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진단] 112층 건립 후 주변환경 변화 예상해봤더니‥

러시아 모스크바에 '유럽 최고층 빌딩'을 표방하면서 건설되던 118층, 600m 높이의 금융비즈니스 복합타워 '러시아'가 금융위기 및 유가급락에 따른 자금난과 함께 부동산 버블 붕괴에 따른 오피스 수요 급감으로 인해 공사를 중단하게 됐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졌다.

자본주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초고층 빌딩의 건립은 '버블경제'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측면이 많았고, 주요 초고층빌딩이 완공될 때마다 대공황과 같은 극심한 불황이 찾아왔다는 선례를 감안하면 '러시아'의 공사중단 소식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 서울 강남에 여의도 63빌딩보다 높은 타워팰리스 주상복합 아파트가 건설돼 국내 최고층 건물 기록을 새로 수립한 이후 '초고층빌딩'을 짓고자 하는 열풍이 끊임없이 휘몰아쳐 왔고 현재까지 착공에 들어간 것만 여러 곳이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금융위기의 여파로 자금경색을 호소하고 있어 그 많은 초고층 빌딩 건축 사업이 실제로 성사될 수 있을지 관측이 어려운 가운데 현금과 부동산을 가장 많이 보유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롯데그룹의 잠실 제2롯데월드 건축사업은 단연 눈길을 끈다.

특히 서울시장 재임시절부터 이 사업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아끼지 않았던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공항(공군 성남기지)의 비행안전을 이유로 반대입장을 고수해온 공군참모총장을 경질하면서까지 제2롯데월드 사업의 시작을 독려한 것은 현 정부가 대규모 건설사업을 통한 경기부양이라는 측면에서 제2롯데월드 건축사업에 거는 기대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다.

<사건의내막>은 그동안 주거환경, 안전성, 비용, 풍수지리 등 여러 관점에서 초고층 건물에서의 삶이 겉에서 보는 것처럼 화려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는 보도를 해왔으며, 개발열풍 이면에 가려진 주변부의 이야기도 계속 보도해왔다.

절반 높이인 타워팰리스 주변도 순간풍속 11m/s
거대한 그림자와 살을 에는 바람…“상상불가”


▲지상 11층 지하 5층 규모로 공사가 시작된 제2롯데월드 저층동 조감도.

서울 송파 신천동의 지하철 2·8호선 잠실역 앞에 위치한 제2롯데월드 건립 예정지에는 현재 터파기 공사 및 지질검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지난 8월, 112층 건물 건립을 전제로 한 지상 11층·지하 5층 규모의 '제2롯데월드 저층동' 건립 허가가 떨어지면서 모래를 파내는 공사가 시작된 것으로, 롯데 측은 "현재까지 정확한 공기를 예상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빠른 시기 안에 공사를 완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제2롯데월드의 건립을 둘러싼 반대입장에 대한 언론들의 보도는 공군(국방부)과 성남시 등의 의견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전자는 서울공항(공군 성남기지)을 이용하는 항공기들의 작전과 비행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기 어렵고, 결국 성남공항 폐쇄 주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주장으로 이에 대해서는 월간 <신동아>가 2008년 11월호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신동아>는 서울공항의 비행안전을 위해 서울공항 활주로 각도를 변경하는 것 자체가 항공·국방논리로 볼 때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지만, 대통령의 의지와 현재의 분위기를 봐서는 활주로 변경이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활주로 각도를 변경할 경우에도 서울공항의 안전문제가 완전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며, 여기에 더해 부수적인 문제가 새로 발생한다. 바로 고도제한 구역의 변화로 인해 인근 개발 계획의 변경이 불가피해진다는 점이다.

이 경우 현재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송파(위례)신도시와 성남 구시가지 재개발지역이 모두 고도제한 구역 안에 묶이게 되는데, 현실적으로 신도시 건설이 20층 이상 아파트를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결국 신도시 개발을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는 지적이다.

인근 주민들은 찬성할까?

▲잠실 롯데캐슬골드에 붙어있는 플랜카드.     © 브레이크뉴스
이러한 반대의견의 맞은편에서 제2롯데월드 건설을 찬성하는 큰 부류로 꼽히는 것이 인근 주민들이다.

제2롯데월드 건립과 관련해 <사건의내막>이 만난 예정지 주변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부동산 값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한 축이었고, 조망권·일조권 침해 등 주거환경 악화와 교통량 증가에 따른 불편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또 한 축이다. 주민의 입장에 대해서는 부동산이 오르니 모두 찬성할 것이라는 식으로 치부하고 지나갈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해당 지역에 부동산을 가지고 있지 않고 가격 상승 수혜와는 무관하게 그 일대를 실제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면 초고층건물의 건립에 따른 가장 큰 피해자는 인근 거주민들이 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특히 <사건의내막>에 제2롯데월드 건립에 따른 지역민 피해 가능성에 대해 처음 제보한 A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현행 건축법은 일조권(햇빛을 받아 쬘 수 있도록 법률상 보호되어 있는 권리)을 보장하기 위해 건축물의 각 부분 정북방향 인접 대지경계선으로부터 해당 건축물 각 부분 높이의 2분의 1 이상 거리를 띄어 건축하도록 하고 있다.

롯데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제2롯데월드의 예정 높이는 555m(첨탑 제외 시 524m)로, 북동쪽 끝에서 1.1km에는 성내천, 북서쪽 끝에서 1.1km에는 잠실대교 남단이 있으며, 양 꼭지점에서 1.1km 반경 안에는 왼쪽부터 잠실시영, 미성, 한신코아, 잠실the#, 장미, 잠실롯데캐슬골드, 잠실주공5단지 등 6개 아파트 단지전체가 들어간다.

주변 주거지 일조권·조망권 침해 불 보듯 뻔하지만
'일반 상업지역'은 건축법 일조권 규정 치외법권 지대


▲제2롯데월드 112층의 높이는 524m(첨탑 제외)이고, 도로 확장을 감안한 북쪽 맞은 편 건물까지 거리는 약 100m이다. 현재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롯데캐슬골드의 높이는 37층, 148.35m이다. 북위 37°36′에 위치한 서울에서 하지의 태양고도는 약 75.5°이고, 동지에는 29.03°이다.
특히 제2롯데월드를 직접 마주보는 위치에 있는 건물들의 경우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일년 중 해가 가장 높이 솟아 있는 하지 정오(태양고도 75°57′)에는 건물 그림자가 앞 도로변을 넘어가지 않지만 반대로 일년 중 해가 가장 기울어 있는 동지(태양고도 29°03′)에는 하루 중 해가 가장 높은 정오에도 건물 전체가 그림자 안에 완전히 묻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사건의내막>이 제2롯데월드의 112층 건물이 예정 부지 정중앙에 위치하게 지어지는 것을 가정해 전면 도로 폭과 건물높이, 현재까지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잠실롯데캐슬골드 주상복합과 비교해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이다.

일조권과 관련해 롯데그룹 측 관계자는 "건축 예정지가 건축법에서 일조권에 따른 고도제한을 규정하고 있는 '전용주거지역'이나 '일반주거지역'이 아닌 '일반상업지역'이기 때문에 제2롯데월드 건설은 건축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주거지역을 완전히 뒤덮는 거대한 그림자가 눈앞에서 생겨나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그런 일을 막을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적 장치나 대책은 전무하기 때문에 결국 법 외적인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롯데 관계자는 "현재 서울에서 건축법상의 일조권 규정을 적용했을 때 주거지역을 피해서 고층건물을 지을 수 있는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제2롯데월드 완공 시 발생하는 음영에 인근 주거단지 대부분이 포괄된다는 점은 현존하는 국내 최고층 빌딩인 도곡동 타워팰리스(최고층 264m)의 정북방 500m 반경에서 대부분을 숙명여고 운동장이 차지한다는 점과도 비교된다.

일조권과 함께 사람들이 잘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가 '빌딩풍'의 문제이다. 빌딩풍은 고층빌딩 사이에 일어나는 풍해(風害)로, 빌딩풍과 관련한 건축학계의 논문을 보면 빌딩풍에 대해 좀더 직접적인 설명을 찾아볼 수 있다.

▲제2롯데월드 공사현장
2005년 대한건축학회 창립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보행자 영역의 빌딩풍해 저감 방안에 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지상 150미터 이상의 빌딩이 건립되면 상공에서는 바람이 일정 방향으로 불어도 아래쪽에서는 바람이 빌딩의 주위에서 소용돌이치고 급강하하거나 풍속이 2배 이상으로 빨라지기도 하며 때로는 무풍(無風) 상태가 된다"고 한다.

논문은 "이 때문에 간판이나 지붕이 날려가거나 전선이 끊어질 때도 있다. 또 연기나 배기가스가 소용돌이 현상으로 지상에 흘러서 국지적인 대기오염이 발생하여 고층빌딩이 밀집한 대도시의 새로운 도시공해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빌딩풍'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면 바람이 조금이라도 부는 날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같은 고층 건물 앞에 가보면 바로 실감할 수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 이규석 교수가 발표한 자료가 눈길을 끈다.

▲제2롯데월드 공사현장. 암반검사와 측량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교수가 2006년 11월 발표한 '대규모 건축물 기상 환경영향평가에 관한 고찰'에 따르면 도곡동 타워팰리스 인접 지역의 바람 피해를 집중 분석한 결과 숙명여중·고 교정은 11월 중순 주변보다 최고 10도나 낮아지고 1·2월에는 타워팰리스 주변 거리에 세워 둔 오토바이가 넘어지는 일도 발생한다고 한다.

특히 이 교수는 "숙명여고에서는 11월 초 이미 얼음이 얼어 이듬해 3월 말이 돼야 녹는 것으로 관측됐다"며 "이는 일조 장애 탓도 있지만 순간 풍속이 초속 11m를 넘는 강한 바람이 한몫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타워팰리스의 최고층 높이가 264m인 것을 감안하면 524m(첨탑 제외)로 그 두 배에 달하는 잠실 제2롯데월드에는 그 이상의 풍해가 예상된다는 이야기이고, 여기에 더해 타워팰리스가 강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강변에 위치한 제2롯데월드 주변의 환경이 어떻게 될지는 상상이 불가능한 실정이다.[e중앙뉴스 기사제휴사=브레이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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