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화의 거목' 박형규 목사 빈소 조문행렬…정치인 줄이어

 

▲ 우리나라 민주화운동 역사와 함께 해온 박형규 목사(94세)가 18일 오후 5시께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 중앙뉴스

 

우리나라 민주화운동 역사와 함께 해온 박형규 목사(94세)가 18일 오후 5시께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1923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박 목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을 지내고 남북평화재단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박형규 목사는 1960~70년대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있었고 4.19 혁명 당시부터 군부 독재정권에 저항해 유신 반대에 앞장 서다 내란음모죄, 긴급조치, 집시법 위반 등의 죄목으로 6차례에 걸쳐 투옥되기도 했으며 1974년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해 15년형을 선고받았다.

 

경남 마산 출생으로 부산대 철학과를 나온 박 목사는 도쿄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1959년 공덕교회 부목사로 부임하며 목회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박 목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총회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남북평화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평생을 인권ㆍ민주화ㆍ빈민운동에 바쳤다.

 

'해방의 길목에서', '해방을 향한 순례', '파수꾼의 함성', '행동하는 신학 실천하는 신앙인' 등을 저서로 남긴 박 목사는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로 2010년 만해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박 목사의 소천 소식이 알려지자 가장 먼저 달려온 건 최근 정계복귀 수순을 밟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다.이후 문재인 전 대표, 이재오 전 의원,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등이 잇달아 빈소를 찾았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도 19일 오전 11시쯤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김 대표는 이날 박 목사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한 번도 뵌 적 없고 잘 알지도 못하지만 "유신시절 민주화운동에 고생을 많이 하신 분"이라며 "오늘날 한국이 정치적 민주주의로 발전하는 데에 크게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전·현직 유력 정치인과 교계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빈소 앞에는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이 보낸 화환 20여개가 설치됐다.  

 

한편 박 목사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01호실이며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으로는 아들 종렬ㆍ종관, 딸 순자ㆍ경란 등 2남2녀가 있다.

 

/중앙뉴스/윤장섭 기자 news@eja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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