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 파기환송심에서 이남현 前 사무금융노조 대신증권지부장 부당해고 인정

작년 11월, 이남현 前지부장 원직복직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남현 지부장 (사진=우정호 기자)
작년 11월, 이남현 前지부장이 원직복직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우정호 기자)

[중앙뉴스=우정호 기자] 개인이 기업을 상대로 맞설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승리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실무에 있는 국내 노동자들이 ‘불가능’이라고 답할 것이다. 특히나 그 대상이 대기업이라면 더더욱.

서울 고등법원은 대신증권 저성과자 퇴출 프로그램의 부당함을 고발했다 2015년 해고당한 이남현 전 사무금융노조 대신증권 지부장에 대해 지난 13일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길었던 싸움이 종장을 향해 가고 있다.

대신증권의 부당해고, 긴 법정 싸움

이남현 전 지부장은 대신증권에 2004년 입사해 2011년부터 인재개발부 사내연수 담당 부서에서 2년간 팀장으로 재직했다. 그는 사측이 내놓은 저성과자 관리프로그램 ‘전략적 성과관리 체계’가 일종의 강제 퇴출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국회토론에서 공개했고, 2015년 10월 회사는 허위사실 유포 및 사내질서 문란의 이유로 그를 해고했다.

2015년 해고 이후 1심과 2심 재판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지 못했던 그는 2년 간 긴 싸움 끝에 2017년 11월에서야 사건이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4월 13일 파기환송심에서 마침내 대법원은 대신증권 측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대신증권 본사 (사진=우정호 기자)
대신증권 본사 (사진=우정호 기자)

저성과자 교육프로그램 ‘전략적 성과관리 체계’…사실상 퇴출 프로그램?

2012년 5월 시작된 저성과자 교육 프로그램 ‘전략적 성과관리 체계’는 저성과자를 선정해 3단계 교육시스템을 거친 뒤 개선의 여지가 없을 경우 자발적 퇴사를 이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재직당시 회사의 직접지시로 이 프로그램의 실무자이자 담당팀장이 됐던 이남현 전 지부장은 부서장에게 “절반은 저성과자의 개발이 목적이고 절반은 자발적 퇴사가 목적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심지어 1차 프로그램 대상자 중엔 친한 사람들도 많았고 그 과정에서 실무자로 상당히 괴로웠다”고 말했다.

또한, 전략적 성과관리 체계는 회사 측이 ‘노조파괴전문 업체’로 유명한 창조컨설팅의 컨설팅을 받았다는 의혹이 있으나 회사 측은 부인했다.

이에 대해 이 전 본부장은 “창조컨설팅의 별도 법인인 ‘휴먼밸류컨설팅’이라는 곳의 과장이 대신증권 부서장 연수에 참가해 프로그램을 설명했다”며 프로그램이 창조컨설팅과 관련 없다는 회사 측의 주장을 지적했다.

내부고발자는 '회사 공공'의 적?

한편, 이 전 지부장은 전략적 성과관리 체계의 부당함을 크게 느꼈고, 개인의 힘으로 내부폭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노조창립을 계획 했으며, 국회 토론회에서 전략적 성과관리 체계가 전략적 강제퇴출 프로그램이라고 주장했다.     

이른바 ‘내부고발자’의 역할을 하게 된 이 전 지부장을 회사 측이 내버려 둘리 없었다. 사측은 ‘허위사실 유포, 사내질서 문란 및 회사 명예 실추’라며 1년 반 동안 이 전 지부장에게 2~30차례에 걸쳐 경고장을 보냈다.

이에 이 전 지부장은 “이는 사측이 해고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수순차원이었으며 경고장들은 법원에서 해고 정당화 수단으로 제시됐다”고 밝혔다.

지난 11월, 명동 대신증권 본사 앞에서 열린 이남현 前지부장 원직복직 촉구 기자회견 (사진=우정호 기자)
지난 11월, 명동 대신증권 본사 앞에서 열린 이남현 前지부장 원직복직 촉구 기자회견 장면. (사진=우정호 기자)

대신증권 창립 이래 첫 노조설립, 그리고 이틀 만에 생긴 제2노조

2012년 시작된 전략적 성과관리 체계 프로그램은 2013년으로 접어들자 대상자가 상당 수 늘어났다. 동시에 직원들의 불안감도 커져갔고 이 전 지부장에 공감하는 직원들로부터 힘을 얻어 2014년 1월 25일, 창사 이래 첫 노동조합의 설립 총회를 열었다. 그리고, 27일 월요일, 전직원에 사내 메신저를 통해 노조 창립을 통보했다.

그런데 불과 이틀 뒤, ‘제1노조가 만들어진 걸 보고 용기를 얻었다’고 창립의 변을 밝힌 제2노조가 만들어졌다. 이에 이 전지부장은 “제1노조가 창립을 밝힌 이틀 뒤 제2노조의 고용 노동조합 설립 신고가 들어갔는데 이틀 동안 구성원을 모으고 서류작업 및 창립총회까지 완료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라고 말하며 사측과 연관 의혹을 표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두 노조는 교섭창구단일화하지 못한 채 여전히 사측과 개별 교섭을 벌이고 있다. 한편 대신증권은 제2노조와의 2014년 12월 단체협약을 앞두고 ‘무쟁의 타결 격려금’으로 제2노조 조합원에게 300만원을 지급한다는 글을 게시했고, 2~30명에 불과했던 조합원이 2주 만에 242명으로 늘어났다.

결국 12월 말 사측은 제2노조 조합원 242명에 약 7억원의 격려금을 지급했다. 이는 회사 측과 제2노조의 연관 의혹이 불거지게 된 계기가 됐다.  

이 전 지부장은 현재의 노조 상황에 대해 묻는 질문에 “제 1노조는 약 580명 가량이고 제 2노조는 지금 200명 정도고, 2015년부터 여전히 각 노조가 임금교섭부터 개별 교섭 중이다”라며 “회사측과 정상적인 교섭을 위해선 하나로 묶어져야 하지만 제2노조는 얼마 전에도 자기네 조합원들에게 분리교섭을 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제조업 노조들 중에서나 사측이 노조 탄압을 위해 어용노조를 만드는 경우는 있어도 사무직금융노조 중 이런 케이스는 없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명동 대신증권 본사 (사진=우정호 기자)
명동 대신증권 본사 (사진=우정호 기자)

부당해고 후 무죄 판결까지, 복직 가능할까

한편, 퇴직이후 ‘경제적 어려움이 없는가’하는 질문에 “해고 전보다 힘든 건 사실이지만 사무금융노조와 대신증권지부의 ‘희생자구제기금’을 통해 도움 받고 있다”고 밝혔다.

부당해고자들이 힘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이다. 아울러 “현재 사무금융노조 안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며 원만한 교섭을 위해 상호 합의하에 외부 시위는 자제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13일 고등법원의 부당해고 판결로 복직 희망의 문을 조금 더 열 수 있게 된 이 전 지부장은 앞으로의 행보를 묻는 질문에 “회사는 시간 벌기용으로 대법원에 상고 할 예정이라고 들었고 타사들의 예를 봤을 때 복직 시키지 않고 시간을 질질 끄는 경우도 있더라”며 “하지만 소송이 처음시작 된 2015년과 지금은 정권도 사회적 분위기도 다르다”고 말했다.

아울러 “상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사건에 대해 상고를 기각하는 ‘심리불속행기각’이라는 제도로 한두 달 안에 법정 싸움이 마무리될 수도 있겠지만 6개월 정도 예상한다”고 했다.

한편, 회사측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은 상태다. 대신증권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재 내부검토 중이며 항소와 관련해 결정된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마포역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남현 지부장 (사진=우정호 기자)
지난 12일, 마포역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남현 지부장. (사진=우정호 기자)

끝으로 이남현 지부장은 대신증권에 대해 "입사 때 업계 2,3위권이었던 대신증권이 10여년 간 증권 본업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10위를 간신히 턱걸이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이어 ”금융업계는 특히 사람을 중시해야 한다. 사원들에 대한 처우가 악화되니 사람이 점점 떠나게 되고 경쟁력이 떨어져 업계 순위가 밀리고 있다“며 사측의 개선을 촉구했다. 

최근 ‘대한항공’사건으로 이슈화된 대기업의 갑질 횡포의 중심에는 ‘잘못된 것은 바로잡자‘는 용기에서 비롯된 내부고발이 있었다. 이남현 전 지부장의 대법원판결도 이제 용기 있는 자들이 설 수 있는 사회로 점차 바뀌어 가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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