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노짱님!>( 2) "오색채운…님의 영혼"

▲ 그 구름은 바로 노짱님의 영혼이기도 하다.


창창히 맑은 날의 구름은 더 없이 신비롭다. 세상의 빛을 전파하기에 저리도 평화로울까. 마냥 자유롭게 왔다가 소리 없이 떠나도 미련과 아쉬움을 주지 않는 것도 구름만의 특색이다. 그러나 하늘에 그들이 없다면 참 쓸쓸할 것 같다. 새롭고 신기한 소식들을 접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

노무현대통령 사저 앞 봉하 들녘에서 나는 오색구름의 자태를 상상해본다. 그 구름은 바로 노짱님의 영혼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곳 어딘가에 오색띠를 두른 오색채운이 우리를 향해 환히 비추고 있을지 모른다. 꿈을 묻고 떠난 고향 들녘에 꿈이 자라는 염원을 그 먼 곳에서도 어찌 쉬이 잊을 것인가.

모두가 건강한 흙의 주인으로 태어나기를 간절한 바램으로 영원히 이곳을 지켜주지 싶다. 한 그루 풀 포기에게까지 못다한 정 나누던 노짱님의 소탈함은 분명 구도자의 길을 뜻하는 오색채운의 기운을 이 자리로 안내하리란 예감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모내기를 앞두고 떠난 님의 고향들판에는 생전 그의 꿈과 희망이 새록새록 살아나고 있다. 꽥꽥 요란한 울음들로 들판에 하모니를 낳던 오리농군들이 제 우리를 찾아간지도 한참 되었다. 뒤뚱뒤뚱 못난이걸음 명수들이 온 여름내 벼 이랑을 누비며 살충약사 완수를 끝내고 내년을 위해 동면에들어간 것이다. 농약냄새가 봉화마을의 공기를 만들던 들녘이 이리도 빠르게 오리들의 놀이터가 될 줄 누가 알았으랴.

9월의 따가운 햇살아래 고개 숙일 채비를 하는 벼들은 영원한 노짱님의 유산이 되고 있다. 오리를 손에 안고 사랑스럽게 어루만지던 대통령은 그 미물에게 무엇을 속삭였을까. 재임시절 무척이나 보고싶었던 너를 만났으니 이제는 영원한 동반자가 되어달라는 약속이라도 보냈을까 아니면 먼 나라에 가서도 꼭 너를 보살피겠으니 나의 염원인 들판을 지켜달라는 부탁을 하였는지 결실을 향한 들녘에 서니 그의 인품이 더 없이 넉넉하게 다가선다.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고 영농후계자인 고인의 꿈이 영글어 가는 이곳은 조용한 평화만이 깃든 듯 하다. 무엇보다 안개 자욱한 이른 아침 모내기를 앞둔 논둑 길 걸으며 미꾸라지 노니는 광경을 꿈꾸었을 그의 영상이 다가서기도 한다.

꼬물꼬물 흙탕물 일으키며 자맥질하던 고기들을 잡으러 두 손 꾹꾹 밀어 넣던 어린 날의 기억도 떠 올렸을 테고, 거머리가 자신의 다리를 향해 달려오던 그 무서움에 떨었던 지난 시간의 흥미도 한껏 누려 보았지 싶다. 그들이 바로 기름진땅의 주인이라는 것을 몰랐던 철없던 시절의 어리석음을 비웃기도 하면서 말이다.

또 갖 세수를 한 듯한 맑은 얼굴을 쏘옥 내미는 풀꽃들의 애교는 어떠했겠는가. 수줍은 듯하면서 당당하고 아주 여린 것 같지만 꺾이지 않는 강인함이 대통령이란 위치에서도 이 자리를 떠날 수 없게 만들었을 것 같다. 촉촉이 아침이슬 머금은 자태의 청초함엔 기어코 바보 노무현이 되고 말았을까. 퇴임 후 꼭 돌아오겠다던 기약도 그들 앞엔 도저히 어길 수 없는 약속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비운이 봉하들녘을 덮친 날 물만 그득그득 담긴 논들은 주인 잃은 설움을 꾸역꾸역 삼켰다. 다시 오리를 맞이할 수 있을지 초록 모들이 자신의 옷으로 만들어줄지 불안과 초조함을 잠재울 수 없었던 게다. 또는 화학약품들이 다시 뿌려진다면 숨쉴 수 없이 갑갑했던 지난 시간들을 어떻게 답습해야할까. 건강한 들녘으로 태어나기를 바랬던 이곳 식구들은 한숨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유업은 불꽃처럼 타올랐다. 함께 했던 동지들이 기꺼이 당신의 유지를 받들었던 것이다. 일부를 시행했던 자리가 더 많은 터전을 오리농법으로 전향했고 앞으로 김해 전 들녘을 확대한다는 보고도 있다. 이제는 자운영과 호밀을 심어 땅 지력도 키울 생각이며 미꾸라지도 많이 방생하여 더욱 효과를 높이겠단다. 얼마나 빛나는 쾌거인가. 도시의 편리를 떠나 태어난 고향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그 정신이 말이다.

서럽게 서럽게 울었던 그 날의 논들은 이제 황금들녘으로 변모했다. 떠난 주인의 뜻을 받들 듯 온 여름내 쉬지 않고 결실을 만들어냈다. 쨍쨍한 햇살에도 타지 않으려 노력했고 태풍이 불어온다 해도 스러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무엇보다 오리들이 도와주어 병충해침범을 받지 않으니 더욱 안심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

이제 봉하들녘은 영원한 님의 터전으로 자리잡았다. 더 이상 울지 않을 것이며 더 큰 웃음의 바다로 자리 매김 될 것이다. 건강한 쌀로 태어나는 곡창지대로 부상하며 영농기술이 탄생되는 새로운 들녘으로 발전하리라 믿는다.

대통령으로서의 잘못을 한 시민으로 성공하여 만회하고 싶다는 노짱님의 소박했던 바램은 이제 봉하들녘에서 그 꿈이 자라고 있다. 비록 몸은 갔지만 그의 영혼은 살기 좋은 농촌으로 인도하듯 우리에게 더 없이 친숙한 대통령으로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권력자는 자기의 공로와 업적을 기록하고 자랑하기에 바쁘지만 자신의 실책을 속죄하고자 농촌재건에 일생을 바치는 대통령은 역사적으로 과연 얼마나 있었던가. 준비된 대통령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고 늘 자신을 책망하고 부끄러워하는 그의 겸손은 지상의 권력을 무색케 할 만큼 편안한 사람으로 인식케 했다.

항상 낮은 곳으로 임했던 대통령, 오색채운은 바로 그런 사람에게 나타나는 법이다. 이제는 저 높은 곳에서 오색구름 타고 이루지 못했던 염원 한껏 펼쳐보는 세상 맞이하리라 여겨본다. 그 뜻 이승으로 미치어 모두에게 오색채운이 머무는 환경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의 농촌이 튼실하게 살아난다면 분명 그 기운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건강한 먹거리는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만드니까.

오늘따라 노짱님의 환한 웃음이 봉하들녘을 가득 메운 듯하다.



▼ 김소희 프로필

91년 문예사조 수필등단.
한국영농신문 농촌문학상 
부경문학회 회원
부산수필문협회원 
kimsohe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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