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해진 원화, 1500원 방어도 쉽지 않아...‘환율 상단' 1500원 열릴 수 있어
원화 가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6년 만에 ‘최저’
[중앙뉴스= 윤장섭 기자]국내 외환 수급 불균형과 대외 리스크가 겹치며 환율 상단이 1500원까지 열릴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금융·통화당국은 가용 수단을 총동원해 변동성 완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이지만 지난달 원화의 실질 가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6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지난 23일 한국은행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한국의 실질실효환율 지수는 89.09(2020년=100)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달 말 대비 1.44포인트(p) 낮아진 값으로, 금융위기 때인 2009년 8월 말(88.88) 이후 16년 2개월 만에 최저치다. 비상계엄 사태로 정치 불확실성이 높아졌던 3월 시점(89.29)과 비교해도 0.2포인트 더 낮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으며 외환위기를 통과한 1998년 11월 말 당시(86.63)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원·달러 환율은 올해 6월 말 1350원대에서 꾸준한 오름세를 보이다 10월부터 1400원 대 구간에 들어선 뒤 이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정부 셧다운과 엔화 저평가 흐름, 대규모 대미 투자 우려 등이 맞물린 여파로 풀이된다.
원·달러 환율의 상승세가 1500원대까지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환율 상승세를 부추길 것이란 전망이다.
고환율 추세가 이어짐에 따라 오는 27일 열리는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에 이목이 집중된다. 이날 회의에서 향후 통화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대외금융자산은 지난 9월 말 기준 2조7976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외국인의 국내 투자 규모를 의미하는 대외금융부채는 1조7414억달러에 그쳤다. 이에 따라 순대외금융자산은 1조562억달러로 집계됐다. 해외 투자를 위한 달러 수요가 원화 약세를 초래하고 있다는 얘기가 금융가에서 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분위기와 맞물려 현재 한은의 공식적인 통화 정책 경로는 인하 사이클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금리 인하 폭이나 시기, 심지어 방향 전환도 새로운 데이터에 달려 있다.
한은이 정책 전환에 대한 가능성을 언급하자, 시장에서는 판단의 근거에 대한 재확인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서울외환시장에는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 진입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환율은 21일 장중 1476.0원까지 급등해, 올해 4월 초(1487.6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박형준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연준(Fed)이 다음 FOMC에서 예상보다 매파적 결정을 내릴 경우 달러 강세가 더 강화될 수 있다”며 “일본의 확장 재정 정책에 따른 엔화 약세도 환율 상단을 자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런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면 1500원대 방어도 쉽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개입만으로 환율 흐름을 되돌리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NH선물 리서치센터는 내년 원·달러 환율 전망 상단을 1540원, 하단을 1410원으로 제시하며 1400원대가 ‘뉴노멀’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