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의 필요성을 자세히 설명하고 구체적으로 규정, 수도를 법률로 명시, 전관예우 금지,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 관제 문화 사업의 문제 방지, 하위 법률이 위헌 논란으로 실질화 되지 못 해 헌법에서 토지 공개념을 명백히 적시, 야당의 국회 개헌 논의 셈법 차이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정부 개헌안이 발표된 둘째 날 굵직한 키워드가 나왔다. 지방분권과 토지공개념 등 커다란 주제가 그것이다. 뜨거운 담론 형성이 예상됐지만 원내 5당의 개헌 논의 전략 관련 주도권 싸움이 여의도 정가를 지배했다. 

전날(20일)이 ‘헌법 전문과 기본권 일반’에 관한 것이었다면 이날(21일) 발표는 ‘지방분권과 총강’에 대해서 발표됐다.

조국 민정수석이 21일 오전 청와대에서 발표한 정부 개헌안의 핵심은 △지방분권 △수도 조항 △공무원 전관예우 방지 △문화의 다양성 △토지공개념 △경제민주화와 상생(소상공인·농어민·소비자) △기초학문 장려 등 7가지다.

조  수석은 이번 정부의 개헌안 발표 관련 전면에 나섰다. (캡처사진=jtbc)
조 수석은 이번 정부의 개헌안 발표 관련 전면에 나섰다. (캡처사진=jtbc)

조 수석은 “헌법은 시대정신을 담아야 한다”며 “자치와 분권 그리고 불평등과 불공정을 바로잡아 달라는 것은 국민의 명령이고 시대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18분의 발표 시간동안 10분 넘게 할애한 것은 지방분권이었다.  

지방분권은 과감한 ‘권한 이양’으로 

우리나라 국토(99720㎢)의 12%에 불과한 수도권(11823㎢)에는 전체 인구(5177만명)의 50%(2565만)가 살고 있다. 그러다보니 국내 1000대 기업 본사의 74%, 20대 대학의 80%가 집적돼 있다. 

조 수석은 이러한 현실을 언급하며 서울의 출산율은 0.84명에 불과하지만 지방에서의 인구 유입에 의존하는 한계를 지적했다. 결국 이대로 가면 지방이 소멸되고 수도권에 더욱 의존하는 국가 기형적인 상태가 되기 때문에 지방분권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취지다.

조 수석은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수도권 중심의 불균형 성장 전략을 취해왔고 그 결과 수도권은 비대해지고 지방은 낙후되고 피폐해졌다. 수도권 1등 국민과 지방 2등 국민으로 분열됐는데 수도권이 사람과 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소개하며 지방분권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먼저 헌법 1조 3항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한다”고 적시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방정부 권한의 획기적 확대 △주민참여 확대 △지방분권 관련 조항의 신속한 시행 등으로 실질적인 지방분권을 실현시킨다는 설명이다.

조 수석은 “중앙과 지방이 종속적 수직적 관계가 아닌 독자적 수평적 관계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지방자치단체 집행기관을 지방행정부로 명칭을 바꿨다”고 밝혔다.

지방자치 3대 개혁안과 직접 민주주의 3대 권리가 이번 정부 개헌안에 포함됐다. (자료=청와대)

지방자치 개혁 3대 과제가 ‘자치행정권·자치입법권·자치재정권’인데 셋 다 강화됐다. 

현재 지방자치단체는 법률 제정권(입법)이 없다. 고작 조례를 제정할 수 있을 뿐인데 조례는 법률 하위에 있는 체계다. 당장 이번 정부 개헌안에 미국식 연방 국가처럼 주법(Law of State)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을 적시한 건 아니다. 그럼에도 지방정부의 조례 제정권이 폭넓게 보장되도록 기존의 “법령의 범위 안에서”를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에서”로 수정했다. 즉 상위 법률을 위반하지만 않는다면 무엇이든 지방 조례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단서를 단 것은 주민의 권리 제한이나 의무 부과 사항은 법률의 위임 범위 안에서만 행사되도록 규정했다.

누리과정 예산을 자치단체와 중앙정부 둘 중 어디서 부담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었듯이 자치재정권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조 수석은 “자치사무 수행에 필요한 경비는 지방정부가 국가 또는 다른 지방정부 위임사무 집행에 필요한 비용은 국가 또는 다른 지방정부가 부담”하게 한다는 내용을 신설했다고 말했다. 특히 ‘지방세 조례주의’를 원칙으로 지방세의 종목·세율·징수 방법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지역 별로 재정 양극화가 발생하면 안 되기 때문에 재정의 조정이 필요하다는 헌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게 조 수석의 설명이다.

지방분권에서도 직접 민주주의는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우선 지방정부의 정치 과정에 주민 참여권이 보장되도록 헌법에 명시했다. 하위 법률에 명시된 3대 주민 참여권인 ‘주민발안· 주민투표·주민소환제’도 헌법에 적시했다.

중앙정부 위주의 통치권 행사에서 지방정부가 소외되지 않도록 ‘국가자치분권회의’를 신설해 중앙과 지방의 소통을 강화하기도 했다. 해당 지방정부와 연관되는 법률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국회의장이 이 사실을 통보해 지방정부의 의사가 반영되도록 한 점도 눈에 띈다. 

‘수도’는 법률로 ··· 뜨거운 감자 ‘토지공개념’

헌법재판소는 2004년10월 당시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신행정수도 특별법’에 대해 위헌 해석을 내리면서 그 근거로 “서울은 관습 헌법적으로 명백한 대한민국 수도”라는 것을 제시했다.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표심에 사로잡혀 행정수도 이전을 주도했던 노무현 정권이야말로 국민들과 서울시민들 앞에 진심으로 사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4년1월29일 '지방화와 균형발전시대 선포식'에 참석했다. (캡처사진=KTV)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4년1월29일 '지방화와 균형발전시대 선포식'에 참석했다. (캡처사진=KTV)

반면 우리 국토의 중부에 위치한 대전과 충청권에서는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심대평 충남지사는 “관습헌법이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몰랐지만 충남도민들의 염원이 한 순간에 무산된 것 같아 도지사로서 도민들 앞에 사죄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입장에서 공약으로 추진했던 국책 사업이기에 이를 포기할 수 없어서 2005년부터 아쉬운대로 ‘행정중심복합도시’가 조성되기 시작했고 7년 만인 2012년 말 정부세종청사가 열렸고 지금의 세종시가 탄생했다. 행복도시와 행정수도 이전의 결정적인 차이는 쉽게 말해 ‘청와대’와 ‘국회’가 서울에 남게 됐다는 점이다. 이외에 외교부·통일부·법무부·국방부 등 주요 정부부처는 전혀 이전되지 못 했고 다른 부처들도 중앙 조직은 그대로 서울에 있고 산하 기관들만 세종시에 입주하게 됐다.

사실 관습헌법이라는 것은 법률적 용어가 전혀 아니라 논란이 거셌다. 아무리 헌재의 판단이라 할지라도, 수도권 부동산 세력들과 대형 상권의 주체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반발했다는 비판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소수 가진 자들의 이권 때문에 국가 균형발전이 무산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 수석은 “국가기능 분산이나 정부부처 등의 재배치 필요도 있고 나아가 수도 이전의 필요도 대두될 수 있다”며 개헌 정국을 통해 수도에 관한 사항을 법률에 명시했다고 밝혔다.

수도 관련 법률 명시와 토지공개념이 이번 정부 개헌안에 포함됐다. (자료=청와대)

대한민국 헌법 23조·121조·122조에서는 토지공개념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택지소유상한에관한법률은 1998년에 폐지됐고 헌재에서 위헌 판정이 나기도 했다. 택지소유법은 개인별로 토지 소유 면적의 한계를 정한 것으로 전국민 토지 보유의 불균형을 막고 이에 따라 주거권의 안정을 도모하는 법률이다. 

1인당 200평 이상의 토지 보유를 제한하는 것이 골자인데 전국민 중 이만큼의 땅을 갖고 있는 경우는 극소수다. 2006년 기준으로 한국의 토지자산 지니계수는 0.848이었다. 지니계수는 보통 소득을 기준으로 측정되고 0.4가 넘어가면 위험 신호 기준선으로 보고 국가가 관리하게 된다. 최근 한국의 소득 지니계수는 0.3 정도 된다. 그러나 2007년 기준 종합자산(주택·토지·금융) 지니계수는 0.7로 소득 지니계수에 비해 매우 높다. 

쉽게 말해 누구는 집이 없어 고시텔에 살거나 월세를 내느라 등골이 휘는데 누구는 수 십채의 집과 땅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후자의 극소수 과도한 부동산 보유자들로 인해 전자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인 생존권을 침해받게 된다. 특히 다른 재화에 비해 부동산은 국가가 마냥 공급할 수도 없고 토지는 더더욱 그렇다. 땅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으로 토지공개념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폭넓게 자리잡게 됐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관련 법률들이 부동산 기득권의 저항으로 제대로 시행되지 못 하고 있다. 그나마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중심으로 전국민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토건 세력들의 영향력이 만만치 않다.

조 수석은 “택지소유상한에관한법률은 위헌판결을 받았고 토지초과이득세법은 헌법불합치판결을 받았고 개발이익환수법은 끊임없이 위헌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한정된 자원인 토지에 대한 투기로 말미암은 사회적 불평등 심화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특별히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토지공개념의 내용을 헌법에 분명히 했다”고 강조했다.

야당의 ‘평가’와 ‘셈법’

야당의 반응은 역시 차갑다. 

자유한국당이 예상대로 가장 세다. 전희경 한국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토지공개념과 경제민주화 강화 등의 내용은 자유시장경제 포기 선언과 다름없다”며 “이 정권의 방향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아닌 사회주의에 맞추어져 있음을 재확인시켜주는 충격적인 내용”이라고 맹비난했다.

바른미래당은 전날 비평과 마찬가지로 내용에 대한 평가를 피하고 청와대의 의도를 비판했다. 권성주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국회 의결이 불가능한 현실과 위헌 소지에도 불구하고 3부작 개헌쇼를 자행하는 것은 그 목적이 국민이 원하는 개헌 자체에 있지 않음을 뜻한다”며 “다가오는 지방선거와 야당 죽이기를 위한 개헌쇼로 현 헌법정신을 위반하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민주평화당은 기초의회 4인 선거구제를 없애버리는 거대 양당 중 하나인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꼬집었다. 천정배 민평당 헌정특위위원장(헌법개정특별위원회)은 논평을 내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짓밟은 문재인 정부와 여당에 진정한 지방분권 개헌 의지가 있는가”라고 의문을 표시한 뒤 “지방선거 제도 개혁 없는 지방분권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천 위원장은 “청와대는 지방분권 개헌이 신속하게 시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으로 가증스러운 이율배반이다. 정녕 지방분권 의지가 있다면 (민주당이) 한국당과 담합해 4인 선거구제를 말살시킨 기초의회 선거구 획정 만행부터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 정책에 공조하고 있는 정의당은 수도 조항 관련해서만 이견을 밝혔다. 추혜선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다만 수도에 관한 규정은 당장 헌법 차원에서 다루기보다는 국토의 균형적인 발전 등을 감안해 국회 차원의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민주당과 야4당은 이날 개헌 논의가 시급하다는 데에는 공감했지만 각기 셈법의 차이를 드러냈다. 핵심 방향은 민주당과 나머지 야당의 ‘5당 회동’ 강조와 한국당의 ‘야4당 회동’ 제안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야4당의 개헌 협력 전선이 형성된 것과 관련 공식 제안을 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어떻게든 한국당의 개헌 정국 주도권을 가져오기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양새다. (사진=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어떻게든 한국당의 개헌 정국 주도권을 가져오기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양새다. (사진=자유한국당)

김 원내대표는 이날 당내 중진의원들과의 연석회의에서 “지난주 한국당이 밝힌 개헌 기본 입장과 일정에 대해 집권당인 민주당을 제외한 야당들이 동조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인만큼 야4당의 개헌 정책 회의체를 만들어 문재인 관제 개헌안에 공동 대응해 나갈 것을 공식적으로 제안한다”고 밝혔다.

특히 거대 양당 외에 나머지 상대적 소수 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이 한 목소리로 요구하는 선거제도의 비례성에 대해서도 “한국당은 국민 대표성과 비례성을 강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충분히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청와대가 정부 개헌안 발의 시한으로 못박은 26일 전에 야당 공조를 공고히 해 맞서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개헌 정국의 주도권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 원내대표는 “다음주 월요일부터 아무 조건 없이 국회 차원에서 국민 개헌안 합의를 위한 논의를 시작하자”고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덧붙여 “(3월 임시국회 일정 관련) GM 국정조사와 성폭력근절대책특위도 구성해서 사회적 이슈와 또 민생경제 국회가 될 수 있게”라며 개헌의 조건으로 붙일 다른 카드도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

반면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오늘 당장이라도 개헌 협상에 돌입하자는 간곡한 호소를 드린다”며 “김성태 원내대표에 계속 제가 전화 드렸는데 만나지 못 하고 있어서 매우 안타깝다”고 말해 민주당 패싱을 탈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양새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야4당이 협력하는 구도를 뚫어내고 최대한 대통령 권한을 덜 양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양새다. (사진=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야4당이 협력하는 구도를 뚫어내고 최대한 대통령 권한을 덜 양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양새다. (사진=더불어민주당)
박주선 대표는 당대표 간의 개헌 논의를 주장했다. (사진=바른미래당)
박주선 대표는 당대표 간의 개헌 논의를 주장했다. (사진=바른미래당)

박주선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당 연석회의에서 “여야 당대표들의 모임을 제안한다”며 “여야 대표가 직접 만나서 각 당의 입장을 확인하고 서로 절충하면서 개헌안 합의를 빠른 시일 내에 하자”고 밝혔다. 박 대표는 헌정특위(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위)를 중심으로 하는 원내대표 간 논의는 “지지부진”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 당대표 간의 접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의당의 추혜선 수석대변인은 “자유한국당이 개헌에 핵심키를 쥐고 있는 것만큼이나 여당인 민주당과의 합의도 개헌 성사를 위한 핵심 요인”이라며 “한국당은 4당 협의체 제안이 아닌 5당협의체를 숙고해주길 바란다”고 김 원내대표의 제안에 대해 다른 입장을 냈다.

한편, 22일은 정부 개헌안 발표 셋째 날로서 ‘정부형태와 헌법기관의 권한’에 대해 발표될 예정이다. 정부형태는 개헌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명분으로 분권형 정부형태에 사활을 걸고 있는 한국당과, 이에 반대 의사를 밝히며 대통령의 권한을 쉽게 양보하지 않으려는 정부여당 간의 치열한 수 싸움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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