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벗도 없다”는 말은 진부하긴 하지만 외교문제에  관한 한 진리다. 어제까지만 해도 다투고 싸우던 나라가 어떤 계기 하나만 생기면 언제 그랬더냐 싶게 다정해진다.
 
그런가하면 아까까지도 입 속의 사탕이라도 내줄 듯싶게 화기애애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서로 못 잡아먹어 응얼거리는 수도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유사 이래 다투고 싸워온 관계였지 서로 보듬어주고 얼싸 안아본 일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주로 일본에 의해서 저질러진 침범과 침략 때문이다. 태평양의 섬나라인 일본은 걸핏하면 가장 가까운 한국 땅을 넘봤다. 항해기술이 뛰어난 그들은 전통적으로 대륙을 지향할 수밖에 없는 지리적 여건 속에서 한국을 겨냥하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로활동을 하더라도 한반도 쪽으로 나오게 되고 무역을 하는데도 필수불가결한 코스가 한국 땅이었다. 우리나라를 거치지 않고서는 광활한 중국대륙에 접할 수 있는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풍신수길에 의해서 전국이 통일을 이루고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하기까지는 사분오열된 일종의 부족국가였다.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서 상대를 굴복시켜야 했고 일부는 해적노릇을 하며 주로 한반도 남쪽을 약탈했다. 왜구(倭寇)라는 말이 이 때 생겼다.

조선조 당시 세종대왕은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서 해적의 근거지인 대마도 정벌을 결심한다. 다른 나라를 침범하지 않는 전통을 자랑하는 조선에서 왜구의 난동과 약탈이 얼마나 자심했으면 토벌대를 파견하기에 이르렀겠는가.
 
대마도를 정벌한 조선군이 그대로 눌러 앉아 통치를 했다면 대마도는 400년 전에 조선 땅이 되었을 터. 그러나 세종은 해마다 조공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군대를 철수한다.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못 마땅하면 요즘 한국에서 ‘대마도는 한국 땅’이라는 주장을 펴는 이들이 생겨날까.
 
한국정부는 독도에 대해서 억지를 부리는 일본과 달리 ‘대마도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 양식을 가진 정부는 이래야 한다. 일본이 원래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나쁜 습관을 가진 민족이지만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이제는 세계최고의 선진국에 들어있다. 그렇다면 선진국다운 의젓한 자세를 갖는 게 마땅하다. 잘못된 것은 시정해야 하고, 기울어진 것은 바로 잡을 줄 알아야 선진국민이다.
 
일본 최대의 잘못은 군국주의 야욕에 미쳐 이웃나라들을 철저하게 짓밟은 일이다. 그 중에서도 한국은 역사적으로 일본에 당해만 왔다. 우리의 선조들이 양병(養兵)을 게을리 하고 고루한 유학에만 빠져 부국강병의 기본을 저버린 탓이다.
 
임진왜란과 경술국치 등 일본은 조선민족에게 큰 죄악을 저질렀다. 다행히도 연합국의 승리로 우리는 조국광복을 이뤘다. 안타깝게도 반 조각 광복이다. 미 쏘의 힘겨루기에서 조국은 두 동강났다. 게다가 6.25민족상잔의 참화도 겪었다.
 
일본은 패전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국전 특수로 부활했다. 한국을 짓밟았던 그들이 오히려 한국전 때문에 살아난 것이다. 한국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해야 할 일본이 뱀 대가리처럼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고자세를 취한 것은 용혹무괴한 일이라고 치부하더라도 이제는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고,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강변하며, 한국침탈에 대한 모든 사과 담화를 없었던 일로 되돌리겠다고 뻔뻔스럽게 나오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 요즘 한국과 미국 등지에서 아무 원혐도 없는 사람을 쏘고, 찌르는 ‘묻지마’ 범죄가 극성이다.

일본정부의 행태는 바로 묻지마 범죄를 빼 닮았다. 한 나라의 정부수장이 과거 선배총리들이 인정하고 사과했던 모든 외교행위를 부정하고 막되 먹은 발언을 서슴지 않는 것은 이성을 잃은 행위다. 외상과 전직 총리라는 사람까지 가세하고 있어 묻지마 식 범죄외교는 정점(頂點)을 치달아 오르고 있다.
 
일본은 센가쿠와 쿠릴열도를 놓고 중국, 러시아와도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지만 이들 나라에 대해서는 머리를 조아리며 호혜친선의 목소리를 높인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비겁한 민족성을 그대로 들어낸다. 한국을 얕잡아보는 저들의 숨어있는 내심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외교를 하기 어려운 나라다.

이번 사태는 이명박대통령의 독도순시가 빌미가 되었다. 대통령이 자기나라 지방을 순시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있는 일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대통령의 순시를 쌍수로 환영했다. 그런데 일본 측의 반응이 묻지마로 나오자 이번에는 대통령의 외교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헛소리하는 식자들이 나온다.
 
대학교수요, 외교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교묘한 언사를 농하며 ‘독도순시는 하지 않아야 했으며’ ‘일왕(日王)에 대한 사과요구도 지나쳤다’는 식으로 은근슬쩍 비판한다. 참으로 식자우환(識字憂患)이다.
 
일본에 대해서 우리가 저자세를 취해야 할 필요도 없지만 지나친 고자세도 불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직접 나선 순시나 사과요구는 광복이후 처음 나온 얘기다. 그동안 우리 대통령들이 못한 것을 이명박이 했을 뿐이다. 박수로 격려하는 게 순서다. 식자(識者)를 자처하려면 이러한 역사를 먼저 인식한 다음 나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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