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과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의 43일 농성 마무리, 한국당이 왜 꼰대인지, 다른 정당의 책임은 없나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자유한국당이 ‘꼰대’ 한국당이 됐다. 꼰대는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직장 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위키백과)”이다.

한국당은 선거권 연령을 만 18세로 하향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김성태 원내대표의 입에서 낮춰야 한다는 말이 나왔고 당내 혁신위원회는 선거권은 물론 피선거권까지 낮춰야 한다고 당 지도부에 권고했다. 하지만 학제개편이 선행돼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에 사실상 반대하는 것이라는 게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의 입장이다. 

3월22일 한국당의 2기 혁신위가 홍준표 대표에게 혁신안을 전달했다. (사진=자유한국당)

학교가 정치판이 되기 때문에 교복입고 투표하면 안 되고 학제개편를 먼저 해서 만 18세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상태에서 투표권을 주자는 게 한국당의 논리다.

제정연대와 청소년들은 지난 3월22일부터 농성을 이어왔다. “4월 국회통과 6월 선거”를 단기 목표로 내세웠던 제정연대는 3일 마지막 일정을 수행하고 43일의 거리 농성을 마무리했다. 

한국당 2기 혁신위의 혁신안을 보면 ‘초등학교 6년·중학교 3년·고등학교 3년’에서 중학교를 2년으로 낮추자는 것인데 한국당은 구체적으로 이를 위한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정치권과 제정연대는 학제개편의 절차 자체가 법률·행정적으로 복잡하기 때문에 이를 전제조건으로 내건 것은 선거권을 낮추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고 판단하고 있다.

보수정당으로서 선거권 하향을 추진하는 개혁적 이미지만 취하고 실상은 반대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한국당과 대한애국당을 제외한 원내 모든 정당(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민중당)은 바로 선거권을 하향하자고 뜻을 모으고 있다. 

제정연대는 개별적으로 한국당 의원들을 만나보면 하나같이 바로 하향하는 것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였다면서도 당 지도부를 설득하는데 그들이 전혀 나서지 않았다고 밝혔다.

국회 헌정특위(헌법개정 및 정치개혁)에서 한국당 간사를 맡고 있는 황영철 의원은 제정연대와 면담을 가진 자리에서 “나는 (선거권 하향) 안건 상정에 단 한번도 거부한 적이 없다”고 말했지만 한국당 지도부의 입장 변화가 없다면 이는 아무 쓸모가 없다. 

때문에 제정연대는 지도부의 당론 전환을 위해서 한국당 의원 13인(강석호·황영철·장제원·이종구·홍일표·박인숙·홍철호·정양석·박명재·김세연·신보라·김용태·김종석)을 지목했다.

13인은 모두 관련 법안을 발의하거나 방송에서 지지발언을 했는데 현재 한국당의 당리당략을 뛰어넘어 소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 하고 있다. 

제정연대는 4월11일 한국당의 13인 의원을 지목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그동안 제정연대와 청소년들은 9번의 기자회견, 3번의 기습시위, 2번의 집회와 행진, 매일 이야기마당 진행과 1인 피켓시위를 했다. 그만큼 간절했기에 농성과 삭발을 감행했고 한국당 당사 앞에서 드러눕고 지도부를 직무유기로 고발하기도 했다. 4월23일에는 국회 정문 앞에서 1박2일 15번의 릴레이 기자회견도 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제정연대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한국당 지도부는 늘 묵묵부답이었다. 선거연령이 하향되면 본인들이 불리해진다는 근거 없는 편견과 얄팍한 표 계산으로 기본권을 요구하는 국민을 외면해온 정당에 더 이상 미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 일정

이날 10시반 국회의사당역 3번출구에 마련된 농성장에서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수석부대표, 손솔 민중당 공동대표와 함께 정책협약식이 열렸다. 대표들은 공식 문서에 서명하고 20대 국회의 우선 안건으로 선거권 연령 하향을 추진하겠다고 다시 한 번 약속했다.

중앙 왼쪽의 정장 입은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수석부대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손솔 민중당 공동대표가 협약식에 서명했다. (사진=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그동안 감정노동을 해가며 정치권 인사들을 만나고 다녔던 배경내 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우 원내대표와 오 부대표를 앞에 두고 뼈있는 말을 남겼다. 

배 위원장은 “한국당의 책임이 막대하지만 저희는 다른 정당들의 노력이 충분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삭발식 및 농성 돌입 기자회견(3월22일) 자리에서 4월 국회 내에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통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원내 5당(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민중당)으로부터 받았다고 밝혔다.

배 위원장은 “그 약속을 믿고 저희가 고단한 농성을 이어왔는데 한국당이 반대하는 한 어쩔 수 없다는 소극적 자세에만 머물지 않았는지 따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에 대한 특검 수용 요구를 위해서 4월 국회를 열지 않음으로써 2018년 지방선거부터 청소년이 참여할 마지막 시일을 그냥 흘려보낸 것은 아닌지 역사적으로 엄중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배 위원장은 그동안 선거권 하향을 위해 수많은 정치인들을 직접 만나 적극적인 활동을 호소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배 위원장은 그동안 선거권 하향을 위해 수많은 정치인들을 직접 만나 적극적인 활동을 호소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우 원내대표는 “마음이 무겁다. 집권여당의 원내대표로서 죄송하고 송구스럽다”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합의가 안 된 일은 더 논의하고 이렇게 하면 되는데 합의가 안 된다고 해서 모든 일정을 중단시키고 아무 것도 논의하지 않는 이 국회 상황을 보고 답답함을 느낀다”고 다시 한 번 야당의 책임을 거론했다. 

이어 “6월 지방선거 이후 가장 빠르게 열릴 선거에서 18세 청소년들이 투표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재차 공언했다.

오 부대표도 “송구스럽다. 여전히 국회가 공전 중이다. 정치권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정당 간 스펙트럼이 너무 크고 지금 국회선진화법의 사정 하에서는 국회가 열리지 못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고 밝혔다. 

14시에는 서울 여의도 한국당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꼰대한국당 현판식’과 홍준표 대표 코스프레를 하는 등 규탄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홍 대표의 가면을 쓴 인물이 몸부림을 치며 “나는 청소년들의 투표가 무섭다”고 외쳤다. 촛불광장에서 울려퍼지던 헌법 1조1항 노래는 “미래가 없는 꼰대 한국당이다”로 개사됐다.

꼰대한국당 피켓을 든 청소년과 홍준표 대표의 가면을 쓴 청소년의 모습. (사진=박효영 기자)
제정연대가 자유한국당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게 될 때마다 비가 왔다. 이날도 비가 내렸다. (사진=박효영 기자)
제정연대는 꼰대한국당이라고 지칭하게 된 이유를 두고 청소년과 시대적 요구를 자기만의 논리로 거부하고 묵묵부답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진=박효영 기자)
꼰대한국당 현판을 공개하고 홍준표 가면이 청소년의 투표권이 두렵다고 외치고 있는 모습. (사진=박효영 기자)

19시에는 농성장에서 촛불 문화제가 열렸다. 

학부모들의 남행열차 개사 버전 부르기, 퀴즈쇼, 활동 보고, 연대 발언 등이 진행됐다.

촛불 문화제를 통해 서로 연대했던 기간을 되새기는 제정연대. (사진=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이날 저녁 농성장의 마지막 밤을 촛불로 지킨 제정연대 사람들. (사진=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서로 돌아가며 그동안 느꼈던 소감을 말하고 있는 사람들. (사진=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제정연대는 연설문을 통해 “농성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고, 농성장을 설치하고, 저녁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밥 한끼로 연대하고, 농성장이 너무 썰렁하지 않도록 지키러 오는 사람들, 묻히지 않도록 농성 소식을 알리는 사람들, 생필품을 챙겨주는 사람들, 피켓팅을 하는 사람들, 급하게 생긴 일정에도 달려와 준 사람들”을 일일이 언급하며 “모두 잊지 못 할 것이고 감사하다”고 표현했다.

한편, 청와대는 국회에서 지방선거 개헌 투표가 무산되자 대통령 개헌안의 취지에 맞는 입법을 추진하겠다며 그 시작으로 선거권 연령을 18세로 하향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제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진성준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은 2일 방송된 <청와대 라이브>를 통해 지방분권을 비롯 “이달 말까지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강조했고 관련해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해서 담당 부처인 행정안전부 차원의 입법 플랜이 발표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정부의 법률안 제출권이 행사되더라도 해당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의 법안소위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당의 입장 변화가 없다면 기존의 수많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계류됐듯이 이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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