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노동권·최저임금·한반도 평화·개헌 등 정책적 진단과 비전 제시, 청년 정당 만들겠다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정치적 효능감’으로 신년 기자회견문의 말문을 열었다. 

이 대표는 영화 ‘1987’에서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냐”고 묻는 주인공 연희의 의심에 바뀐다고 답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정의당이 고군분투 하겠다는 취지를 설명했다. 실제 노사가 합의를 이끌어낸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문제에서 청년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면서, 지난 촛불정국에서 광화문에 나가 촛불을 들며 “세상을 바꾸는 경험을 하게 됐다”는 게 중요하다고 이 대표는 강조했다. 

이 대표는 22일 11시 국회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이런 정치적 효능감을 줄 수 있는 정당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히고 구체적인 방향성과 정책 비전을 제시했다. 

이 대표는 이날 한반도가 그려진 떡을 기자들에게 돌렸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 대표는 이날 한반도가 그려진 떡을 기자들에게 돌렸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 대표는 아직 우리 청년들이 놓인 현실에서는 그런 효능감 자체가 낯설다며 최근 가상화폐 논란을 예로 들었다. 2007년에 나온 88만원 세대 이후 11년이 지났지만 30대 미만 저소득 1인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78만원으로 되려 10만이 줄었다. 이렇게 “노동소득만으로는 도저히 내일을 꿈꿀 수 없는 비관적 현실”에서 비트코인 현상이 연원한다는 게 이 대표의 진단이다. 

이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힌 “평범한 국민의 삶이 나아지는 나라”에 적극 동의한다면서 이를 위해 적폐청산과 구조적 체질 개선이라는 <촛불혁명의 2단계 전진>이 올 한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를 위한 3가지 정치적 선결과제로 △중단없는 적폐청산 △거침없는 국회개혁(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국민의당 비판) △민심 그대로의 정치개혁(선거제도 개편)을 들었다. 

먼저 이 대표는 적폐청산을 “지체된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라며 “국정농단과 권력 사유화의 뿌리를 뽑아야 두 번 다시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두 번째로 이 대표는 원내정당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자유한국당이 아직도 대한민국의 제1야당이라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최대 불안요소”라며 반대를 위한 반대와 색깔론 외에는 구사할 전략이 없는 한국당과 홍준표 대표를 강하게 비평했다. 

국민의당과 안철수 대표에 대해선 “(지난 총선에서 국민이 3당을 만들어줬지만) 3당으로서의 견제와 개혁에 성공하지 못 했다”고 평가했고 이에 대한 반성없이 “유승민 대표를 파트너로 보수표심을 공략”하려는 선거공학에 국민이 감동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개혁을 성사할 주도력과 정치력이 발휘되지 못 했다”며 “탄핵연대가 개혁입법연대로 발전되지 못했던 것”이 아쉽고 “지지율과 기득권에 취해서 촛불개혁의 사명을 소홀히 하지 않았는지”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정부는 보이는 데 집권여당은 보이지 않는다”는 세간의 비판론을 거론했다. 

득표한 만큼 의석수를 가진다면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상대적 소수정당들은 전부 선거제도의 개혁을 강조한다. 특히 정의당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 문제를 지적해왔다. 지방선거 제도 개혁은 국회의원 선거를 바꾸기 위한 “전초전”이나 다름없는데 현재 기초의회 선거에서 4인이 당선되는 중대선거구안 대신 2인 선거구로 분할하려는 움직임이 보여 문제가 심각하다는 게 이 대표의 문제의식이다.

한 선거구에서 두 명만 당선되면 기초의회에서조차 거대 양당이 싹쓸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어 이 대표는 “지방선거부터 광역단체장 결선투표제를 실시해 인위적인 정계개편과 이합집산”을 막아 “인위적으로 후보를 조정”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사표방지심리(당선될 가능성이 높은 후보에게 득표가 쏠리는 현상)를 극복하고 소신투표가 가능하도록 당대표 회동을 통해 도입을 적극 검토하자고도 덧붙였다. 

이 대표는 여러 분야에 대해 구체적인 정책과 대안을 제시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 대표는 여러 분야에 대해 구체적인 정책과 대안을 제시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선거 제도의 공정성 차원에서 두 가지를 제시한 이 대표는 정의당이 <지방자치에서라도 제1야당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진보정당 사상 최초로 200만표를 얻은 정의당이 두 자릿수 지지율(정당 투표)을 목표”로 노력하겠다며 수도권과 호남에서 그렇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이 대표는 정의당의 지방자치가 왜 중요한지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경남도의회 자유한국당 의석 점유율 90%, 광주시의회 더불어민주당 95%인 상황에서 그 어떤 협치와 의회정치도 어렵다는 것이고 정의당 장태수 의원이 존재하는 대구 서구의회는 딱 1명일지라도 제대로 된 역할이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장 의원이 “류한국 서구청장의 업무추진비를 투명화했고 관변단체 보조금을 현금 지급에서 신용카드 결제로 바꿔냈듯이” 정의당이 전체 광역의회와 기초의회에 1명 이상의 당선자를 배출해서 최소한의 의회정치를 실현해 “지방적폐를 청산”해보겠다는 청사진이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정권교체에 대한 절박한 심정으로 차마 심상정 후보를 지지하지 못하셨던 분이라면 이번에는 정의당을 선택해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정의당 수백 명 후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우리 지역의 심상정”이라며 “대한민국 개혁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지어달라”고 지지를 부탁했다. 

정의당이 던지는 의제 4가지 

이 대표는 정의당이 강조하는 정책 방향성과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노동권 강화를 위한 노사정 대화 촉구, 경제 민주화를 통한 최저임금 문제 해결, 기본권의 내용을 중시한 개헌, 미래 한반도 평화체제 등 4가지다. 

이 대표는 “증세 없는 복지만큼 노동 없는 혁신”도 말이 안 된다며 최근 문재인 정부에서 “소득주도성장 보다 혁신성장이 더 강조되고 있어 우려”된다고 밝혔다. 

안철수 대표와 유승민 대표는 연일 혁신성장과 4차 산업혁명을 강조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성장 전략을 맹비판 했고 이 대표도 “기업의 창조적 혁신을 지원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일”에 대해선 공감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속에 사람과 노동이 빠져선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4차 산업혁명의 기술 변화를 부정하지 않지만 그럴수록 동반돼야 하는 것이 “좋은 노동을 위한 사회혁신”이고 그래야 “진정한 혁명”이 이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당장 모든 업무가 자동화되고 로봇이 대체하게 돼 10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무지와 공포’를 노동자들이 겪고 있으므로 하루빨리 노사정 대화채널을 가동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대표는 독일의 전기전자 기업인 <지멘스>가 노사 합의를 통해 스마트 공장 가동 이후에도 일자리 감축없이 생산성도 끌어올렸다며 이것은 ‘산업4.0-노동4.0’을 위한 노정 대화가 전제됐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포스트 평창체제에 대해서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 대표는 포스트 평창체제에 대해서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특히 노동계와 정부여당의 화약고라고 할 수 있는 근로시간 52시간 적용·휴일근로 중복할증 문제(휴일근로 수당 50%와 연장근로 수당 50% 즉 휴일에 일하면 평일 임금의 200%를 지급)에 대해서는 지난 정부의 “잘못된 유권해석”이 문제였다고 진단한 뒤 근로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라는 큰 틀에서 해결점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불로소득엔 눈 감고 최저임금엔 성내는 보수정당의 괴담과 저주는 즉각 멈춰야 한다”며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도 최저임금을 주는 자영업자도 경제적 약자”라고 규정했다. 

이어 “문제는 강자의 탐욕이며 뒤틀린 한국경제”라고 근본 배경을 지목했다. 예컨대 자영업자들의 손익명세서를 보면, 프랜차이즈 가맹점주가 내는 임대료가 영업이익의 3배 이상이고 카드수수료도 10%를 넘는다. 본사는 가맹비로 영업이익의 2배를 챙겨가기도 한다. 이 대표는 이런 문제들을 지적하지 않고 최저임금 인상만 따지는 것은 “약자를 내세워 강자들의 탐욕을 은폐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원청의 하청, 가맹본부의 가맹점주에 대한 불공정 행위를 엄단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하도급 관계에 있는 중소기업과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최저임금 인상분을 본사가 부담하도록 제도화·공공부문 입찰계약 시 최저임금 인상분이 계약금액에 반영되도록 자동 조정·상가임대료 상한제·체크카드와 신용카드 수수료 각각 0% 1% 이하 인하.

개헌에 대해서 이 대표는 “시기보다 내용이 더 중요하다”며 이제는 낙태죄 폐지·성소수자의 가족구성권 문제 등 진보적 의제를 헌법에 담을 수 있도록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큰 틀에서는 2018년 대한민국의 기본권 신장에 부합하도록 노동·인권·평등·민주의 키워드로 개헌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고 밝혔다. 덧붙여 “촛불혁명이 시작된지 만 2년이 되어 가는데 아직도 개헌을 하느냐 마느냐 옥신각신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지방선거와 개헌안 동시 투표는 지난 대선 5당 공통 공약이었다”고 자유한국당의 태도를 꼬집었다.

야당이 연일 북한에 끌려다니며 “평양 올림픽”이 되는 것 아니냐고 문재인 정부를 비난한 것에 반해 정의당은 <포스트 평창 플랜>을 내세워 더 진전된 평화체제의 기반을 닦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평창 이후”가 더 중요하다며 “평창 이후에도 대화가 지속되고 평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한반도 평화열차’와 대북특사 파견을 통한 ‘3차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다.

평화열차는 북측 선수들이 도라산역까지 북측의 기차를 타고 서울역까지 경의선 열차를 타고 평창까지는 KTX를 타고 대회에 참여하는 정의당 만의 아이디어다. 이 대표는 평화열차가 “한반도 통일열차로 발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대북정책과 관련 정부여당이 야당들의 협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사례를 들어서 설명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 대표는 대북정책과 관련 정부여당이 야당들의 협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사례를 들어서 설명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 대표는 “공산권과 대화를 시작한 공화당 닉슨 정부가 민주당에도 그 공을 내주기 위해 협력을 요청”한 사례를 언급하며 서독의 브란트 총리·이스라엘의 라빈 총리도 이와 마찬가지인데 정부여당에 “대담한 협치”를 주문했다. 

이는 보수 야당들의 대북 관련 매서운 공격을 봤을 때 이들에게 협치를 요구한 것 같지는 않고 정부여당의 통큰 양보를 통해 협치를 이끌어 내라는 이 대표의 조언으로 풀이된다.

한편, 이 대표는 작년 정의당의 정당후원금 모금액이 전체 1위를 달성한 일, 대의원 700명 전체가 1박2일 동안 평등과 개헌 등 정당교육을 수료한 일. 이 두 가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청년 정당”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이 대표는 “그럴싸한 전문직에 종사하다 정치에 입문하는 한국 정치 풍토는 엘리트 정치와 기득권 정치의 근원이 되고 있다”며 정의당은 “보통의 청년들이 정치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를 위해 정당 사상 최초로 10년 과정의 ‘정치인 사관학교’를 설립하고, 청년 노동자들의 상담 창구 ‘정의당 비상구’를 확대하고, ‘청년 정의당’ 발족을 약속했다. 끝으로 매년 정의당이 받는 국고보조금 일부를 청년 부문에 할당하겠다고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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