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스커피를 마시다

홍철기

 

오늘 하루

중간 중간 마음이 울컥거려

제대로 섞이지 못한 관계는

종이컵 위에서 거품으로 태어나요

지금, 우리 관계는

거품 위 거품 속

어디쯤일까요

 

그대는 가라앉기 전

저어줘야 향기가 나고

나는 지금,

싸구려 향기를 버리고 싶죠

미지근하게 전해지는 나른한 하루란

몸과 마음이 제 각각일 때 나는 맛

 

믹스란 나와 당신을 섞는 일

커피는 우리를 위해 준비된 하루

이 둘을 합쳐 현재를 마셔요

 

국경 넘어 입국을 준비 중인

아라비카와 모카 형제를 위해

혀끝으로 전하는 안부

후하고 불면

남는 건 미처 다 스며들지 못해

언젠가 드러날 유혹

 

이제, 그만

떠날 준비 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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섞이지 않는 것들은 저 혼자 잘나서 베베 꼬인 것들이다. 어쩌면 우리네 삶이란 섞이고 스미는 일들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봄! 모든 것이 조화를 위해 돌아오는 계절!

하지만 겨우내 경직되었던 여독이 풀어지느라 춘곤증도 덩달아 따라오는 나른함의 계절이기도 하다. 달달하고 그윽한 믹스 커피 한 잔 진하게 음미하면 기분이 상쾌해질 것 같다. 아메리카노, 블랙커피의 맛도 나름 개운하고 깔끔하지만 때로는 프림과 설탕을 황금비율로 잘 섞은 믹스커피가 기분을 전환해 주기도 한다. 우리에게 인생의 하루라는 것은 일회용 종이컵과 같은 것, 그 컵에 담겨야 할 내용은 거품같거나 독불장군이 아닌 융화의 삶이다. 시각을 달리해보면 우리의 일상은 시적인 것들로 가득하다. 화자는 아라비카와 모카 같은 당신과 나 함께 떠나보자고 권한다. 다시 세상 속에서 설탕과 프림과 같은 인연에 나를 녹이며 우리는 모두 오늘 여기 이 자리 이 환경의 한 퍼즐로써 어울리며 살아가야 하는 이방인들이기 때문이다.

‘믹스란 나와 당신을 섞는 일 /커피는 우리를 위해 준비된 하루 / 이 둘을 합쳐 현재를 마셔요‘ 라며 권하는 커피향 같은 詩香이 그윽하다. 이 그윽함으로 경직된 나를 말랑말랑하게 풀어본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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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철기 시인 /

1974년 전북 익산 출생

사진  / 최한나
사진 / 최한나

 

2012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

2017년 <시와표현> 등단

문학동인 volu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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