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손희정씨·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가 말하는 페미니즘과 한국 사회, 타인의 주변성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페미니즘, 작은 것에서 공감하는 페미니즘 방법론, 정치를 통해 싸우는 게 중요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는 눈물을 보였다. 

신 후보는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많은 여성들이 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고 있는 이 고통들이 너무나도 많다고 생각한다”며 “미치지 않거나 죽지 않더라도 여러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24일 19시 서울 방배동에 마련된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에서 ‘페미니스트 토크쑈(대한민국 여성으로 죽거나 미치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가 열렸다. 

신지예 후보는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사진=신지예 후보 캠프)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특히 같은 여성이지만 페미니즘에 공감하지 못 하는 여성들을 마주할 때,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가족들과 갈등할 때 어떻게 하면 될까.

패널로 참여한 페미니즘 평론가 손희정씨는 이에 대해 해법을 제시했다.

“가족은 설득이 안 되는 대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가족은 가장 설득이 안 되고 싸웠을 때 가장 피곤하다. 우리 부모님도 설득 못 했다. 어머니를 페미니스트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버리면 뭐가 가능해지냐면 아주 구체적인 작은 사건과 의제에서 공감하게 되는 그런 일이 일어난다. 100이 아니면 0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17% 정도만 접점을 찾아도 좋다. 예를 들어 생리 때문에 고통스러운 여성이 있다. 나는 사실 생리를 6개월에 한 번 하기 때문에 생리 때문에 하나도 안 불편하다. 하지만 생리 때문에 불편해하는 그 여성들의 고통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으로 묶일 수 없는 엄청난 다양한 차이가 있고 그랬을 때 이해 못 하는 어떤 여성을 페미니스트로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어떤 사건과 의제에 대해서 함께 분노하고 연대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여성을 설득하는데 에너지를 다 쓸 필요는 없다.” 

손씨는 페미니스트로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손씨는 스스로 페미니즘의 정체성을 갖게 된 배경에 대해서 “내가 내 입으로 페미니스트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에서 2001년이다. 계기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나쁜남자였다. 너무 싫고 다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영화가 왜 나쁜지 설명하는 사람들이 쓰는 언어가 페미니즘의 언어였고 영화학에서 씨네 페미니즘의 언어가 있었다. 이 영화에 대해서 납득할만한 똑똑한 설명을 해주는 사람들은 다 페미니스트였다”고 말했다. 

ebs '까칠남녀'에 출연하는 등 책과 영화를 포함 여러 분야에서 페미니스트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손희정씨. (캡처사진=ebs)
ebs '까칠남녀'에 출연하는 등 책과 영화를 포함 여러 분야에서 페미니스트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손희정씨. (캡처사진=ebs)

손씨는 “내가 경험했던 주변적 위치로서의 여성성을 통해 타인의 주변적 위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함께 살기 위해 좋은 질문을 던지고 그렇게 나의 주변성을 통해 타인의 주변성을 이해하게 해준 것이 페미니즘이었다. 그 주변적인 위치는 굉장히 다양하다”고 밝혔다.  

신 후보는 선거사무소를 열고 본격 선거운동에 들어갔는데 그 공간을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라고 이름 지었다.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신 후보의 선거사무소. 선거사무소의 이름이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다. (사진=박효영 기자) 

신 후보는 “여성, 청년, 페미니스트들이 사실상 내 캠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이런 구성은 유례가 없다. 캠프 카톡방에 올라오는 것은 주로 불법 몰카에 대한 성토 글이고 일요일이지만 경찰청에 가서 분노의 시위를 해보자고 힘을 모으기도 했다”며 무엇보다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 되겠다고 자부하고 있다.

신 후보는 1990년생 올해 29세로 대안학교에 다닐 때 성소수자, 남성과 여성이 함께 모여 자유롭게 여성에 대한 토크를 했고 이를 계기로 페미니스트가 됐다고 말했다. 중학생 때부터 민주노동당에서 두발 자유 운동 등 청소년 인권 활동을 해왔지만 손씨와 마찬가지로 성장 배경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부당함이 무척 컸다.

신 후보는 “고작 2000년대 초반인데 친 어머니가 외삼촌과 외할아버지로부터 머리채가 잡혀 길거리에 끌려 다니는 것을 봤다”며 부모의 이혼 과정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또한 신 후보는 “성차별과 성폭력은 권력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이기 때문에 나는 그래서 대학을 안 갔고 취직을 안 하고 일반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다”며 “적게 벌고 적게 일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당장 기업에 들어가서 일하고 있는 평범한 여성들이 직면한 현실은 녹록치 않다. 여러 가지 선택지가 많겠지만 신 후보가 할 수 있는 것은 “분노하고 싸우는 일밖에 없다”며 “한국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정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수정당 소속이지만 끊임없이 정치권에 문을 두드리겠다고 다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 후보는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떠올리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신 후보가 정의하는 페미니즘은 “결국 평등”이다. 

그 말인 즉슨 “전지구적인 가부장에 대한 비판적 흐름이 있고 그것을 비판해서 1등 시민이 되려고 페미니스트를 하는 게 아니다. 1등과 2등을 나누는 것 자체를 부수려고 페미니즘이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신 후보는 최선을 다해서 선거운동에 임하겠다면서도 “내가 당선되는 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한국 사회에 페미니즘의 물꼬만 트면 되고 도망치거나 미치지 않고 한국에서 싸우기 위해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손씨는 “신지예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되지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신 후보에게 최대한 많은 표를 몰아줘서 다시 서울시장이 될 그분(박원순 후보)에게 신 후보가 이만큼 득표했고 그런만큼 신 후보의 가치와 정책을 수용하게 하는 등 그가 최대한 성평등한 시정을 펼치도록 하는 것도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토크쇼에는 많은 여성들이 참석해서 공감대를 형성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날 토크쇼에는 많은 여성들이 참석해서 공감대를 형성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실제 신 후보는 “성평등 정책을 잘 마련했다”고 자평하면서 “지금 당장 돈 한 푼 안 쓰고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밝혔다. 

예컨대 신 후보는 공약으로 △성차별적 기업과 단체에 예산을 한 푼도 안 쓰는 것 △성범죄를 저지른 공무원에게 스트라이크 원아웃 제도로 즉시 업무배제와 고소고발 조치 △서울 전역에 있는 보건소와 분소를 활용한 여러 정책 시행(피임교육·내부에 젠더건강센터 설치) △성소수자의 안전한 커밍아웃 돕기 △성평등 인증제 △불법 몰카 피해 지원 등을 제시했다.

신 후보의 포부가 선거에서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할지, 향후 서울시장 당선자에게 신 후보의 성평등 정책이 얼마나 차용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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