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시인 / 수필가
박종민 시인 / 수필가

[중앙뉴스=박종민] 따사로운 서울 도심 속 어느 아파트단지 내 놀이 쉼터의 오후 풍경이 이채로웠다. 덥지도 싸늘하지도 않은 쾌적한 기온에다 적당한 나무그늘에 불어드는 미풍으로 앉아 즐기기 그만인 장소이다.

휴일도 아닌 평일 오후3시에 초등학교 3,4학년 쯤 되어 보이는 여학생 셋이서 놀이터 의자에 걸터앉아 한창 재밌게 조잘거리고 있었다. 대단위아파트단지에 들어선 휴식 공간이지만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고 비교적 한적하고 한산하여 소녀들에겐 자유를 만끽하기 최적(最適)의 장소였다.

이들은 연실 웃으며 재잘대고 소곤대며 때때로 파안대소(破顔大笑)하고 있었다. 퍽이나 여유만만하고 자유스러웠다. 모두 또래 친구로 클래스메이트인 듯 했다. 오늘날 우리학생들에게 처해진 교육환경이나 생활실태를 보노라면 그 황금과 같은 귀한시간대에 한가롭게 여유를 부릴 수가 없다.

아마도 이들 세 학생은 기말시험을 치르고 난 후인지 아니면 무슨 숙제를 끝내고 난 후의 여유로움과 한가로움에서 인지 여유가 넘쳐나고 생기발랄하며 활기에 차 있었다. 모처럼 맞이한 소소한 행복감이랄까? 뭉쳐서 친교(親交)를 나누며 얘기하는 모습이 천진난만(天眞爛漫)하며 유유자적(悠悠自適)하다. 이 얼마나 보기 드문 장면인가!     

  세 학생 모두가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부모 또는 보호자가 이들에게 채워준 통제용 자물쇠다. 움직임을 하나하나 감시감독하면서 제어하며 조금치라도 벗어나면 즉시 호출을 하고 소환을 하는 조정간이며 끄나풀이고 연결고리이다.

학생들은 각자 자주자주 스마트폰을 확인점검하며 검색하고 있었다. 맘껏 놀면서 여유를 부리고 한가로움을 누리는 게 아니라 잠깐의 시간을 부여받아 소중하기만 한 휴식시간 내에서 짬의 기회를 소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겉으론 웃고 재잘대며 소곤거리고는 있지만 내심 불안하기도 할 정황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 학생이 스마트폰을 확인하더니 황급히 일어서서 바이바이 하면서 사라져간다. 곧바로 다른 두 학생도 자리를 뜨고 있었다.

우리네의 학생들 거개가 점심식사는 학교급식으로 그런대로 때우고 저녁식사는 엄마가 싸준 도시락으로 때우면서 학교에서 학원으로 학원에서 또 다른 학원으로 빙빙 돌아가며 거치고 걸쳐서 야밤 늦게 서야만 집에 돌아오는 연속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물론 교육이 중요하다. 배움은 반드시 때가 있고 그 때와 장소에 맞춰서 익혀야하고 배워야만 한다. 그러나 여러모로 미숙한 여린 나이의 학생이 가져야할 그들만의 생활과 삶이 더 중요하다.

신체적정서적이나 지각적 감각적이나 건전하고 건강하게 잘 크고 자라나 성숙의 단계를 거쳐 나아가야 제대로 된 성인으로 성장하는 것일 게다.      

  공부해라 공부! 이제 그만하자. 아니 공부하라고 하더라도 조금만 덜 하자. 학생들에게 놀 자유를 주자. 학생이 자유롭게 놀 권리를 주자.

학생이 원하는 만큼 넉넉히 풍족하게 주진 못하더라도 웬만큼 많이 주자. 머리를 충분히 식히게 하고 정서를 느끼게 해야 하며 그러면서 자기의 자유로움 속에서 자기 스스로가 자기의 내일과 진로를 생각해보도록 여가를 넉넉하게 허락해주자.

감시의 끈을 조금 놓거나 느슨하게 해 주자. 집밖에서의 머무는 시간에 대한 학생의 행동과 태도를 믿어주자. 더러는 실수를 하더라도 다독여주고 사랑으로 격려해주자. 실패는 하고자하는 바의 미완성이 아니라 하고자하는 바의 포기라고 한단다.

한두 번의 실수와 미완성으로 실패라 여기지 말자. 성공은 출세하는 게 아니라 자기의 목적과 목표대로 일을 거두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게 성공이라고 한단다. 학생이 자녀가 성공을 거두게 하려면 여리고 어린 나이에 그들 나름대로 푹신하게 놀 수 있는 자유를 주자.

몰아세우지 말고 믿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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