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특사 6개항 합의문 발표, 김정은 위원장의 환대, 북미 대화를 위한 기반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났다. 11년 후인 2018년 4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만남이 확정됐다.

대북 특사단이 1박2일의 방북 일정을 마치고 6일 저녁 복귀했고 3차 남북정상회담을 포함한 6개항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청와대 춘추관에서 방북 성과를 발표하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자신감이 있었다. 수석 특사로서 만족할만한 결과를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정 실장이 6일 저녁 청와대에서 남북 합의문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캡처사진=KTV)
정 실장이 6일 저녁 청와대에서 남북 합의문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캡처사진=KTV)

일단 북미 대화를 위한 기반을 잘 깔아놨다는 평가가 많다. 그럴만한 합의사항 6개를 살펴보면 전부 북한의 행동 방침과 약속을 천명하고 있다.

①남북은 4월 말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3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이를 위해 구체적인 실무협의를 진행해나가기로 한다.
②남북은 군사적 긴장완화와 긴밀한 협의를 위해 정상 간의 ‘핫라인’을 설치하고 3차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첫 통화를 실시한다.
③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고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한다.
④북측은 비핵화 문제 협의 및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용의를 표명한다.
⑤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북측은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 전략도발을 재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동시에 북측은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약한다.
⑥북측은 평창올림픽을 위해 조성된 남북간 화해와 협력의 좋은 분위기를 이어나가기 위해 남측 태권도시범단과 예술단의 평양 방문을 초청했습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6일 jtbc <뉴스룸>에서 “(4월 정상회담에 대해) 예상하지 못 했다”며 “(평화의 집에서 만나는 것에 대해) 아마 형식이나 이런 것들은 다 버리고 실제 내용에 대해서 논의하겠다(는 두 정상 간의 의지)”라고 평가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특사단이 올라가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비핵화와 북미대화를 위한 방법론을 설명했다”고 밝혔고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이 적극 호응해서 이런 합의가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어제(5일) (방북)일정을 시작하자마자 김정은 위원장과 면담한 것에 대해서 상당히 의미를 둬야 한다”며 “중국도 그렇지만 보통 사회주의 국가의 경우에 최고 지도자를 면담한다는 건 나름의 선물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김 위원장은 집권 7년차에 접어들어 처음으로 남측 인사와 회동했고 특사단에 대한 태도는 과거 김일성·김정일 때와는 달랐다. 

정 실장과 김 위원장이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정 실장과 김 위원장이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대북 특사단이 북한의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5일 14시50분이고 3시간이 지난 뒤에 바로 김 위원장과 면담이 이뤄졌다. 과거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나 김만복 전 국정원장 등 남측 특사가 방북했을 때 북한의 1인자를 쉽게 만나지 못 하고 일정 마지막 날에 만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면담과 만찬이 이뤄진 곳은 노동당 건물의 본관 ‘진달래관’인데 남측 인사에게는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곳이다. 면담 이후 만찬 자리에서는 김 위원장의 아내인 리설주도 모습을 비췄다. 로비까지 김 위원장과 리설주가 우리 특사들을 배웅하기도 했다. 

이는 북한이 보통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정상 부부가 외교 사절을 환대한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알리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특사단은 2013년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묵었던 ‘고방산 초대소’에서 짐을 풀었다. 이는 김여정 제1부부장(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이 청와대에 초대되어 회담하고 서울 워커힐 호텔에 묵도록 해준 우리 정부의 대우에 대한 보답의 성격이 있다.

김 위원장은 정 실장에 대해 반갑게 맞이했다. (사진=청와대)
만찬 자리에는 리설주도 동석했다. (사진=청와대)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6일 tbs <뉴스공장>에서 “(김 위원장이) 신세대 정치를 한다”면서 “정상 국가에는 퍼스트레이디가 있다. 김정일 시대는 사실 퍼스트레이디가 없었는데 김정은 위원장은 어쨌든 정상 국가로 국제사회에 데뷔하겠다. 그리고 자기도 다른 나라의 지도자처럼 외교무대에 데뷔하겠다고 이번에 공식 선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앞으로 남북관계를 장기적으로 보면 냉전시대의 그런 비정상적인 관계는 넘어선다. 새로운 단계로 간다. 그런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과 북한은 만날 수 있나

정의용 실장이 김 위원장과 대화하면서 메모한 것이 조선노동신문에 사진으로 보도됐는데 여기에 보면 “한미연합훈련으로 남북관계가 단절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정 실장의 생각을 적은 것인지 김 위원장의 말을 받아 적은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이 내용 자체가 김 위원장과 공감대를 이룬 것이라면 큰 의미가 있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고 북한의 눈치를 보고 축소하거나 중단하면 안 된다고 문재인 정부를 견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합훈련 자체가 한미 동맹의 핵심 고리이기도 하다. 연합훈련을 하더라도 남북관계가 경색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과 맞물려 북측이 비핵화 의지를 밝히고 핵 미사일 시험 중단까지 합의문에 담은 것은 미국의 요구사항에 부응했다고도 보여진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밝힌 것에 대해 미국 정부는 정밀한 판단을 할 것이고 특히 대화파(틸러슨 국무장관)와 강경파(맥 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로 나뉘어 있는 미국 정부 내의 양대 세력 간에 입장이 갈리듯이. 미국도 하나의 대응 기조를 선택하기까지는 신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북 특사단은 미국통인 정의용 실장과 북한통인 서훈 국정원장이 모두 포함돼 있다. (사진=청와대)
이번 대북 특사단은 미국통인 정의용 실장과 북한통인 서훈 국정원장이 모두 포함돼 있다. (사진=청와대)

당장 트럼프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의 강약 메시지가 동시에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 트위터를 통해 “북한과의 대화에 있어 가능한 진전이 이뤄진 것”이라며 “수년 만에 처음으로 진지한 노력이 모든 당사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국제사회가 지켜보고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또 “헛된 희망일지 몰라도 미국은 어떤 방향으로든 열심히 할 준비가 돼 있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성명을 내고 “북한과의 대화가 어느 방향으로 가든 간에 우리의 의지는 확고할 것”이라며 “비핵화를 향한 믿을 수 있고 검증 가능하며 구체적인 조치를 보기 전까지 북한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크리스토퍼 힐(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이에 대해 VOA(미국의 소리)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그렇다면(북미 대화를 원한다면) 2005년 9.19 합의를 현재 동의하지 않고 있는 부분에 대해 설명을 해야한다”며 “북한의 대화에 대한 진정성이 어느정도인지는 (이에 대한 입장으로) 알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당시 9.19 합의는 북한이 핵무기를 제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북한이 이를 추진할 준비가 돼 있는지 궁금하고 핵무기를 포기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다시 들어갈 준비가 돼 있는지 북한이 직접 설명하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의용 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은 8일 대북 특사의 결과를 설명하기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정 실장은 이후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하고 서 원장은 일본을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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