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뉴스=이재인] 대한민국 사람치고 세계적인 명필인 추사, 완당 김정희 선생을 모르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니 예산 추사기념관을 찾는 발길이 지금도 줄을 잇는다.
고맙고 느꺼운 일이다. 그런데 가끔 필자에게 “현재 이 고택 전부가 초사 선생의 고택이 맞느냐”는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예산 사람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예산군 향토사 사료 조사요원으로 <예산향토 사료집>을 편찬하였고 거기에다 기념관 가까이에 있는 고등학교에 근무하였기에 질문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질문 앞에서 나는 불편한 진실에 다시 한 번 손을 가슴에 대고 엄숙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역사는 그릇되거나 왜곡시켜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사실 추사의 생가라고 일컫는 말에 필자는 그냥 웃고 만다. 그게 편한 나의 처신이다. 폐허가 된 추사 생가의 일부가 70년대 복원되면서 서울의 반가 고택을 일부 옮겨다 세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진실이 숨어 있기에 나로서는 구구한 확인 질문에 얼버무리고 만다. 이런 연유를 알고 있는 질의자한테 예산사람으로서 명쾌하게 진위를 대답해 줄 수 없어 얼굴이 붉어진다.
우리는 이름난 명찰이나 고택을 보기 위해 방문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 건물이 본래의 모습이 많이 훼절되어 있어 종종 실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건물이나마 명맥이 살아 있다는 것 자체로 위로하고 만다. 훌륭한 건물들이 이 땅에서 사라진 연유도 엄연한 팩트이다. 몽고의 침입을 비롯하여 과거의 크고 작은 사건으로 인해 유서 깊은 누정이 불태워졌다.
그리고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나머지들이 거의 소실되어 이 지경이 된 것이 오늘의 일그러진 상흔이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네 선조들의 삶의 기록인 고문서들도 쓰레기더미로 태워져 버렸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유배지에서 쓴 일기와 간찰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선생의 전전긍긍이 나를 우울하게 했다. 거기에는 선생의 적나라한 음식에 대한 간절한 욕구가 한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준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생가에 대해서는 빛과 그늘을 하늘에 묻고, 가슴에 담아 두는 게 오늘을 사는 후생의 도리이다. 그래도 나는 어쩐지 뒷말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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