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이중성, 사실상 전국 기초의회 선거구 획정에 방관, 광주광역시의회는 예외인 이유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김동욱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이 지난달 20일 시의회 본회의장에서 “밀어버려”라고 소리쳤다.

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는 당시 4인 기초의회 선거구를 7개로 늘리는 조례안을 본회의에 상정했다가 다시 0개로 수정해 기습 상정했다. 이에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소속 시의원 8인이 의장석을 점거하고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끝내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과정에서 김 의원은 “밀어버려”라고 말했다. 

당시 정의당 서울시당은 긴급논평을 내고 “더 이상 더불어민주당은 과감한 개혁이나 촛불정부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말길 바란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3월20일 서울시의회에서 기초의회 4인 선거구 '0개' 조례안이 날치기 통과됐고,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의원들이 의장석을 점거하고 이를 저지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3월20일 서울시의회에서 기초의회 4인 선거구 '0개' 조례안이 날치기 통과됐고,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의원들이 의장석을 점거하고 이를 저지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3월20일 서울시의회에서 기초의회 4인 선거구 '0개' 조례안이 날치기 통과됐고,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의원들이 의장석을 점거하고 이를 저지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당시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의원들은 압도적으로 1당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민주당 의원들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전국적으로 기초의회 선거구 획정이 마무리됐다.

한국 정치는 지역주의에 따른 거대 양당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자신들(자유한국당)이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까지 당하고 전직 대통령 2명이 구속됐어도 정당 지지율이 2위이고 20%나 된다. 

중앙보다 지방은 더 심각하다. 심상정 의원(정의당)은 “양당의 공천만 받으면 살인자가 나와도 당선된다”고 표현한 바 있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고자 기초의회부터 선거구를 2인에서 3~4인으로 늘렸다. 다양한 정당의 진출을 위해서 한 선거구에서 4명까지 당선자를 배출하도록 한 것이다. 국회의원과 광역의원은 선거구당 1명만 뽑지만 기초의회는 2명씩 뽑는다. 하지만 2명씩 뽑아봤자 거대 양당 후보가 당선되는 현실은 그대로다. 

쉽게 말해 후보자의 면면을 제대로 살피기 어렵고 더구나 여덟 번의 투표를 해야하는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는 어차피 민주당 아니면 한국당에 표를 주기 마련인데. 1, 2등만 당선되면 거대 양당의 기초의회 독점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취지에 전혀 부합하지 못 한다. 

기초의회 선거구 획정은 광역의회에서 정한다. 전국 대부분의 광역의회는 거대 양당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국 선관위(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구획정위원회는 대체적으로 광역의회에 4인 선거구를 대폭 늘리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양당의 광역의원들은 이를 묵살하는 경우가 많았고 시민단체와 상대적 소수정당(바른미래당·평화당·정의당)의 거센 비판에도 민주당과 한국당은 묵묵부답이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지난달 16일 국회에서 본지 기자에게 “당대표들이 책임있게 지방의회 소속 의원들한테 그딴 짓 하지마라 이렇게 얘기하면 된다. 이런 중대한 사안에 당대표가 책임있게 해야하는데 아무 말씀 안 하고 계신다”고 불만을 표했다.

결국 당대표가 결단하면 될 일인데 홍준표 한국당 대표에게 그걸 바라기는 너무 만무하지만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한 마디 해야한다는 게 이 대표의 입장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 사안 자체에 말을 아끼고 있다. 최근 들어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개헌 정국 관련 비례성에 기초한 선거제도 개혁과 선거구제 개편을 자주 언급하고 있는데, 민주당 지도부에서는 이보다 더 말이 없는 편이다. 

지난달 18일 민주당의 개헌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이인영 의원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당론으로 추진한다면서 왜 서울시 기초의회 4인 선거구제를 반대했냐는 질문에) 중대선거구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상관성이 있는 질문이 아니다. 소선거구제냐 중대선거구제냐의 문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이인영 의원은 기초의회 4인 선거구를 쪼개는 민주당의 행태 관련 질문에 피해가는 답변을 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인영 의원은 기초의회 4인 선거구를 쪼개는 민주당의 행태 관련 질문에 피해가는 답변을 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선거구제의 크기와 비례대표제는 다른 문제지만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다. 1등만 당선되는 단순 다수대표제는 소선거구제다. 1등이 얻은 표 외에는 전부 죽은 표(死票)가 되고 거대 정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반면 비례대표제는 정당의 득표율만큼 그대로 당선자 수가 결정된다. 정치학 교과서를 보면, 다당제 국가는 비례대표제 비중이 높고 중대선거구제인데 반해 양당제 국가는 비례대표제 비중이 낮고 소선거구제라는 점이 선거제도와 정치 시스템의 일반적인 경우로 명시돼 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2일 평화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농성 중인 것을 발견하고 “(박지원 의원에게) 대표님하고 저하고 이 정도 가지고 합니까? 더 세게 해야죠”라고 말했다. 본회의장에 들어가자는 우 원내대표의 제안에 “맨입으로 못 간다”는 박 의원의 답변이 있었고 이에 대응하는 발언이었지만 4인 선거구제를 “이 정도”로 취급하는 여당 원내대표의 인식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에피소드였다.

민주평화당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릴레이 농성을 이어갔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민주평화당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릴레이 농성을 이어갔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어찌됐든 추 대표는 선거구 획정으로 전국이 뜨거울 때 침묵했고 광주광역시 외에 전국 대부분의 기초의회 선거구는 2인 선거구 위주로 짜여졌다.

광주시의회 의석 분포는 민주당 11명·평화당 6명·바른미래당 1명·민중당 1명·무소속 2명인데 1당인 민주당 의원들은 여전히 2인 선거구제를 선호했다. 하지만 나머지 정당이 10명으로 과반에 가까워 4인 선거구 쪼개기를 저지할 수 있었다.

평화당 의원들 입장에서 원내 2당으로 2인 선거구를 좋아할 수 있지만 당장 광주에서의 정당 지지율이 너무 낮다. 1%의 지지율에 정의당에도 밀려 4등이다. 2인 선거구에서 2등을 장담할 수 없었던 배경이 있던 것이다. 평화당과 정의당의 공동 교섭단체 구성 관련 협상 과정에서 정의당 광주시당이 기초의회 선거구 확대를 조건으로 지도부를 압박했던 것도 주효했다. 

그렇게 광주시의회는 지난달 19일 기초의회 선거구를 2인(3개)·3인(15개)·4인(2개)로 확정했다.

3~4인 선거구가 곧 소수당 후보자들의 당선을 불러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거대 정당에서 여러 명의 후보를 내서 당선시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이 좀 더 넓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김희서 서울시 구로구의원(정의당)은 5일 보도된 시사인 인터뷰에서 “일종의 메기효과”라며 “구로구의회에 구의원 개인 사무실을 만들자는 안이 발의된 적이 있었는데 의원 16명 중 나만 반대했다. 주민들에게 알리고 그 힘으로 막아냈다. 감시자 한 명만 있어도 확실히 달라진다”고 말해 다당제가 기초의회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증언했다.

6일 민주평화당 의원들과 당직자들이 국회 정문 앞에서 4인 선거구 쪼개기 규탄 필리버스터를 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6일 민주평화당 의원들과 당직자들이 국회 정문 앞에서 4인 선거구 쪼개기 규탄 필리버스터를 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용주, 김경진 의원과 조배숙 대표의 모습. (사진=박효영 기자)
이용주, 김경진 의원과 조배숙 대표의 모습. (사진=박효영 기자)

한편, 오랫동안 정의당이 이 문제를 지적해왔지만 최근 들어 소수당 중에서는 평화당이 가장 적극적으로 4인 선거구 쪼개기를 규탄했다. 국회 본회의 릴레이 농성을 이어갔고 모든 의원들이 총출동한 규탄대회를 열기도 했다.

관련해서 이용주 평화당 의원은 지난달 29일 공동 교섭단체 구성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아마도 그런 농성이 평화당의 전문이라기보다는 정의당의 전문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조만간 정의당도 공동 농성단체를 구성해서 같이 협조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농성 없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재치있게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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