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줄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는데 너도나도 입만 열면 차기 대통령 타령들이다. 한마디로 김칫국부터 마시는 형국이다. 지금 당장 선거를 치르면 누가 유리하다든가, 몇 달 늦추면 다른 누가 더 유리할 것이라는 등 온통 선거 얘기뿐이다.

 

박근혜가 엄연히 현직 대통령으로 아직 한참이나 임기가 남았는데 이미 국민의 안중에서는 사라졌다. 사실상 식물대통령이다. 12월9일 탄핵안을 국회에서 표결하겠다고 합의한 야당에서는 모자라는 정족수를 새누리당 비박계가 채워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으나 이미 의원총회에서 ‘4월퇴진 6월대선’이라는 프레임을 결정한 터여서 쉬워 보이지 않는다.

 

설혹 탄핵안이 가결된다고 치더라도 대통령 권한행사만 중지될 뿐 최장 180일을 헌재에서 심의할 수 있어 노무현 때처럼 두 달 내에 끝장날 것 같지도 않다. 더구나 지난번 국가원로들의 모임에서 4월퇴진을 건의한 것이 마치 하나의 기준처럼 굳어져 있어 대통령이 임기단축이라는 용어대신 4월퇴진을 확정지어 발표하면 그대로 굳어질 공산이 크다.

 

그것은 촛불민심에 반하는 것이라는 문재인 등의 반발이 거세지만 많은 국민들은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선호한다. 문재인이나 안철수가 초강경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현재 위치가 대선에 출마하기 가장 좋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몇 달 늦춰지면 다른 잠룡들이 치고 올라올 가능성이 커진다.

 

정계를 은퇴했다가 다시 복귀한 손학규는 지식인들 사이에 신망이 높으며 국민들의 존경도 받는다. 유엔사무총장을 끝마치는 반기문은 최순실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는 여론조사에서 단연 독보적이었다. 박원순 원희룡 안희정 남경필 이재명 오세훈 등도 기세를 올리고 있다. 김무성은 스스로 대선출마 의사를 접어 더 먼 곳을 겨냥하고 있다.

 

이처럼 생각하지도 않았던 대선이 눈앞에 닥쳐온 현실 앞에서 우리는 냉철하게 사태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많은 식자들은 ‘제왕적 대통령’에 그 근본원인이 있다고 단정한다. 유신헌법이라면 모를까 6월항쟁에 의해서 쟁취한 ‘직선대통령 민주헌법’이 왜 ‘제왕’으로 변했을까.

 

이 헌법에 의해서 대통령으로 뽑힌 사람만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6명이다. 그들이 하나같이 제왕적인 권력을 휘둘렀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부정부패와 비리혐의로 국민에게 사과하고 측근들은 사법 처리되었다. 그렇다면 그런 권한을 부여한 헌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고쳐야만 된다는 주장은 하루 이틀 사이에 생긴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하기만 하면 까먹고 만다.

 

김영삼은 3당합당을 하면서 내각제개헌 각서까지 써놓고도 이를 부인했다. 막강한 권한을 버리기 싫어서다. 김대중은 김종필을 영입하면서 내각제를 약속했으나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뿐 약속은 지키지 않는’ 사람이다. 노무현이나 이명박 시절에도 간헐적으로 개헌이 논의되었지만 대통령 본인은 물론 권력을 향유한 측근들이 완강하게 버티는 통에 몇몇 사람들의 간절함만 두드러졌지 구체적인 진전이 없었다.

 

박근혜 역시 ‘4년 중임제 대통령’을 선호했으나 당선 후에는 개헌논의는 국정의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알쏭달쏭한 표현으로 비켜갔다가 이 지경을 만난 것이다. 개헌은 최순실의 점괘에 들어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제는 눈을 부릅뜨고 무엇이 나라를 위해서 필요한 것인지 진지하게 논의하지 않으면 안 될 절대 절명의 순간에 봉착했다. 또 다시 현행 헌법을 그대로 놔두고 대선을 치르게 된다면 새로 뽑힌 대통령은 ‘제왕’이 아니란 말인가.

 

평소에는 정치에 대한 관심을 별로 표현하지 않던 사람도 대통령 선거만 돌아오면 갑자기 정치평론가로 변신한다. 그동안 뒷전에 숨겼던 재능을 맘껏 발산한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후보의 출신지역이다. 보수적 성향의 인사도 자기지역의 진보후보에 대해서는 절대옹호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진보성향을 두둔한다. 스스로 진보로 탈바꿈한다. 이념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후보가 자기출신 지역이기 때문이다. 호남과 영남은 그동안 한국정치의 주역역할을 자임하며 진보와 보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충청도는 JP의 핫바지에 휩쓸려 캐스팅보트 역할에 만족했으나 이번에는 칼을 갈고 있다. 반기문이 있기 때문이다.

 

충청도는 4.19 직후 내각책임제 하에서 국회선출 대통령으로 윤보선이 당선한 일이 있으나 권한 없는 대통령이었다. 이번에는 반기문을 내세워 제대로 된 대통령을 갖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호남에서 열망하던 김대중의 열기를 그대로 닮았다. 박근혜의 뒤를 이을 후보가 TK에는 없는 것도 강점이다. 해볼 만한 싸움이다. 한마디로 강력한 지역감정을 이용하려는 정치수법이다. 지역감정은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적나라하게 나타내는 악순환의 고리다.

 

지역을 내세운 정치가 없어지지 않고서는 국론통일도 되지 않고, 부정부패도 사그라지지 않는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이를 바로 잡을 기회가 없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히는 법이다. 박근혜의 겉면에만 홀렸던 국민들은 최순실이 등 뒤에 매미처럼 달라붙어 농단치는 것을 몰랐다가 대 실망을 하고 말았다.

 

이런 대통령을 뽑아선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개헌을 통하여 직선제 대통령을 없애는 것이 순서다. 내각책임제로 바꾸면 간단하다. 나라의 먼 미래를 생각한다면 지역감정을 상쇄하는 내각책임제 개헌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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