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 전 경기대교수 / 소설가
이재인 전 경기대교수 / 소설가

[중앙뉴스=이재인] 미국 캘리포니아 주 넓디넓은 곡창지대에는 들쥐 떼가 서식하고 있다. 쥐과 동물은 번식력이 강하다.

임신기간 21일인 쥐는 한 배에 10~12마리씩 연 5회 새끼를 낳을 수 있다. 새끼가 또 새끼를 치는 것까지 합한다면 단순계산으로만 임신한 쥐 한 마리에서 3년 만에 3억5000마리가 태어나게 된다.

필자의 눈으로 확인한 바는 없지만 어미들쥐가 이렇게 번식을 하게 된다면 그 숱한 쥐떼가 식량을 거의 거덜 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들쥐 떼는 급하고 방정맞게 빨라서 리더가 앞장서면 뒤따라 죽을힘을 다하여 따라 붙는다고 한다.

그러니 리더가 성급하게 따라 붙는 후발대보다 행보를 빨리해야 하기 때문에 걷잡을 수가 없게 된다. 리더 들쥐는 전후좌우를 살필 기회가 없으니 낭떠러지로 함께 떨어져서 결국은 다 죽게 된다.

어쩌다 한두 마리가 살아남아서 종족을 보존하다가 개체수가 불어나면 또다시 낭떠러지로 달려가서 자살하는 게 그들의 생리이다. 필자는 미국에 교환교수로 있을 때 그곳 생물학과 교수한테 이 말을 들으면서 크게 깨달은 바가 있다.

지금 초현대화된 사회에서 리더는 뒤에서 몰고 따라오는 군중들 때문에 전후좌우를 살필 수 없게 되어 앞만 보고 휘달리다가 결국은 다 함께 낭떠러지에서 강물로 뛰어드는 경우가 아닌가 싶다.

우리 옛 속담에 ‘바늘허리 매여서는 못쓴다’는 말은 서두르지 말라는 진리를 담고 있다. 그렇다. 이 땅의 진정한 리더가 되는 인물들은 캘리포니아 쥐떼의 리더처럼 무조건 달리지는 말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속전속결, 무엇이든지 속도전이라는 미명하에 생명과 평화와 안전보다는 빨리 가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젖어있다. 결국은 봄이 오고 여름이 가고 또 가을이 와야만 겨울도 온다는 진리를 덮은 채 휘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수시로 든다. 아니 쫒기고 있다.

멀쩡한 다리가 주저앉고 큰 빌딩 기초공사장 상판이 내려앉는 현상이 주위에서 매일 반복되고 있다. 그러니 연일 사건, 사고가 밥 먹듯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의 각 리더들은 좀 더 여유를 가지고 휘달려드는 군중들을 제지시키고 이들한테도 템포를 조절하게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시속을 뛰어 넘고 계절을 뛰어넘는 농산물을 다반사로 먹고 생활하는 우리한테 미국의 광활한 벌판의 들쥐 떼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번 짚어볼만 하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익히지 않은 음식물을 먹다가는 다 함께 식중독으로 고생할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 곳곳에는 빠르고 신속한 사건들이 줄지어 들쥐 떼처럼 휘달려가고 또 휘달려 오고 있다.

그러니까 각 사회단체 리더들은 이 속도전으로 다 함께 낭떠러지 강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안전한 포구나 평화지대로 대피하는 좀 이성적인 대안이 시급한 것은 아닌가 싶다.

엊그제 결혼식장에서도 결혼식 시작 전에 식권을 들고 식당으로 뛰는 하객들을 보면서 청첩장에 은행구좌를 찍어 보내는 것도 이런 방법을 저지할 수 있으리라고 혼잣말로 뇌까린 바가 있다. 좀 더 천천히, 좀 더 냉철한 판단이 속도전에 필수 과목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오늘날 발전양상 속에는 느림과 냉철한 판단이 함께 존재해 왔다. 우리는 어느 편도 아니고 냉정과 온정의 그 가운데에서 느림으로 살아가는 게 지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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