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승교 전 통진당 최고위원....가시는 길은 꽃길이길.
故 김승교 전 통진당 최고위원....가시는 길은 꽃길이길.
  • 이현정 기자
  • 승인 2015.09.03 1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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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뉴스=이현정 기자] 진보통일운동가·민주인권변호사로서 활동하다 간암으로 31일 새벽 별세한 고(故) 김승교(47) 전 통진당 최고위원의 영결식이 치러졌다.

 

2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대한문 앞에서 치러진 영결식에는 김 전 위원을 애도하는

▲ 암 진단 직후 고려대 의대 앞에서 인생의 동반자인 황정화 변호사와 함께     ©


이들이 모여들었다.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고인을 국가보안법 피해자로 감옥에 있을 때 처음 뵙고, 법정·민주주의 파탄의 거리·세월호 참사 탄식 농성장에서 뵀다"며 "인권 민주 변호사로서가 아니라 자주민주 통일열사로 변호사님을 보내겠다"고 추도했다.

 

강병기 민주수호 공안탄압대책회의 대표는 "고인은 어렵고 힘들고, 누구든지 피해갔으면 하는 자리에 앞장서는 사람이다"며 "몸은 있지 못하지만 늘 함께 우리 곁에 있어달라고 말하고 싶다"고 울먹여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조영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총장은 "고인은 인권과 민주주의가 있어야 할 자리에 늘 있었다"며 "동료 후배들도 주저하는 순간에 호탕한 웃음 한방으로 고생의 길을 택했던 우직한 변호사였다"고 밝혔다.

 

추도사가 진행되는 동안 참석자들은 고인을 회상하며 오열하는 이들이 많았다. 김 전 위원은 99년 인권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하며 돈 되는 일을 쫓지 않았다. 억울한 의뢰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통일운동에 앞장서며 함께 활동하는 청년들을 건사해온 탓에 김 전 위원의 영결식에는 마음으로 통곡하는 이들이 모여들었다.

 

이날 영결식은 1시간 정도 진행되었고 김 변호사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추도하기 위해 200여명이 자리했다.

 

소속 법무법인 향법(옛 정평) 심재환 대표는 “99년부터 김승교 변호사가 거의 10여년 홀로 국가보안법 사건은 도맡아했다고 봐야 합니다. 이후엔 이광철 변호사 등이 결합해서 함께 하기 시작했지만 당시엔 연대항쟁도 있었고 워낙 공안광풍이 심해 누가 잘 나서지 않았습니다.” 며 윤기진, 김형주, 이희철 등 한총련 의장들의 재판과 일심회, 아람회 재심, 송두율교수사건, 민간인학살 피해자 재판 등 그가 관계한 국가보안법 사건이 셀 수 없을 정도라고 밝혔다.

 

법무법인 향법 사무장은 고 김 변호사에 대해 “이곳 저곳 다 돌아다녔지만 결국 사건을 해결하지 못해 발 동동 구르다 인터넷을 뒤져 ‘가장 양심적인 인권변호사가 김승교 변호사라던데...’ 하며 막무가내로 변호사 사무실 문을 밀고 들어가는 돈 없고 억울한 의뢰인들이 많습니다. 들어보면 뻔히 이길 수 없는 재판인데 김승교 변호사님은 의뢰인들 그 애절한 하소연을 다 들어주고 있습니다. 차마 말을 끊지 못해서 들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라며 고인을 더없이 따뜻한 사람이라 말했다.

김 전 위원의 대학 선배이자 통진당 시절 함께했던 김창현 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은 "김 변호사는 성실하고 겸손한 사람이었다"며 "의인은 항상 빨리 간다"고 안타까워했다.

 

영결식이 치러지는 단상 양옆에는 고인의 명복을 비는 근조 화환이 자리했다. 몇몇 장례위원들은 단상 옆에서 '국가보안법 철폐', '민중생존권 쟁취', '민주주의 수호' 등 피켓 문구를 든 채 영결식에 참여했다.

 

장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모란공원이다.

 

세상에서 헐벗고 굶주린 자들이 당당하게 사는 세상을 꿈꾸며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으로 민족과 통일을 위해 앞장서 온 故 김승교 전 위원의 가는 길만큼은 가시밭길이 아니길 함께 추모해본다.

 

▶ 김승교 전 위원의 일생

1968년 경남 진양군 출신인 고인은 86년 고려대 법학과에 입학한 뒤 학생운동을 하며 87년 6월 항쟁에 참여했다. 졸업을 한 뒤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상임공동대표를 지내는 등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앞장섰다. 그러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어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96년 38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자마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민변에서는 ‘국가보안법연구 특별위원회’와 ‘통일위원회’ 소속으로 여러 국가보안법 사건을 앞장서며 맡아 억울한 희생자들을 구명하는 데 헌신했다.

 

고인은 2008년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총선에서 도봉갑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통합진보당

으로 통합된 뒤 2013년 최고위원으로 당선됐다.

 

그는 작년 12월 세월호 유족들과 함께 단식농성 중 쓰러져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8월 중순에는 통진당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가택 압수수색을 받으며 고초를 겪어야 했다.

 

[약력]

고인 약력

경남진주 출생(1968년)

 

o 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 중앙당기위원장

-민주노동당 중앙위원

-당대표선거관련진상조사위원회, 5.31지방선거중앙당선대본법률지원단 활동

-정책위원회정책위원, 중앙당기위원

 

o 통합진보당

-통합진보당 최고위원

-통합진보당 당원교육위원장

-통합진보당 비상대책위원

-통합진보당 비상대책위원, 통합진보당 중앙선거관리위원장(2012년)

 

o 학력․경력 등

-고려대학교 법학과 입학(1986년)

-고려대 법과대학 사회부장(1988년)

-사법시험제38회합격(1996년), 사법연수원제28기수료(1999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원(1999년)

-뉴욕국제전범재판 시민검사(2001년)

-한성대학교 부동산대학원 외래교수(2001~2006년)

-광주 5.18 시민법정 시민검사(2002년)

-한국민권연구소 소장,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상임대표(2002~2003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 순회교육 강사(2002~2006년)

-대북송금특검 특별수사관(2003~2004년)

-국가인권위원회 국가보안법TFT 위원(2003~2004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순회교육강사(2002~2006년)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 공동의장(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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