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인 충남문학관 관장 / 작가     ©중앙뉴스

[중앙뉴스=이재인] 일본의 고마자와 대학을 다녀왔다.

일본 도쿄도 세타가야 구에 있다. 1592년에 선불교 일파인 소토슈가 세운 승려학교의 기원이다. 건학 정신은 행학일여(行學一如) 신성경애(信誠敬愛)이다. 불교 연구를 위한 대학으로 우리나라로 말하면 동국대학과 같은 불교대학이다.

 

이 대학엔 학과가 선학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여러 승려들이 유학한 조동중대학으로 알려졌다. 1908년 만해 한용운 시인이 4월부터 9월까지 이 대학에서 청강하면서 이 대학의 기관지 「화융지」(和駥誌)에 발표한 한 시(詩)를 찾아 나선 길이었다.

 

만해의 한시를 게재한 이 「화융지」는 이 학교의 교지였다. 12편의 한시를 게재한 4권이 새 책처럼 양장 제본되어 보관 중이었다. 사전에 협조 요청으로 직접 손으로 만져 보고 사진 촬영까지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필자는 일본인들이 사료나 자료를 얼마나 소중하게 다루는지 이 책을 보면서 느꼈다. 어찌 보면 저들의 문서관리 정신에 얼굴이 부끄러워졌다.

 

교사를 거쳐 교수까지 40년간 학생들을 상담하고 그들의 애로사항, 진로를 기록한 <교무수첩>을 그해 연도 졸업식이 끝나면 누가 볼세라 소각장에 나가 태워버리곤 했다. 선배 선생님이나 선배 교수님들도 이 문서의 중요성을 교훈으로 들려주지 않았다.

다 태우고 없애버린지 40년이 흘러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아마도 나의 애달픈 고백을 액면 그대로 받아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필자는 인천부지(府誌)를 한 권 소장하고 있다. 개항하기 전 일본인들이 서해바다 깊이(수심)를 측량한 문서가 기재되어 있고 제물포 조계지에 어느 번지에 누가 사는지 까지 기록된 사실에 놀랄 뿐이다.

 

일본이 선진국이고 더욱이 청일전쟁, 러일전쟁, 미일전쟁에 나섰던 그 에너지는 결국 무엇이었는가를 깨닫게 했다. 별것 아닌 것을 별것처럼 살피는 직관력, 무엇이든지 기록으로 남겨 그것을 기초로 삼아 일어서는 무서운 발자취가 부러웠다.

 

반면 우리나라의 도서관에서는 공간이 비좁다는 핑계를 그 직장의 서류와 장서들을 폐기시키는 사례가 흔하다. 또한 누가 무슨 문건이나 기록물을 기증한다고 하여도 단호하게 거절하는 경험을 여러 차례 겪은 장본인이다.

 

필자는 인생을 살만큼 살았다. 세칭 어디가도 나를 원로라고 한다. 이 원로는 세상 이치를 판단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이 촌로의 말은 씨가 먹히지 않는다.

 

우리나라 대학, 우리나라의 초·중·고등학교에는 60년대 70년대 유행처럼 <교지>를 만들었다. 나름대로 그 시대상을 담은 사서이다. 그런 학교사를 우리는 양장 제본으로 본관하고 있는 학교가 있는지 궁금하다.

 

선진국은 말로 선진국이 아니다. 거기에는 정치, 경제, 문화의 삶이 함께 융화되어 나타나는 게 선진국의 모습이다. 도서관 깊이 묻혀 있는 중요 문건, 중요 장서가 재활용 더미로 전락한 이 시대의 자화상을 보면서 씁쓸하다.

 

일본 고마자와대학의 <화륭지>에 남아있는 만해가 공부를 하기 위하여 혈혈단신으로 현해탄을 넘은 흔적을 보면서 새삼 공부는 곧 애국이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킨다는 것을 깨달게 된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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