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 전 경기대교수 / 소설가
이재인 전 경기대교수 / 소설가

[중앙뉴스=이재인] 50년 전의 일이다. 소설가 김광식 선생께서 문학 지망생들에게 향후 20년쯤에는 ‘익명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분은 인쇄직공의 소외의식을 다룬 단편 <213호 주택>을 펴낸 저명한 소설가였다.

이 소설은 인간이 기계화로 인하여 편리함도 있지만 그 폐해도 심심치 않게 우리 주변을 어지럽게 하고 때론 부도덕적일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제 얼굴 없는 ‘익명의 시대’가 와서 이로 인하여 많은 언어폭력에 시달리게 된다고 예언하였다.

선생은 일제하에 일본에 건너가 유학하신 유학파에 신학문을 익힌 미래학자겸 소설가로 교수로 사회적으로 저명한 분이셨다. 이 말씀을 들은 게 1965년 오월이니 40년이 훨씬 넘은 세월인데 모든 말씀이 다 적중하였다.

지금 인터넷을 보면 익명으로 자신의 불만과 주장을 제기하는 경우가 다반사 이다. 이런 불만을 체킹하는 인력도 대다수 보충하고 또한 말 같지 않은 소리에 일일이 대꾸하는 역기능도 허다하고 한다.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로 국가기간이 흔들리지는 않겠지만 듣기에는 민망하다. 특히 이성이 부족한 학생층이 민주화를 무슨 방패처럼 내세우지만 민주화는 내가 의무를 충실해야만 민주주의의 주인이 된다는 점을 명심하여야 한다.

김광식 소설가는 ‘익명의 시대’에 산다고 하였는데 아파트 시대가 주류를 이룬 주거양상이 바뀌면서 각 주택에 내걸었던 주인댁 문패가 사라졌다.

필자의 집 문패는 아주 멋진 문패였다. 예술적으로 만들어 제법 선비 집임을 간접으로 드러내는 말하자면 주인의 품위를 문패가 대신하였다. 은행나무 나무판에 글씨를 세긴 나의 백부는 근동에서 이름난 서예가이자 시조시인이셨다.

서각은 근동에서 나무서각을 하시는 고모부의 솜씨로 품격과 명성이 넘치는 귀물이었다. 이런 문패를 이사를 하면서 아궁이에 집어넣었는지 70년대에 사라졌다.

그 문패를 걸어놓고 우리 형제들은 절제하고 겸손함을 되새기며 문패를 보면서 자숙하곤 했다. 그 지금 우리사회에 문패를 걸고 자기를  돌아보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는지…….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민간 운동으로 아파트에도 호수 대신 이름을 내거는 운동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런데 동서남북 전후좌우를 돌아봐도 문패를 달은 주택도 사라졌다.

이제는 정보 보호차원에서 사람이름 대신에 범죄인이 다는 수인번호처럼 ‘264’ 아니면 ‘1004호’라고 붙이고 다니는 세상이 올는지도 모르겠다.

장준하 김준엽 부완혁 선우휘 현승종 김상협 이런 유명한 분들 대신 ‘20004호’, ‘107’이라고 부르면 어딘가 물건 취급받는 느낌이다.

기계화, 컴퓨터화? 다 좋은 단어이다. 그러나 기계화의 단점을 보완하는 작업도 겸하는 노력이 사회에서 진지하게 논의되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어제 필자는 개인주택에서 사시면서 내걸렸던 송원희 원로 소설가의 문패가 내가 운영하는 문학관에 기증유물로 들어왔다. 아동 문학가이면서 소설가인 이주홍 선생이 직접 쓰신 글씨를 최진실 서각가가 피나무에 새긴 명품 유물이다.

가끔은 우리 선배들이 실명으로 살던 옛날이 그리울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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