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특활비 흥청망청 천태만상, 국회를 계기로 타 국가기관 특활비도 검증돼야

5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열린 국회 특수활동비 내역과 분석결과를 공개했다. (사진=참여연대)<br>
5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열린 국회 특수활동비 내역과 분석결과를 공개했다. (사진=참여연대)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특수활동비는 공직자의 월급이 아니다. 그런데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경남도지사 시절 이렇게 말했다.

“활동비 중에서 남은 돈은 내 집 생활비로 줄 수 있다. 그래서 그렇게 준 돈을 전부 집사람이 현금으로 모은 모양이다.” 

사실상 본인이 한나라당 원내대표 시절 수령했던 특활비를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것 즉 횡령을 시인해버렸다. 2015년 5월 홍 전 대표는 2011년 한나라당 당대표 경선에서 받은 기탁금 1억2000만원의 출처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1억원 뇌물을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었다. 그 돈의 출처가 특활비라고 해명하다가 사적 유용을 고백한 것인데 당시 신계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역시 뇌물수수 의혹과 관련해서 상임위원장 때 수령한 특활비를 자녀의 유학비로 사용해 논란이 불거졌다.

국회의원에게 특활비는 그렇게 깜깜이로 쓰이는 ‘공돈’이나 다름없다. 흔히 사기업은 물론이고 작은 동호회에서조차 회비를 영수증 처리하는데 국민 세금이 이렇게 쓰여도 되는 것인지 비난가능성이 매우 강할 수밖에 없다. 

참여연대는 2011년부터 이 문제를 제기하다가 2015년 위와 같은 명백한 의혹을 포착하고 법원에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대법원에서까지 참여연대가 승소했지만 국회 사무처는 그동안 특활비 집행내역이 공개되면 △의정활동과 공정한 업무수행에 지장을 초래 △국방과 외교 분야의 경우 국익 침해가 우려된다는 명분으로 저항해왔다.

그러나 대법원의 결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국회 사무처가 6월29일 공개한 2011년~2013년 국회 특활비 지출결의서를 분석봤을 때 “실질적으로 위축될 수 있는 의정활동이 무엇인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참여연대의 결론이다. 

참여연대는 제공받은 사용내역을 분석한 결과 국회 특활비가 폐지돼야 하는 이유를 7가지 제시했다. (자료=참여연대)

더구나 국회의원의 본질적인 활동으로 △법률안 처리 △예결산 심사 △국정감사와 국정조사 △상임위원회 활동 등은 기본적으로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하고 마찬가지로 여기에 투입된 예산 역시 철저히 검증돼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미 이런 활동을 보조받기 위해 국회의원은 높은 급여(연봉 1억3796만원)를 수령하고 있고 이밖에도 입법 활동비·정근수당·명절휴가비·관리업무수당·급식비·유류비·차량 유지비·통신비도 받고 있다. 의원 1인마다 보좌진 7명을 자체적으로 뽑고 이들에 대한 급여 3억8000만원 가량도 국고로 지급된다. 흔히 국회의원의 특권은 200개가 넘는다고들 한다. 여기에 원내 정당일 경우 정당보조금이 따로 나오고 해당 의원이 상임위원장이면 따로 정책 연구비를 받는다. 

또한 국회의원은 일반 시민들로부터 1억5000만원까지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고 개인당 10만원까지 세액공제 되기 때문에 그 비용도 국고로 지출된다.

이렇게 공적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뒷받침이 잘 돼 있는데 영수증을 청구하지 않아도 되는 특활비까지 지급된다는 것에 대해 참여연대는 “중대한 국익 때문이 아니라 국회 혹은 국회의원의 중대한 이익”을 위한 돈이라고 규정했다.

저항 끝에 대법원의 공개 결정에 따라 꾸역꾸역 특활비 내역을 공개한 국회 사무처. (사진=연합뉴스 제공)
저항 끝에 대법원의 공개 결정에 따라 꾸역꾸역 특활비 내역을 공개한 국회 사무처. (사진=연합뉴스 제공)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5일 방송된 jtbc <썰전>에서 “(일부 국회의원들이) 특활비가 꼭 필요한 것처럼 얘기하는데 일반적인 판공비는 업무추진비란 이름으로 다 처리가 된다. 그 다음에 기타 운영비도 있고 특정업무경비 등 여러 항목들이 있다. 좀 귀찮을 따름이지 영수증 첨부하고 그 돈을 진짜 배우자한테 갖다줄 게 아니라면 그게 꼭 필요한 운영비라면 예산을 청구해서 배정받아서 제대로 쓰고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결산 심사를 받으면 된다. 그런데 기밀로 해서 몰래 몰래 쓰고 어디 썼는지 밝힐 수 없는 그런 용도가 과연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현재 정의당과 바른미래당은 국회 특활비를 폐지해야 한다고 당론을 정했다. 

노 원내대표는 어디에 사용했는지 공개된 특활비는 더 이상 특활비가 아니라며 대법원이 국회의 특활비를 공개하라고 결정한 것은 국회에 특활비가 필요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실제 노 원내대표는 평화와정의(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의 공동교섭단체) 원내대표로서 특활비 수령을 거부했지만 국회 사무처에서 안 받을 수 없다고 하자 일단 받아보고 이를 다시 반납했다. 

바른미래당은 이미 하태경 의원이 국회 특활비 폐지 법안을 발의한 상태이고 김관영 원내대표도 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국회에서의 특활비 문제가 비단 국회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고 다른 기관에도 정보공개 청구가 있을 것”이라며 “국회가 먼저 선제적으로 사용내역을 분석하고 특활비 중에 영수증으로 쓸 수 있는 부분은 과감하고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런 범위를 최대한 넓히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결산심사 때 (전체 국가기관의 특활비) 내역을 충분히 파악하고 내년 예산 때 반영해서 특활비 규모를 과감히 줄여나가는데 국회가 먼저 (폐지함으로써)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출결의서를 꼼꼼히 살펴봐도 국회 특활비의 목적을 인정하기 어렵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2017년 전체 국가기관의 특활비 규모는 8938억원으로 이중 절반이 넘는 4931억원이 국가정보원에 할당됐다. 특활비에 대한 문제제기가 잇따르자 2018년 특활비를 편성할 때 국정원을 제외한 19개 기관의 특활비는 총 3217억6800만원으로 작년 대비 718억원이 줄었다.

△대통령 비서실 및 국가안보실(96억5000만원) △대통령 경호처(85억원) △국회(65억7200만원) △대법원(2억5600만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7100만원) △감사원(30억9600만원) △국무조정실 및 국무총리비서실(9억8400만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7억5000만원) △외교부(7억1300만원) △통일부(21억4400만원) △법무부(237억7900만원) △국방부(1479억9200만원) △공정거래위원회(3500만원) △국민권익위원회(3억8000만원) △국세청(43억5900만원) △관세청(5억6400만원) △방위사업청(1억5200만원) △경찰청(1030억900만원) △해양경찰청(87억6200만원)

올해 국정원 특활비는 작년에 비해 감액되지 않았지만(2017년과 동일) 원래 기획재정부에 요청한 원안 금액보다는 680억원이나 줄었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의원들마저 아무리 각종 기밀활동이 필수적인 국정원이라 하더라도 여러 일탈 행위(민간인 사찰과 불법 댓글활동 등)가 문제된 마당에 특활비를 원안대로 통과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를 청와대에 상납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병기 전 국정원장이 6월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은 뒤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남용된 특활비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올해 국회에 편성된 특활비도 65억7200만원으로 작년에 비해 감액되긴 했다. 그러나 2011년~2013년 특활비 사용 양태를 보면 가관이다. 국회 특활비는 교섭단체 원내대표, 상임위원회 위원장, 그리고 각종 특별위원회 위원장에게 지급된다. 원내대표는 실제 공적으로 의미있는 특수활동을 했는지와 상관없이 무조건 월 평균 6000만원을 받고 상임위원장도 위원회의 활동 실적과 무관하게 매월 600만원씩 수령한다.

원내대표가 수령받는 특활비의 종류는 크게 정책지원비·일반 활동비·회기별 활동비 3가지나 된다. 

참여연대는 “동일한 명목으로 월별 회기별로 특활비가 지출되고 있고 (원내대표들은) 이를 정기적으로 소속 정당 의원들에게 나눠먹기식으로 분배해오고 있다. 심지어 지급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유사한 항목들을 새로 만들고 있다. 중복 지급되는 예산 낭비의 대표적 사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특활비를 사용해야 할 구체적인 사유나 상황이 생긴 것이 아님에도 우선 지급하고 알아서 쓰도록 하는 것은 특활비의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법사위원장을 예로 들면 따로 공식 지급되는 활동비 외에 매달 1000만원에 달하는 특활비를 더 받아 다른 상임위원장에 비해 규모가 더 크다. 법사위원장은 이 돈을 여야 법사위 소속 간사나 의원들 그리고 수석 전문위원들에게 나눠준다.

참여연대는 “상임위 활동에 예산이 필요하면 정책개발비 또는 특정업무경비로 청구해서 사용하고 사용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조언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윤리특별위원회의 경우를 보면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을 발견할 수 없다. 예결위는 상설 특위이긴 하지만 국회의 예산 심사 시즌인 하반기에 주로 활동하고 그 외에는 거의 회의가 열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예결위원장은 매달 600만원씩 특활비를 받아갔다. 윤리위도 국회의원의 자격을 심사하고 징계하는 상임위의 특성상 거의 드물게 회의가 개최되는데도 매달 600만원이 지급됐다. 수많은 국가기관의 예산 사용내역을 수시로 점검하기 위해 밤낮없이 회의를 자주 열었다면 특활비 지급이 아깝지 않을 것이고,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국회의원들의 자격을 따져묻는 청문회성 회의를 매일 개최했다면 특활비를 더 지급해도 욕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박지원 평화당 의원은 가장 고액으로 특활비를 수령했는데 그걸 투명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지 폐지하는 것은 옳지 못 하다고 주장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의원들의 일반적인 해외 출장이나 국회의장이 외국 의회의 초청에 응할 때도 별도의 특활비가 한 번에 수 천만원씩 지급됐다. 박희태 전 의장은 다섯 번에 걸쳐 28만9000달러(3억2136만원)를 받았고 강창희 전 의장은 여섯 번에 걸쳐 25만8000달러(2억8689만원)를 받았다. 

한반도 평화무드 시기에 미국의 의회가 북한을 의심하는 분위기가 강한 요즘 분명 ‘의원 외교’는 필요하다. 하지만 아무런 감시와 통제없는 특활비를 따로 지급할 게 아니라 버금가는 규모로 국비를 지원하더라도 투명한 비용 처리는 필수적이다. 국익의 관점에서 꼭 필요한 홍보 활동을 위해 해외의 주요인사를 만나거나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은 좋다. 그러면 사전에 예상되는 비용을 근거와 함께 청구하고 사후 사용내역을 제출해 검증받는 것이 적절하다. 

또한 국회 사무처는 의원 연구단체들에 특활비를 평균 5억원씩 책정해서 지급했는데 우열을 가려서 평가한 뒤 차등 지급하는 형태였다. 상식적으로 의원들이 학계와 연계해 분석하고 연구해서 토론회를 주최하는 활동이 무슨 기밀유지가 필요한 특수활동이라고 볼 수 있을까.

궁극적으로 여러 행태들을 종합해봤을 때 참여연대는 “국회는 특활비 취지에 전혀 맞지 않게 돈을 사용했고 (당연히 해야하는) 본연의 활동을 하는 것임에도 각종 항목을 만들어 마치 월급이나 수당처럼 악용했다. 상임위 활동이 없는 기간에도 꼬박꼬박 돈을 챙겼고 무엇보다 국회에서의 활동은 국민에게 공개되고 평가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특활비를 사용해야 할 정당한 근거가 없다. 그 어떤 관리도 통제도 받지 않은채 국민 세금을 낭비하는 관행은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불요불급한 곳에 돈을 맘대로 써도 되는 특활비는 어찌보면 ‘합법적 횡령’이라고 까지 불릴 수 있을 것이다.

국회의 특활비 폐지에 앞장서고 있는 노 원내대표. (캡처사진=jtbc)

한편, 참여연대는 국회에 2014년~2018년 사용된 특활비 집행 내역을 공개해달라고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하지만 국회는 대법원의 결정 취지를 무시하고 또 거부했다. 참여연대는 다시 한 번 지지부진한 소송 절차를 밟을 예정인데 특활비 폐지 목소리가 내부에서 나오고 있는 만큼 자정 활동에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노 원내대표는 “정의당은 이게 뭐 우리만 깨끗하다. 이런 걸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특활비를 없애는 건 국민의 요구이고 국회같은 곳은 없애고 정부에선 꼭 필요한 용도로만 쓰라는 것이고 국회가 예산 편성의 칼을 쥐고 있는 부서 아닌가. 자기 건 그대로 쓰면서 다른 부처 특활비에 손을 대는 건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더불어 참여연대는 감사원에게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수사에 쓰이는 비용의 관점이라는 특활비 편성 목적에 맞게 집행되고 있는지 즉각 감사에 착수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합당한 처분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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