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레인 사키르 사막지대 유전의 모습.     


 [중앙뉴스=신주영기자]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락했지만 곧 반등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미 세계 경기 둔화와 공급 과잉, 달러화 강세로 시장이 직격탄을 맞았지만 시장 불안 요인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3일 국제금융시장과 원자재시장 등에 따르면 이란의 핵협상 타결과 중국의 경기 둔화, 연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전망 등으로 원자재 시장의 고난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세계은행은 전 세계의 에너지 자원 가격이 올해 내내 약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올해 에너지 가격은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여전히 약 39% 낮은 수준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이날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전망했다.

 

◇ 이란 핵협상 타결…유가 반등 어려워

 

국제유가는 올해 초 배럴당 40달러대로 급락한 이후 최근 50달러 초반에서 좀처럼 오르지 못하고 있다. 

 

이란 핵협상 타결로 국제사회의 석유 금수조치가 해제될 예정이어서 이란발 원유 공급에 국제유가가 반등할 가능성은 더 낮아졌다.

 

이미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 등은 사상 최대 규모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고,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산유량도 거의 3년 만에 최대를 보였다.

 

이란은 세계 4위 산유국으로 지난 14일 핵협상 타결에 따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증 절차를 마치면 이르면 12월이나 내년 초에 원유 수출을 늘릴 수 있다.

 

씨티퓨처스의 팀 에번스 에너지 애널리스트는 블룸버그를 통해 "이라크의 산유량이 늘고 있고, 사우디도 생산을 늘려 OPEC의 총 산유량은 증가추세에 있다"면서 "OPEC이 산유량을 더 늘릴 때마다 원유시장의 불균형 해소는 더 늦춰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란은 제재 해제에 대비해 하루 산유량을 400만 배럴로 늘릴 수 있게 길을 터주라고 OPEC 회원국에 촉구해왔다. 지난 6월 기준 하루 산유량은 285만배럴이다.

 

같은 시기 사우디의 일일 산유량은 1천56만4천배럴로 지난 1980년 최고치 기록을 넘어섰다. 이라크는 438만8천배럴로 1985년 기록을 갈아치웠다.

 

테일러우드 캐피털의 뷰 테일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CNBC를 통해 원유는 지금 "공급 주도의 약세장"에 있고 가격 상승보다 하락 가능성이 더 크다고 진단했다.

 

모건스탠리는 22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세계 석유산업이 1986년 불황 때보다 더 심각하다면서 OPEC의 공급 과잉으로 인한 유가 약세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 원자재 시장의 '고릴라' 중국의 경기둔화 

 

원자재 시장에서 중국의 비중은 독보적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2012년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9천100만톤(t) 규모의 금속을 절반가량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0년에는 4%를 소비했다.

 

석탄과 원유 소비량도 막대하다. 영국 석유회사 BP의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석탄 수요 비중은 50.5%에 이르고, 원유는 12%로 미국(20%) 다음으로 많다.

 

농산물 수요도 엄청나 전 세계의 60%의 대두를 수입하고 면화와 쌀 수입분도 상당하다.

이런 중국의 지난 1분기와 2분기 성장률은 각각 7%로 6년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월가의 대표적 비관론자인 '닥터둠' 마크 파버는 최근 CNBC를 통해 중국이 세계 공업용 원자재의 절반가량을 소비하고 있다면서 이 나라의 경기 둔화로 인한 파급효과가 광범위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중국 경제가 둔화하면 공업용 원자재 수요가 감소할 것이다. 이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중동,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호주 등 모든 원자재 수출국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는 글로벌 경제에 커다란 충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씨티그룹은 중국의 제조업과 기반시설, 부동산 부문에 대한 익스포저가 큰 석탄과 철광석, 철강 등의 원자재가 특히 중국의 경기 둔화로 크게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HSBC에 따르면 지난 6월 중국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9.4로 집게 됐다. 지수는 지난 3월 11개월 만에 최저치인 49.2로 떨어졌고, 이후 업황 기준선인 50을 계속 밑돌았다. 

 

◇ 美 연준, 최소한 연내 금리인상…9월 가능성 높아

 

원자재 시장의 최대 악재 가운데 하나인 강달러 기세도 꺾이지 않을 전망이다.

연준이 오는 9월 금리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는 것이 그 배경이다.

 

지난주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미 하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해 "연내 어느 시점에 연방기금금리를 인상하는 데 적절한 여건이 마련될 것"이라고 언급해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라보뱅크의 피오트 마티스 외환 전략가는 "연준이 올해 어떤 시기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사실은 여전히 달러화를 긍정적으로 보게 한다"고 말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도 연준이 9월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보여 달러화 강세 전망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6개 주요 바스켓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지수는 지난 20일 98.31로 3개월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연준의 금리인상과 이에 따른 자본 유출에 가장 취약한 국가로 꼽히는 곳은 바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다. 이들 자국 통화의 약세에도 불구하고 외화차입 규모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두 국가는 원자재에 대한 경기 의존도가 높아 이미 원자재 가격 폭락으로 경기가 나빠질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달러화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안전자산으로서의 금의 매력도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베스텍 자산운용의 조지 셰빌리 포트폴리오매니저는 로이터에 "미국 경기 회복세가 완연하기 때문에 달러의 '안전 자산' 위상은 갈수록 커지지만 금은 상대적으로 추락하고 있다"고 말

했다.

금값은 올해 들어 7.9% 하락했다.

 

골드만삭스는 금값이 2009년 이후 처음으로 온스당 1천달러를 밑돌 것으로 예상했다.

 

◇ 한국 경제 영향은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에너지 수입은 총수입의 30%를 차지하고 있어 원자재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이 때문에 원자재 가격의 하향 안정세는 기업의 수입 비용 감소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자원보유국에 대한 수출 감소 등의 부정적 영향도 예상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의 심혜정 연구원은 "엔저나 유로환율 약세로 (우리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원자재 가격 하락이 채산성 제고나 비용 절감에 도움을 줄 것"이라면서 "비용 절감분을 투자나 상품 개발 등 경쟁력 제고에 쓸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원보유국의 경기 급락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도 필요하다고 그는 주문했다.

심 연구원은 자원 신흥국의 경우에 주문취소가 나타나거나 수출대금 미회수, 불만 제기 증가 등의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기업의) 원가 절감이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면서 유가가 이미 크게 떨어졌는데도 아직 제품 가격 하락 등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심 연구원은 꼬집었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