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연기된 뒤 21일 10시로 재합의, 여야 쟁점 이슈로 인한 국회 파행이 근본 원인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국회 본회의가 열리기로 예정됐던 날짜가 18일 21시·19일 21시에서 또 연기됐다. 이번에는 21일 10시다.  

여야가 드루킹 특검이라는 큰 산을 넘어섰지만 추가경정예산안에서 부딪쳤다. 

정부가 편성한 추경액은 3조9000억원으로 2조9000억원이 청년 일자리 관련이고 1조원이 지역 구조조정 지원 관련이다. 

19일 아침부터 여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소소위원회를 열고 이미 보류된 사업 53건의 증감액 심사를 진행했지만 1시간 만에 정회됐다.

예결위 여야 간사들(윤후덕·김도읍·황주홍)이 3일 오전 국회 본청에서 예결위 소소위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날 계획은 소소위에서 증감액 심사를 완료하고 수정 추경안을 전체회의에서 의결한 뒤 본회의에 상정하는 것이었다.

가장 먼저 심사했던 것이 산업단지에서 근무하는 청년 노동자에게 1인당 10만원의 교통비를 지원하는 예산이었는데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전액 삭감을 주장했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곤란하다는 입장이었다.

이런 식으로 시작부터 지지부진했지만 허용된 시간은 13시간에 불과했다. 특히 야3당(한국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이 12건의 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하기로 뜻을 모았다는 사실을 민주당이 알게 되면서 논의 속도는 더욱 더뎌졌다.

야당의 전액 삭감 의지는 매우 높지만 민주당은 전액 삭감을 한 건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추경 심사의 난항 배경에는 여야 원내대표들 간의 협상 셈법이 자리잡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강병원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야당의 추경 발목잡기는 청년과 고용위기지역 민심을 외면하고 국민을 고통 속에 방치하는 무책임한 행태“라며 “야당의 합의 정신에 반하는 무리한 감액 주장으로 추경 통과가 무기한 연기됐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민주당 관계자는 “야당이 1조 원에 가까운 사업을 감액하는 대신 그만큼의 다른 사업을 증액하려고 시도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반면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예결위가 쉽지 않은 협상을 하면 교섭단체 대표들이 조율하고 싸움을 말리고 독려해야 하는데 집권당 원내대표가 본회의 무산을 (소속 의원들에게) 문자로 보내면 어떻게 하나”라며 “미리 (여야 간의) 얘기가 안 됐다. 파행이 의도적인 것 아닌가”라고 드루킹 특검법의 무산이 민주당 속내일 수 있음을 암시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미 합의한 특검법을 번복할 생각이 없다”고 부인했다.

반대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16일 자신이 진행하는 tbs <뉴스공장>에서 “한국당의 관점에서 보자면 18일에 통과가 안 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특검이 통과되면 사무실 열 때까지는 (야당이 정치공세) 할 게 없다”며 “통과가 안 되면 이거 가지고 계속 뉴스가 나올테니까. 그래서 통과가 당장 안 되는 게 더 좋지 않느냐. 어차피 지방선거 전에 특검 결과가 나온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것이고. 시작도 못 할 테니까”라고 한국당의 속내를 분석했다.

이어 “(한국당이) 바른미래당보다 보수의 적자로 보이는데는 (드루킹 공세를 세게 하는 것이) 더 유리하지 않느냐”며 실제로 “(드루킹 정국에서) 바른미래당이 피해자인 것 같고 수혜자는 (단식으로 큰 주목을 받은) 김성태 원내대표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어찌됐든 이날 16시가 돼도 소소위가 계속 막혀있자 민주당과 평화당은 사실상 본회의 연기를 공식화했다. 깎으려는 야당과 지키려는 여당의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물리적으로 5시간 만에 본회의에 상정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럼에도 17시에 소소위는 재개됐고 여야는 주말에 심사 속도를 높여 21일 10시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목표를 정했다.

정부가 편성한 추경 예산 3조9000억원. (자료=기획재정부)
청년 일자리 2조9000억원과 구조조정 지역에 대한 지원 1조원으로 구성된 추경. (자료=기획재정부)

여야의 철학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국가 재정 투입에 대해서도 입장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김도읍 한국당 의원(예결위 간사)은 16일 열린 예결위 회의에서 “작년 추경과 본예산 심사할 때 공무원 증원이 큰 쟁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추경에서 국가가 월급을 주는 제2의 공무원 증원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예산이 6400억원 정도 들어와 있고 일자리 창출과 직접적인 관련이 전혀 없는 교육비라든지 이런 퍼주기 예산”이 포함됐다고 비판했다.

공무원 증원 위주의 일자리 정책과 직접적인 재정 지원에 대해서 비판적인 게 한국당의 기본 철학이다. 

민주당이 모든 항목에 대해 전액 삭감은 절대 안 된다고 못박으면 합의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결국 주말동안 민주당이 전액 삭감 건에 대해 어느정도 수용하고 야당도 기존의 삭감 리스트를 축소하는 조정과 타협이 이뤄져야 21일 본회의가 열릴 수 있다.

이날 예산안 관련 회의는 계속 열렸지만 결국 완료되지 못 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편, 이번 본회의 무산도 결국 국회의 ‘습관성 파행’이 본질적인 원인으로 판단된다.

평화당이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듯이 추경도 국민 혈세가 들어가는 것이라 당연히 제대로 심사해야 한다. 하지만 4월 초 여야는 ‘방송법·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드루킹 댓글조작’ 등으로 국회 전체를 올스톱시켰다. 한 가지 쟁점 이슈로 치열하게 갈등했지만 수많은 국가적 의제에 대해서는 나몰라라 했다. 정상화 합의가 된 뒤에도 여야 불신이 심각해서 상호 원하는 안건을 처리하기로 한 날짜를 최대한 빠른 시점으로 확정해버렸다. 

쟁점 이슈 하나에 국회의 갈등이 집중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그 이슈를 빨리 해결하기 위해 덜 신경썼던 후순위 이슈들이 밀리고 결국 그게 나중에 또 다른 파행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 어느 때보다 쟁점과 비쟁점 이슈를 분리해서 국회가 운영되도록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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