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한나 기자


 

골목이 없다

나석중

 

 

언제부턴가 아기 울음소리 사라지고

성대를 수술한 늙은 강아지가

뒤뚱뒤뚱 골목 산책을 하고 있다

 

다닥다닥 조립한 연립의 건반에서

꼬리에 불붙은 짐승처럼 뛰어나오는

소리의 직류(直流)는 금세 방전된다

 

아기 울음소리가 나팔꽃처럼 피어나

기나긴 곡류(曲流)로 귀를 찾아가던

새 소식 같은 모퉁이를 돌고 돌아서

 

다시 돌아오던 골목이 없다

 

                              - 나석중 시집 『외로움에게 미안하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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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중에 하나, 사라져간 골목!

오늘은 시인이 소환하는 골목으로 달려가 본다.

늦은 귀갓길 가로등 불빛 환한 골목을 걸어가면서도 주변을 살피는 버릇이 생긴 내 모습이 현재의 내 자화상은 아닌가싶어 슬퍼지기도 한다.

언니와 둘이서 쭈그리고 앉아 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던 골목,

학교에 다녀오면 우리집 백구 옆집 누렁이가 꼬리치며 달려와 반겨주던,

개구쟁이 동네 머슴애들 퍽퍽 연탄재 축구를 하던 골목, 막내 동생을 업고 구슬치기하던 계집아이, 객지에 나간 아들 기다리던 어머니가 서있던 그 골목은 이제 아득한 옛 그림 속에만 산다.

 아기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 저녁이 되면 아이들을 불러들이는 엄마들의 목소리, 밤길 술 취한 아버지 노랫소리, 담벼락에 그려진 아이들의 귀여운 낙서가 사는 그 골목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추억을 소환하고 현재를 환기시키는 시인의 능력과 시의 힘을 느끼며 포근한 시 한 수에 마음이 따스해진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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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석중 시인 /

전북 김제 출생

2005년 시집 『숨소리』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숨소리』 『나는 그대를 쓰네』 『촉감』 『물의 혀』 『풀꽃독경』 『외로움에게 미안하다』

전자 디카시집 『그리움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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