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행 신임 금융소비자연맹 회장 기자회견 및 취임식, 금융소비자에 불리한 제도적 환경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32년 동안 금융 소비자를 위해 헌신해온 사람이 있다. 조연행 신임 금융소비자연맹 회장(6대)은 1985년 교보생명에 입사한 이래 16년간 일하면서 보험상품 개발에 매진했고 2002년 보험소비자연맹(현 금소연)을 설립하고 상근 활동가로 활동하면서 금융 소비자 권익을 위해 노력해왔다.

 

조 회장은 8일 오후 17시20분 한국프레스센터 20층 프레스클럽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32년 활동에 대한 소회를 풀어냈다. 조 회장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18시40분 같은 장소에서 금소연 6대 회장 공식 취임식을 가졌다.

 

▲ 조연행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지난 32년의 시간을 회고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 이날 짧은 기자회견이 끝나고 조 회장의 공식 취임식이 열렸다. (사진=이유담 기자)     

 

초심

 

조 회장은 교보생명에서 근무할 당시 최초로 상해보험을 개발해 ‘최단기간 최다판매’ 기록을 달성할 만큼 금융 소비자의 권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왔다. 본격 시민운동에 뛰어들었을 때는 활동비를 마련하기 위해 포장마차를 운영하기도 했다. 조 회장은 그런 진정성으로 금소연에서 그동안 유배당계약자 배당금 청구·카드사 정보유출 손해배상·근저당설정비 반환 등 수많은 소송과 권익운동을 이끌어왔다.  

 

금소연 이사회는 이런 조 회장의 공로를 인정해 창립 이후 최초로 내부 인사를 회장으로 임명했다. 사기업으로 따지면 평사원이 사장에까지 오른 것이다.

 

조 회장은 “초심을 잃어버리고 변질되는 순간 소비자운동은 무너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많은 금융 기업인들과 웃으면서 관계를 맺지만 돌아와서 냉철하게 분석하고 저희만의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노력한다”며 “그런 소신과 색깔을 잃어버리면 끝”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 조 회장은 금융 소비자의 권익만 생각하는 양심을 강조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금융 소비자운동의 불모지인 2002년 한국에서 용감하게 시작하게 된 것도 그런 초심 덕분이었다. 조 회장은 “사실 같은 업계 출신 사람이 등 뒤에 칼꽂는 짓을 할 수 있냐는 비난”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외길을 걸어왔다.  

 

조 회장은 “답은 정의다. 양심을 팔면 존재가치가 없는 조직이 된다고 생각했다. 실제 금소연에서 그렇게 휘둘린 활동가가 있어서 쫓아낸 적도 있었다. 그런 초심이 지속되지 못 했다면 16년 간 버티지도 못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 기업의 횡포

 

조 회장은 변액보험의 불완전 판매·유배당 상품의 배당금 미지급·연금형 종신보험의 눈속임 등 금융사의 소비자 기만 사례는 아주 많다며 하나씩 열거했다. 특히 조 회장은 보험 소비자의 사례를 들어 금융 기업의 횡포를 신랄하게 묘사했다.

 

조 회장은 “보험금을 탄다고 가정해보면 청구에서 심사까지 소비자가 그냥 당할 수밖에 없는, 명백히 소비자에 불리하게 진행되는 것이 현실이다”며 “주치의가 진단서를 끊어주면 이것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다. 보험사는 또 다른 자문위에게 자문을 맡겨서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받아내고 그것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손해사정’의 부당함도 지적했다. 보험 가입자가 손해를 보면 그것이 보험 보상 범위에 해당하는지, 보험금의 지급이 적절했는지 손해사정 과정을 통해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손해사정법인이 대부분 대형 보험사의 자회사인 경우가 많아 공정하지 않다. 보험금 지급자와 수급자가 아닌 제 3자의 평가를 받게 하기 때문에 공정성이 필수적이지만 이미 보험금 지급사와 유착돼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삼성생명·삼성생명서비스손해사정, 삼성화재·삼성화재서비스손해사정·삼성애니카손해사정, 한화생명·한화손해사정, 교보생명·케이씨에이손해사정, 현대해상·현대하이카손해사정, 동부화재·동부씨에이에스손해사정 등이 있다. 

 

이것은 마치 근로복지공단이 노동자 편이 아닌 기업과 유착해서 기업의 입장에서 산업재해를 인정해주지 않는 현실과 유사하다. 

 

기울어진 운동장

 

조 회장은 우리나라 금융 관련 법률과 제도들은 하나같이 금융 공급자 위주로 짜여져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금융 공급자를 규제해야 할 금융당국(금융감독원·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 등)이 거의 기업 편에 서서 판단해 왔다는 것이 조 회장의 시각이다. 즉 운동장이 기울어졌다는 것이다. 조 회장은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 ‘금융적폐 청산’이라고 정의했다.

 

조 회장은 “법과 제도 요소요소를 뜯어보면 소비자에게 불리한 게 한 두 개가 아니다”며 “금융소비자기본법은 선진국에 다 있는 건데 그것조차 못 만들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조 회장은 “물론 국회에서 제윤경·박용진·김관영 의원 등이 열심히 하고 있는데 여야 정권교체가 된 이후 이들의 포지션 설정이 애매해졌다”며 국회에서도 전반적으로 금융 소비자를 위한 의정활동이 소극적인 편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 이날 김관영 의원은 정무위원회에서 일하면서 조 회장의 도움을 자주 받았다고 말했다. (사진=이유담 기자)    

 

삼성생명의 이익을 위한 법률

 

조 회장은 삼성 문제를 꺼냈다. 현행 보험업법이 삼성생명·삼성가의 특혜를 떠받들고 있지만 이는 보험 소비자에게 명백히 불이익이라는 것이다.

 

삼성이 언론과 정치권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서 별로 공론화가 되지 않았지만, 지난 7월 박용진 의원은 최종구 금융위원장 인사청문회에서 현행 보험업법이 삼성생명에만 특혜를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 이날 취임식에는 박용진 의원이 참석했다. (사진=이유담 기자)     

 

박 의원은 현행 보험업법에 따라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7.21%(1060만주·26조5570억원)를 처분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는 명백한 금산분리 원칙 위반이고 오직 삼성만 받는 특혜라고 주장했다.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금융 기업은 총 자산의 3% 이상을 초과해서 일반 기업의 주식을 보유할 수 없다. 하지만 보험업법 감독규정에 따르면 보험사가 보유한 일반 기업의 주식 가치는 취득원가로 계산된다. 허나 다른 금융사인 카드·은행·증권업은 모두 시가(공정가액)로 계산한다. 즉 현재 주식 가치로 평가해야 하는데 과거 취득 당시의 가치로 평가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설명이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 가치는 취득원가(5690억원)로 하면 삼성생명 총 자산의 3% 미만이지만 시가(26조5570억원)로 하면 3%를 훌쩍 넘는다. 박 의원이 일명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이 법률이 통과된다면 삼성생명은 20조원이 넘는 삼성전자 주식을 처분해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1990년대 이전부터 현재까지 210만6115명의 보험 소비자가 삼성생명의 유배당계약 상품에 가입했고 삼성생명은 이 자금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매입할 수 있었다. 

 

이로인해 삼성생명이 거둬들인 시세차익은 대략 8조4000억원에 달한다. 박 의원은 이런 이유가 있기 때문에 삼성생명이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서 그 돈을 유배당계약자에게 나눠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조 회장은 소비자들이 말 그대로 유배당 상품이라 가입했고 수익이 나면 당연히 이들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조 회장은 최종구 금융위원장·장하성 대통령 정책실장 등 정부 관계자의 입장이 법 개정에 소극적이라고 보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가장 상징적인 사례가 삼성 문제라고 보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물론 삼성생명이 20조원이 넘는 주식을 내다팔면 주식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박 의원은 이를 대비하기 위해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마련해놨지만 이 법률 통과도 지지부진한 것이 현실이다.

 

소비자운동의 방법론

 

조 회장은 마냥 기업들을 비판만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잘 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 한다고 인정해주기 위해 노력한다는 설명이다. 예컨대 금소연은 로 KB국민은행·신한카드·미래에셋대우·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생명을 선정했다. 삼성 계열 금융사의 경우 단일한 구성 주체로 볼 수 없고 공과 과가 있기 때문에 구분해서 판단한다는 게 조 회장의 입장이다.

 

조 회장은 단순히 정부 지원이나 후원금에만 의존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보통 기업은 비싼 제품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원성을 무시한다. 조 회장은 그런 차원에서 소비자들이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금소연은 롯데마트 통큰TV를 100대 이상 집단으로 주문해서 조합원에게 공급한 적이 있는데 집단 구매를 할 경우 그 기업에 대한 소비자의 목소리는 커질 수밖에 없다. 

 

조 회장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소비자운동에도 적용된다며 집단소송을 비롯 집단 구매 수요자 3만명만 모이면 기업에 영향력을 미쳐 좋은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고 밝혔다.

 

▲ 이날 취임식에는 각계각층 인사들이 많이 모였다. (사진=박효영 기자)  

 

한편, 이날 개최된 조 회장의 취임식에는 정치권(박용진, 김관영 의원)·기업·시민사회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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