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인 충남문학관 관장 / 작가     ©중앙뉴스

[중앙뉴스=이재인] 지난해 연말에 일본의 도쿄 지역에 있는 문학관 몇 군데를 둘러보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른바 한국문학관 전문인력 해외 선진문학관 탐방의 일원이었다. 사실 일본은 선진국이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대체로 일본을 선진국으로 인정하는데 상당히 인색하다.

이는 자신감을 갖춘 국민으로서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실체를 파악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자세 또한 필요하다. 필자가 알기로 일본 문학관 숫자는 660여관 정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00여개가 넘는데 단순히 숫자로 비교해보면 상당한 차이가 난다.

하지만 관의 숫자가 판단의 기준은 아니다. 그 문학관 운영의 투명성과 기여성, 그리고 활용성, 콘텐츠의 다양성이 주 판단의 기준이 된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문학관은 이 기준에 의하면 일본 문학관 비해 아직도 갈 길이 요원한 실정이다.

 

필자는 문학관 운영자로서 유럽 국가들이 자랑하는 그들 관을 일찍이 돌아본 경험이 있다. 유럽이나 일본은 문학관은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 있었다. 이들 나라의 문학관들은 개인이 사재를 털어 세운 경우가 극히 드물다. 그러니까 지역의 뜻있는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운영을 한다.

안내에서 해설까지 시니어 봉사단이 아니면 후원단체로서 그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어려운 경제적 짐을 나누어지고 가는 길이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문학관과 비교하면 이들의 운영방식은 본받을 만하다 하겠다.

 

우리 문학관의 체질을 강화시키고 지역사회의 뮤지엄으로서 책임을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치하할만하다. 내 고장, 내 지역, 내가 알고 있는 시인·작가의 집은 그 작가가 세상을 떠난 다음은 다음 세대의 책임을 전수받게 한다는 점은 좋은 인상이었다.

후원자 명단, 후원 액수, 이를 집행하는 내역이 백일하에 드러내고 있어 이들의 공금 집행이 정확하고 믿음직했다. 우리도 어느 어려운 유족이나 일가친척이 문학관 명맥을 유지하다 보면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그러니 국가나 지방 자치단체 지원은 있으되, 전적으로 운영의 주체가 무슨 후원회나 아니면 숭모회 같은 기능으로 구성되면 좋을 것이다.

국가의 지원이나 보조금이란 사실상 지렁이 오줌이라 할 만큼 적은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를 기대하지 말고 지역의 특산물과 연계하여 이를 판매하거나 전시함으로써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향도 권장할만하다.

 

우리나라의 문학관은 작가나 시인이 태어났거나 자란 고장에 자리를 잡는다. 지역이나 연고도 중요하다. 그러나 지역 관광지를 문학관과 연계시키는 일은 매우 생산적일 수가 있다. 그것은 문학관이나 지역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다음으로 이 뮤지엄에 근무하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제도적 교육과 처우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문학관 지원법에 의해 전문 학예사를 지원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대학원까지 마친 전문 인력을 마치 비정규직처럼 대우하고 있다. 이러면 우리나라 문학관의 미래는 없다.

인재를 키우고 이를 활용하는 일은 국력을 신장시키는 일이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 같은 나라조차 전통문화와 삶의 질을 높이는 곳에는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문화 예술이 곧 나라의 저력이고 이 또한 국가의 에너지이다. 에너지가 있어야 국가기간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게 된다.

 

얼마 전에 필자는 한국에너지 공단에서 실시한 작품 공모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초등학교 5학년생이 쓴 글 가운데 나의 가슴을 적시는 문구가 하나 있어 여기에 옮겨 적는다.

 

- 문화는 국력의 원동력이고 국가의 에너지이니 이를 잘 활용하면 우리도 선진국의 지위를 획득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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