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인 충남문학관 관장 / 작가     ©중앙뉴스

[중앙뉴스=이재인] 나이가 들었음인지 이곳저곳에서 <자문위원>이란 타이틀을 둘러씌우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속된 말로 밥값을 하기 위하여 몇 마디 덕담이나 건의사항도 전하기 마련이다. 말하자면 체면치레이다.

 

그런데 정작 자문위원으로서 몇 마디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쪽은 별로 본 일이 없다. 아이러니이다. 밥이나 먹고 그냥저냥 시간이나 때우겠다는 자세라면 이런 기구를 만들어서 괜히 에너지나 소비하는 역기능을 하게 된다. 혹시 나랏일이나 공공기관도 이런 행태가 없지 않을 것이다.

 

필자가 어릴 때에 할머니로부터 들었던 동화 같은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한다.

 

어느 과부가 못된 아들을 데리고 살았다고 한다. 어머니인 과부가 펀펀 놀고 있는 아들한테 뒷산에 가서 솔잎을 긁어다가 군불 쏘시개를 하라 일렀다.

“다른 애들은 다 놀고 있는디 내가 왜, 나무를 해유? 뼈다귀가 양반신세인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아들은 나뭇지게를 도끼로 찍어 부수는데 오비이락으로 순찰하던 목민관 군수가 지나가다가 이 지게 부수는 사태를 발견했다.

“저게 어인 일인지 사연을 알아보거라…….”

달려간 수행원이 노모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노인과부가 말했다.

“저눔이 효자유. 늙은 내가 산에 가서 나무하는 꼬락서니 보기 싫다구 저렇게 지게를 부순다우…….”

분연이 노인은 망나니 아들을 위하여 거짓말을 했더라고….이후 망나니가 목민관의 표창장을 받았다는 전설이 우리 고장에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니까 효자표창을 받은 망나니는 이후 효자로서 어머니를 잘 모셨다고 한다.

 

연말연시에 즈음하여 각 기관단체마다 공과에 따라 훈·표창 등을 주는 행사가 있다. 상을 주거나 받는 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그러나 상이라는 특성상 아무래도 순기능이 많을 수가 있다.

 

서두에서 언급한대로 자문위원으로서 상벌을 추천했더니 담당자인 대표자는 주마간산으로 듣는 태도였다. 우이독경쯤으로 들으려면 무슨 자문위원 제도가 필요하겠는가?

 

신문사나 방송사에도 이런 제도가 있을 것이다. 사실 원로나 국정철학을 지닌 석학들의 말을 귀담아 듣는 자세는 앞으로 4년, 혹은 3년 후에 돌아올 파고를 막는 방파제 역할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옛날 로마제국은 <원로원>을 두었으며 심지어 조선은 <기로소(耆老所)>(연로한 고위 문신들의 친목 및 예우를 위해 설치한 관서)를 설치하여 늙은이들의 지혜와 경험을 반영하는 기구로 활용하였다.

 

말은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말이 가는 곳에 진리와 진실이 간다. 우리는 늙은 어미나 할아버지의 건강한 담론에 귀를 기울이는 습관부터 길러야 한다. 정치가도 법률가들도 사업가도 귀담아 들어야 내 가족, 내 나라가 편하다.

 

한쪽 말만 듣는 자세는 균형추가 맞지 않는다. 자칫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옳은 소리하는 자, 싫은 소리하는 자에게도 철학은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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