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질랜드 중앙은행    

 

[중앙뉴스=신주영기자]올해 들어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기준금리 인하가 통화가치 절하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2일 보도했다.

 

교과서에 적힌 것과는 반대로 기준금리 인하가 오히려 통화가치 상승으로 이어지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잇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의 '희생양'은 뉴질랜드 중앙은행이었다.

 

뉴질랜드 중앙은행은 11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해 사상 최저치인 2%로 끌어내렸지만, 키위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뉴질랜드달러의 가치는 그 즉시 최근 한 달 만에 최고수준으로 뛰어올랐다.

 

일본은행도 같은 현상에 시달렸다.

일본은행이 올해 초 사상 최초로 마이너스금리를 도입한 이후 엔화가치는 15.9% 폭등했다.

인도네시아나 러시아, 헝가리, 한국, 대만의 중앙은행도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통화가치 급등을 막지 못했다고 WSJ은 지적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 국가가 기준금리 인하에도 국채금리가 플러스(+) 영역에 있기 때문이라고 펀드매니저들은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이들 국채는 수익에 굶주린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인도네시아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3.2%, 러시아는 8.3%, 헝가리는 2.8%, 한국은 1.4%, 대만은 0.7%다.

 

JP모건에 따르면 전세계 국채의 3분의 1인 8조8천억 달러 상당은 금리가 마이너스 영역에 진입했다. 투자자들은 마이너스금리 국채를 만기까지 보유하면 원래 투자한 금액보다 적은 금액을 되돌려받게 된다.

 

제임스 궉 아문디자산운용 외환운용부문장은 "전세계 채권금리가 상당 부분 마이너스인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플러스 금리라면 무엇이든 서둘러 사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하루히코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     

 

다만, 일본은 예외다. 국채금리가 점점 더 마이너스 영역으로 내려가고 있지만, 통화가치는 상승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통화정책이 자금조달 통화로서 엔화의 인기에 찬물을 끼얹기에는 효과가 떨어진다는 인식이 확산된 데 따른 것이라고 투자자들과 애널리스트들은 지적했다.

 

이에 따라 여러 나라가 사실상 제로금리 정책을 펼칠 때는 중앙은행이 자국 통화 가치를 관리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힘을 얻고 있다고 BNP파리바는 분석했다.

 

윌리엄 데 빌더 BNP파리바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옛 교과서 모델이 죽지는 않았지만, 유효성은 약해졌다"고 말했다.

 

플러스 국채금리가 원인이라는 것 외에 다른 분석도 있다.

 

뉴질랜드의 경우 투기꾼들이 0.25%포인트보다 더 큰 기준금리 인하에 베팅했다가 이를 되돌리기 위해 뉴질랜드달러를 사들이면서 통화가치가 상승한 것이라고 WSJ은 설명했다.

 

뉴질랜드 중앙은행은 수출업자 보호와 물가관리를 위한 통화절하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뉴질랜드달러 가치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중앙은행의 이런 혼란스러운 메시지는 통화절하를 위한 중앙은행의 노력이 유효하지 않다는 자인으로 해석되면서 뉴질랜드달러의 가치를 더욱 끌어올렸다.

 

호주중앙은행 총재도 지난주 같은 문제에 부딪혔다. 호주는 올해 들어 기준금리를 두 차례 인하했지만, 호주달러는 3개월 만에 최고수준으로 뛰었다. 심지어 호주달러의 가치는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하기 전보다 높아졌다.

 

호주와 뉴질랜드 모두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각각 1.86%와 2.12%로 전 세계 주요 투자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밖에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 인상 전망을 지나치게 연기해 달러가치 절상이 제약되면서 달러화 대비 다른 통화의 절하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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