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시인/수필가
박종민 시인 / 수필가

[중앙뉴스=박종민] 예부터 선비들이 글을 쓴다든지 생각을 가다듬는 장소로 삼상(三上)을 꼽아왔다. 즉, 마상(馬上) 침상(寢牀) 측상(廁上)으로 말의 등에 타고 앉은 안장위에서, 침실 침대나 이브자리위에서, 변을 보는 장소에서이다.

첫 번째로 치는 마상은 말의 등에 올라앉아서 발아래로 내려다보며 눈앞에 비쳐오는 사물과 정경들을 대한다는 게 환상적이리라. 물론 그 사람의 생각과 관점은 물론 맘가짐과 분위기나 정황여건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분명히 유별날 것이다.

두 번째로 치는 침상 역시 침실의 침대나 이브자리위에서 지나온 하루의 일들을 정리하며 잠에 들기 전 모와 지는 이런저런 상념과 생각들로 착상(着想)실마리가 각별할 것이다. 하지만 세 번째로 꼽고 있는 측상(廁上)만큼 특별한 곳이 또 있으랴.

측상은 마상이나 침상만큼 느긋하게 눌러 앉거나 눕고 머무는 시간과 여유가 없고 처해진 환경정황분위가 열악하고 추하며 급박하다. 맘대로 시간을 천천히 조정하며 지체하거나  누리고 즐길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그러나 사람 누구나 취해야 하는 상황이며 맞아야하는 정황으로 몇 분여에 불과한 짧은 머무름 속에서의 떠오르는 생각과 감성, 판단과 느낌 등등 여리가지의 실상만큼은 아주 특별한 곳이다.

  측상(廁上), 변소다. 뒷간이 요즘은 ‘화장실’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통용되고 대중화돼 자리 잡아 있지만, 그 이름 명칭이 다양하다. 시골 촌락의 연로한 노인어르신들은 아직까지 뒷간이나 변소로 부른다.

그런가 하면 사찰에서는 해우소(解憂所)라며, 말 그대로 근심걱정을 풀어내는 곳이라 한다. 글로벌 시대인 지금은 명칭도 국제적으로 진화하여 영문으론 토이렛(Toilet), 혹은 레스트룸(restroom)으로 부르게까지 이르게 됐다.

얼굴을 매만지기도 하고 옷매무새를 고치기도 하는 화장실이란 이름으로 진화한 게 측상의 실체이다. 볼일을 봐야만 하는 생리적인 장소, 뒷간은 역시 생각이 많을 자리이다. 근심걱정을 덜어내고 풀어내는 곳이라니 생각을 많이 할 자리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일상 속에 맞닥트리는 많고 많은 사안들을 잠시만이라도 앉아서 볼일을 보면서 차분히 숙고하면서 성찰할 수 있는 장소가 됨이 명백한 것이다. 불결하고 불편하며 악취가 진동하는 비좁은 공간이 아니던가. 그런 곳에서 어떤 깊은 생각에 잠긴다는 건 어찌 보면 철학적인 공간이라 하겠다.    

  건강하고 건전한 생각을 일궈내고 풀어낼 수 있는 철학적인 장소가 측상이다. 다소 불편하고 불결하더라도 신성한 곳이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모든 인간의 본성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 뒷간이다.

먹은 것을 배설해야 하는 곳이니 가지 않으려 해도 거부할 도리가 없다. 먹었기에 먹은 만큼 버려야하고 시원하게 찌꺼기를 비워 버리는 정황 속에서의 떠오르는 생각의 실마리들이 사려 깊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신성한 장소가 요즘 들어 입질에 많이 오르내린다. 누군가는 볼썽 사난 불결한 휴지통을 치우라고 아우성치고 치우고 나니 또 다른 누군가는 치웠다고 아우성치며 볼멘소리를 해댄다. 생각들이 짧다. 관리자가 아무추어이지 싶다.

겉으로 드러난 휴지통이 불결하고 보기 싫으면 벽면에 보이질 않게 가둬두고 쓰게 하면 되고 사라진 휴지통 때문에 여기저기 버려진 휴지로 인해 지저분하고 더럽다면 관리체제를 제대로 정비하면 되련만, 모두들 불평불만만 쏴대게 하고 있다.

생각을 캐내고 생각을 키워내야 하는 측상인데 무상무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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