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복무제 불비는 헌법 불합치, 병역 기피자 처벌은 합헌, 제도 마련의 속도 중요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최소 2020년부터 대체복무제가 마련될 수 있게 됐다.

헌법재판소는 28일 오후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마련하고 있지 않은 병역법 5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국회는 2019년 내에 법 개정을 완료해야 한다.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 여부 선고를 하기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대한민국 남성은 기본적으로 직접 군대에 가야한다. 이게 '징병제'인데.

헌법 39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돼 있고 2항은 “누구든지 병역 의무의 이행·으로 인해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밝히고 있다.

국방의 의무는 남녀 모두에게 있지만 병역법 3조 1항에 따라 한국 국적의 남성은 병역의 의무를 진다. 

병역법 5조에 따르면 ‘병역’의 종류는 △현역(병사와 간부) △예비역 △보충역 △사회복무요원 △특수 복무(공중보건의·공익법무관·산업기능요원 등) 크게 다섯 가지가 있는데 여기서 신념상 총을 들지 못 하고 군사 훈련을 받지 못 하겠다는 병역거부자는 자격을 갖고 다른 형태로 병역의 의무를 수행할 수 없다. 무조건 현역에 해당될 수밖에 없는데 그걸 거부하니 바로 감옥에 처해지는 비극이 반복됐던 것이다. 

설사 신체적 조건이 맞지 않아 사회복무요원으로 인정된다 하더라도 4주의 기초 군사훈련을 받아야 한다. 현역과는 훈련 강도가 다르긴 하다. 그래서 병역거부자는 감옥에 갈 수밖에 없었다.

헌법재판관 6명(이진성·김이수·강일원·서기석·이선애·유남석)은 현행 병역법을 두고, 병역거부자는 병역의 의무를 회피하려는 게 아닌 신념을 지키려는 것인데 대체복무를 마련하지 않고 처벌만 규정해두고 있어서 문제라고 판단했다.

사회의 소수자이지만 신념을 지켰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두는 것은 헌법에 맞지 않다는 취지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헌재의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한 판결과 대체 복무제 마련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대체복무제에 대한 준비는 어느정도 되어 있다. 사회복무요원 등 이미 다양한 병역 방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참고해 복무의 강도와 기간을 결정하면 된다. 국회에 관련 법들이 발의돼 있고 국방부도 오래 전부터 대체복무에 대한 검토를 해놓은 상태다.

흔히 한국에서는 세계 평화주의자 또는 여호와의증인 종교 신봉자 이 두 개가 대부분의 병역거부자 사례인데. 당장 따라오는 우려는 이걸 악용할 가능성이다. 정말 군대에 강제로 가기 싫지만 다른 자격조건을 갖추기는 힘들고 그렇다고 신체를 훼손하거나 국적을 통해 병역 면탈을 할 수 없으니 병역거부자 코스프레를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헌재는 그런 부작용에 대해서는 엄격한 심사와 관리로 ‘가짜 병역 기피자’들을 걸러낼 수 있다고 결론내렸다. 즉 국가가 좀 더 신경써서 병역거부자에 대한 판정과 심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한 것이다. 

헌법재판소에 '양심적 병역거부' 헌법소원과 위헌 소송을 청구했던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축하의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헌법재판소에 '양심적 병역거부' 헌법소원과 위헌 소송을 청구했던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축하의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다만 헌재는 국가 안전보장을 위한 차원인데 정당한 사유 없이 입대하지 않는 남성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을 규정한 병역법 88조 1항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우리 형법은 작위와 부작위를 처벌하고 있는데 하면 안 되는 행위를 저지르는 것도 범죄이고 해야하는 의무를 하지 않아도 범죄다. 대표적으로 세금을 내지 않으면 처벌받는 것이 부작위에 의한 범죄 규정이다. 

최근 한반도 평화 정세가 흐르고 있지만 한국은 북한과 대치 중이고 분단된 휴전 상태이기 때문에 모든 남성이 군대에 가는 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수적이고, 가지 않는 남성을 처벌하는 조항은 그래서 합헌이라는 취지다. 

한편, 이번 헌재의 판단으로 현재 전국 법원에서 진행 중인 900여개 병역거부 재판에도 지대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 대한 하급심은 헌재 결정 이전부터 무죄 선고가 하나의 흐름이었다. 물론 대법원에서는 전부 실형 선고가 내려졌지만 이번을 계기로 기존의 판례가 전원합의체로 뒤집어질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따라서 헌재가 제시한 2019년 안에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으면 법률 공백의 혼돈 상태가 될 수 있다. 병역거부자들 중 일부는 시기적으로 2020년 전에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와 국회는 서둘러 법을 개정하고 병역거부자 판정 시스템과 대체복무제를 완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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