다. 그 권위는 ‘지위에서 나온 힘’이 아니라, ‘본보기에서 비롯된 무게’다.
오늘날의 기업 경영은 이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곤 한다. 리더는 직책으로 조직을 통제하려 하고 구성원은 평가 점수에 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태권도의 세계가 보여주듯, 명령은 따르게 할 수 있어도 존경은 이끌 수 없다. 진정한 리더십은 ‘복종’이 아니라 ‘감화’에서 비롯된다. 리더가 사범처럼 스스로의 행동으로 철학을 증명할 때, 조직은 자연스럽게 그를 따라 움직인다.
권위의 리더십이 아닌 ‘본보기의 리더십’
태권도 사범이 도장에서 절대적인 위치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범을 ‘위에서 누르는 존재’가 아니라, ‘길을 앞서 걷는 존재’로 인식한다. 그는 지시하지 않는다. 대신 보여준다. 아침 일찍 나와 도장을 정리하고 훈련 중에도 스스로 기본기를 함께 연습하며, 실수한 제자를 나무라기보다 스스로 다시 시범을 보인다.
이런 리더십은 조직 경영에서도 그대로 통한다. 리더가 “소통이 중요하다”고 외치며 회의에서는 일방적으로 결론을 내린다면, 구성원들은 그 말의 진심을 믿지 않는다. 반대로, 리더가 구성원의 의견을 끝까지 경청하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조직 내 신뢰는 자연스레 쌓인다. 즉, 리더십의 본질은 말이 아니라 태도이며, 권위가 아니라 모범이다.
도장(道場)처럼 움직이는 조직
태권도 도장은 질서의 공간이다. 그러나, 그 질서는 억압이 아니라 존중의 규율에서 비롯된다. 서로에게 인사하고 상대의 눈을 마주치며, 약속된 규칙을 지키는 것. 그 일상적 절차들이 구성원 간의 신뢰를 만든다. 기업 조직도 마찬가지다. 시스템과 규율은 통제의 도구가 아니라 ‘존중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
성과지표(KPI)는 채찍이 아니라, 서로가 공정하게 평가받는 질서의 약속이어야 한다. 회의 시간, 보고 체계, 팀워크의 원칙 등은 도장의 예법과 다르지 않다. 예를 지키는 문화는 강요된 복종이 아니라, 스스로의 품격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다. 태권도의 정신은 “예의로 시작해 예의로 끝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인사로 시작되는 회의, 감사로 마무리되는 프로젝트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서로를 동료로 인정하는 의례다. 이 작은 예절의 누적이 조직의 품격을 만든다.
권위보다 존경으로 움직이는 경영
사범의 권위는 제자들의 ‘두려움’에서 오지 않는다. 그것은 존경에서 비롯된 자발적 복종이다.
그는 제자를 제압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가능성을 끌어올린다. 경영에서도 마찬가지다. 리더는 부하 직원을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코치(coach)여야 한다. 많은 리더들이 ‘리더십’을 ‘지휘 능력’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리더십은 자신이 아닌 타인의 성장에 초점을 맞출 때, 비로소 완성된다. 애플의 고(故) 스티브 잡스 창업주가 기술보다 ‘열정’을, 현대그룹의 고(故) 정주영 회장이 지시보다 ‘도전’을 강조했던 이유도 같다. 리더가 구성원을 신뢰할 때, 구성원도 그 신뢰에 걸맞은 행동을 한다. 반대로, 리더가 끊임없이 감시하고 통제하면 조직은 창의성을 잃는다.
태권도 사범이 제자의 실수에 즉각적인 질책보다 스스로 돌아보게 하는 이유는, 그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율적 각성이야말로 진짜 성장의 시작임을.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명령과 보고’의 문화는 사람을 움직일 수 있어도, ‘존경과 신뢰’의 문화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도장의 철학으로 본 지속 가능한 조직
태권도의 수련은 단기적인 ‘승리’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오늘의 훈련은 내일의 시합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평생의 수양을 위한 과정이다. 이 철학은 경영에도 그대로 통한다. 기업은 단기 실적이나 분기별 목표에 매몰될수록 방향을 잃는다. 반면, 철학과 가치로 움직이는 조직은 외부 환경이 변해도 중심을 유지한다.
‘도장의 시간’은 느리지만 단단하다. 리더가 성급히 결과를 요구하기보다, 구성원의 내적 성장을 기다릴 때 조직은 깊어진다. 사범이 매일 같은 기본기를 반복하듯, 리더도 조직의 ‘기본’을 반복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바로 신뢰, 소통, 공정, 존중이다. 그것이 기업의 기술 혁신보다 더 근본적인 경쟁력이다.
행동으로 이끄는 리더십의 시대
오늘날 기업 환경은 불확실성과 변화로 가득하다. AI와 데이터, 자동화가 모든 영역을 지배하지만, 결국 조직을 움직이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마음’이다. 그 마음은 명령이 아니라 ‘진심’에 반응한다. 리더가 보여주는 태도, 말 한마디의 무게, 위기 앞에서의 침착, 그것이 조직의 문화로 확산된다.
태권도 사범이 도복을 입는 순간 마음가짐이 달라지듯, 리더도 자신의 ‘역할’을 입는 순간부터 책임이 달라져야 한다. 사범의 자세로 조직을 대하는 리더, 도장의 정신으로 일하는 구성원, 그 만남이 바로 ‘권위보다 존경으로 움직이는 조직’의 시작이다.
‘도(道)’로서의 경영
태권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도(道)’다. 도는 곧 인간의 길이며, 리더십의 근원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경영은 수익 창출의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성장시키는 길이다. 리더가 사범처럼 겸허히 배우고 구성원이 제자처럼 성실히 닦을 때, 조직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하나의 ‘도장(道場)’이 된다. 그 안에서는 경쟁이 수련이 되고 실패가 배움이 되며, 성과가 곧 성숙이 된다.
리더는 사범처럼, 조직은 도장처럼. 그 철학이야말로 권위의 시대를 넘어, 존경의 시대를 여는 새로운 경영의 길이다.
나형만(前 서울특별시 태권도협회 품새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