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스 부통령의 방한 일정을 통해 본 미국의 메시지 분석, 트럼프 대통령에 있는 대화파와 강경파 두 가지 카드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펜스 미국 부통령은 북한을 피했다. 어쩌면 무시한 것인지도 모른다. 같은 장소에 두 번이나 있었고 마주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가까이 있었는데도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았다. 

계산된 동선을 짜고 고의적으로 지각했다가 바로 퇴장해버리는 등 펜스 부통령의 2박3일 방한 일정은 강력한 메시지 투하로 점철됐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8일 오후 전용기를 타고 경기도 평택 미공군 오산기지에 도착했다. 이미 6일부터 2박3일간 일본을 방문하다 온 펜스 부통령은 아베와 대북 강경책에 대한 공조를 재확인한 상태였다. 그런 차원에서 펜스 부통령은 바로 문 대통령을 만나 방한의 목적을 분명히 밝혔다. 

8일 전용기를 타고 평택 주한미군공군기지에 도착한 펜스 부통령 부부. (사진=연합뉴스 제공)
8일 전용기를 타고 평택 주한미군공군기지에 도착한 펜스 부통령 부부. (사진=연합뉴스 제공)

펜스 부통령은 “미국은 북한이 영구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핵무기·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그날까지 최대한의 압박을 계속해 한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북 압박을 위한 한미 공조 국면이라는 점에 대해 호응했다.

현재 한미의 대북 원칙은 분명히 “최대한의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을 비핵화를 위한 대화로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이 8일 청와대에서 회담을 가졌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문재인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이 8일 청와대에서 회담을 가졌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펜스 부통령은 이틀째 일정인 9일에 좀 더 정교한 대북 시그널을 던졌다. 북한의 만행을 부각하기 위해 피해장소에 가서 피해자들을 만난 것이다. 

펜스 부통령은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를 방문해 ‘1, 2차 연평해전·대청해전·천안함 피격·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공격으로 인한 남한의 피해를 알려주는 여러 전시들을 둘러봤다. 또 지난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 국회 연설에서 표현했듯이 북한을 “감옥 국가”로 규정하고 인권탄압의 피해자인 탈북자 4명·프레드 웜비어(故 오토 웜비어의 아버지)를 만났다. 

펜스 부통령은 이들과 면담하는 동안 “북한은 자국 시민들을 가두고 고문하고 굶주리게 하는 정권”이라며 “전세계가 오늘 밤 북한의 매력 공세(Charm Offensive)를 보게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9일 해군2함대 수호관에서 북한을 맹비난한 펜스 부통령. (사진=연합뉴스 제공)
9일 해군2함대 수호관에서 북한을 맹비난한 펜스 부통령. (사진=연합뉴스 제공)

 

계획된 행동의 결정판

세계인의 대축제인 올림픽이 미국과 중국의 국제적 요충지인 한국에서 열렸다. 외교 올스타를 방불케하는 강대국의 실권자들이 다 모이게 될 것이고 그러면 최대 현안인 북핵의 직접 당사국들이 다 만나게 된다는 의미가 있다. 안토니오 구테헤스 UN 사무총장도 왔다. 한·미·일·중은 이미 자주 만났지만 여기에 북한이 추가됐다. 남북 정상급 인사의 만남도 주목됐지만 무엇보다 북미 대화가 성사될지 초미의 관심사였다.

올림픽 전부터 북미 대화를 기대하고 있는 정치권 일각의 분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산산조각났다. 국민의당 통합 사태로 철천지 원수가 된 안철수 대표와 조배숙 민주평화당 대표도 어색하지만 만났다. 전쟁 중에도 휴전 회담이 있었다. 

어찌보면 마주보고 경고의 메시지를 던질 수도 있었지만 펜스 부통령은 9일 평창 올림픽 개회식 리셉션장에서 철저히 북측 대표단(김여정·김영남 등)을 무시했다. 

애초에 북한 인권 침해의 상징인 오토 웜비어 부친을 동행시킨 것부터 이런 전략은 예고됐다. 북한의 피해자를 만나 강력 규탄까지 했으니 혹시 리셉션장에서 마주치더라도 입에 발린 예의의 언어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예측됐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렇게 어색하게 늦게 나타나고 바로 퇴장하고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의도적으로 눈길을 안 줄지는 예상하지 못 했다.

리셉션장에 잠깐 들어와 정상들과 악수하고 5분 만에 나가버린 펜스 부통령. (캡처사진=jtbc 뉴스룸 2월9일)
리셉션장에 잠깐 들어와 정상들과 악수하고 5분 만에 나가버린 펜스 부통령. (캡처사진=jtbc 뉴스룸 2월9일)

바로 외교적 결례라는 뒷말이 무성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11일 jtbc <뉴스룸>에서 그날 리셉션장에서 펜스 부통령의 의도적인 행동을 증언했다. 정 전 장관은 “펜스 부통령과 아베 총리가 (리셉션장에) 입장했다는 방송이 나왔는데.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이) 연세가 나보다 17년은 많아 인사는 해둬야 될 건데  펜스 부통령은 가버렸더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9일 미국 정부 관계자의 발언을 전하며 펜스 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행동지침을 받았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비공개 접촉은 가능하되 절대 북측과 응대하는 사진을 남기면 안 된다는 가이드라인이 있었다는 취지였다. 

청와대도 미국측이 사전에 북측과 마주치지 않도록 동선을 신경써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적으로 외교적 결례라는 지적에 백악관 관계자는 만약 북측이 적극적으로 펜스 부통령에게 제스처를 취했다면 부통령도 이를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리셉션 행사가 끝나고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개회식이 있었는데 이때 VIP 구역에서 펜스 부통령과 북측 대표단은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채 4m도 안 되는 거리였다. 

미국 선수단이 입장할 때 펜스 부통령 부부가 일어나서 환영의 손짓을 했는데 뒤쪽에서 김여정 제1부부장(북한노동당 중앙위원회)이 힐끗 쳐다보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펜스 부통령의 의도적 외면을 돌려 세울만큼 북측이 적극적으로 나설 의지는 없었던 거다.

남북 공동입장이 이뤄지자 일어서서 손짓하는 문 대통령 부부와 북측 대표단. 그에 가만히 앉아있는 펜스 부통령 부부. (사진=연합뉴스 제공)
남북 공동입장이 이뤄지자 일어서서 손짓하는 문 대통령 부부와 북측 대표단. 그에 가만히 앉아있는 펜스 부통령 부부. (사진=연합뉴스 제공)
펜스 부통령과 아베 총리, 그 뒤에 북측 대표단의 모습. 어색함이 느껴진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펜스 부통령과 아베 총리, 그 뒤에 북측 대표단의 모습. 어색함이 느껴진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런 일련의 펜스 부통령의 행위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미국측은 의도성을 부인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미국측이 리셉션장에 참석한다는 확답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고 결례도 아니라고 밝혔다. 결례라고 인정하는 순간 한미 동맹에 균열이 났다고 야당의 공격이 거세질 것이기 때문에 부인하는 게 당연했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보면 리셉션 행사 시작 한 시간 전에 미국측에서 불참을 통보했는데 애초에 펜스 부통령과 북측의 접촉을 차단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문 대통령은 포토라인에서 펜스 부통령에 “이왕 오셨으니 친구들에게 인사하고 가라”며 여러 차례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고 이에 못 이기는 척 펜스 부통령이 리셉션장에 늦게 나타나게 됐다.

가장 중요한 인물인 펜스 부통령의 자리는 헤드테이블에 위치해 있고 치워놨던 명패도 급하게 세팅됐다. 하지만 펜스 부통령이 늦게 나타난 바람에 헤드테이블이 공석인 상태로 카메라에 찍히고 말았다.

늦게 나타난 펜스 부통령은 다른 정상들과 악수를 했지만 대각선에 위치한 김영남 상임위원장과는 그러지 않았고 어색한 상태를 피하기 위해 5분 만에 혼자 나가버렸다.

리셉션장 헤드테이블 구도. (캡처사진=jtbc 뉴스룸 2월9일)
리셉션장 헤드테이블 구도. (캡처사진=jtbc 뉴스룸 2월9일)
펜스 부통령과 아베 총리가 리셉션장에 바로 들어오지 않고 따로 시간을 보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펜스 부통령과 아베 총리가 리셉션장에 바로 들어오지 않고 따로 시간을 보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펜스 부통령의 지각 파트너는 대북 강경책에 호흡을 맞춘 아베 일본 총리였다. 혼자라면 민망하기 때문에 아베 총리와 함께 늦게 들어온 것이다. 문 대통령은 아직 두 정상이 안 온 것 같아 일부러 환영사를 늦게 시작했는데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환영사를 시작했다. 환영사 전에 입장해서 같은 테이블에 김 상임위원장과 앉아있다가 갑자기 나가도 이상하고 환영사 중에 나가는 것도 너무 무례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문 대통령은 환영사를 끝내고 잠깐 자리를 비워서 두 정상을 데리고 리셉션장에 같이 들어왔다.  

미국과 북한 사이의 중재자 

“나는 공화당원이기 이전에 보수주의자이며 보수주의자이기 이전에 기독교인이다.”

펜스 부통령의 발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수적이지만 부동산 재벌 출신의 사업가라 욕망의 언어를 구사하고 이념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펜스 부통령은 기독교 원리주의자에 반성소수자를 표방한다. 극우적 신념을 신봉하는 인물이다. 

흑묘백묘론의 실용주의적 관점보다 자신의 편향된 신념에 따라 매우 엄격하다. 이런 펜스 부통령과 맥 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트럼프 대통령이 보유한 강경파의 한 축이다. 반대로 렉스 틸러슨 국무부 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부 장관은 상대적 대화파다. 

두 카드를 쥐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내내 김정은 위원장(북한노동당)과 말폭탄을 주고 받으면서도 때로는 김 위원장과 대화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대북 대화 정책에 대해서는 “100% 지지한다”고도 밝혔다.

어찌됐든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북측으로부터 공식적으로 남북 정상회담 제안을 받았다. 

이런 미국의 두 가지 대북책 방향성을 전제해 놓고 봤을 때 우리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의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얼마든지 조율이 가능해 보인다. 물론 쉽지 않다. 최대한 빨리 남북 정상회담을 하자는 북측의 제안이 우리 정부 입장에서 곤혹스러운 측면도 있다.

정 전 장관은 여건 마련과 관련 남북 관계와 한미 관계 두 가지를 다 진전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캡처사진=jtbc 뉴스룸 2월10일)
정 전 장관은 여건 마련과 관련 남북 관계와 한미 관계 두 가지를 다 진전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캡처사진=jtbc 뉴스룸 2월10일)

정 전 장관의 발언처럼 “지금 이른 시일 내에 문 대통령이 평양에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UN 대북제재가 살아있고 그 다음에 올림픽이 끝나면 한미연합훈련을 재개해야만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미훈련이 재개되면 북한은 분명 반발할 것이고 추가 도발을 감행할 수도 있다. 그러면 올림픽 성과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정 전 장관은 한미훈련이 불가피한 것이라면 극단으로 치닫기 전에 북한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사전에 남북 간의 고위급 회담·장관급 회담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이어 문 대통령만 읽었을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 내용에 대해서 추측하며 “군사훈련 연기나 축소 문제는 에둘러서 요구했을 법하고 그 다음에 비핵화 문제는 미북 문제이기 때문에 남북이 할 얘기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실질적으로 비핵화 문제는 미북 간에 먼저 만나서 큰 틀을 짜고 국제회의 방식으로 국제회담 방식으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어떻게든 문 대통령의 ‘여건론’대로 비핵화에 대한 북측의 태도 변화를 끌어내서 성과가 담보돼야 하고 이를 토대로 미국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 

개회식 VIP 자리에 모인 각국 정상급 인사들. (사진=청와대 제공)
개회식 VIP 자리에 모인 각국 정상급 인사들. (사진=청와대 제공)

펜스 부통령의 전략적 미숙함에 대한 지적의 목소리도 있다. 10일 VOA(미국의 소리) <워싱턴 톡>에서 프랭크 자누지 대표(맨스필드 재단)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불만은 북한의 나쁜 행동과 열악한 인권을 고려할 때 타당하다”면서도 “펜스 부통령은 문 대통령이 올림픽을 통해 추구하는 정신에 어긋나고 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이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한반도 안보와 관련한 견인력을 마련하려는 지금 이런 불만을 강장 중점적으로 제기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타이밍상 펜스 부통령의 강경책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자누지 대표는 “한국과 미국이 입장을 좀 더 일치시키길 바란다”며 “현재 양국의 태도가 완전히 다르지만 실무선에서 긴밀히 조율하고 있을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함께 출연한 로버트 매닝(애틀란틱 의회) 선임연구원도 “펜스 부통령의 이런 행동은 실수인 것 같다”며 “작전상의 문제가 있다. 어떤 일을 할 때가 있고 안 할 때가 있는데 펜스 부통령은 그 구분을 못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 대통령의 행진을 제어하고 있는데 동맹 간에 약간 무례한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매닝 연구원은 “미국 정부가 최고 수준의 압박제재를 원하고 또 국제사회를 동참시키는데도 성공했다”며 그럼에도 “미국의 대북 외교정책에 대해서는 마땅히 없는 가운데 이처럼 펜스 부통령이 좋은 생각이 없다면 무언가 해보려는 문 대통령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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