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삼성공장 준공식에서 5분간 접견, 평범한 덕담 건네, 부담이 될텐데 직접 만난 이유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묘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최고 재벌기업의 오너가 만나는 일은 흔하지만 이번에는 왠지 모르게 우여곡절 끝에 만나는 것 같았다.

인도 일정을 수행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9일 뉴델리 우타르프라데시 주에 있는 삼성전자 노이다 공장 준공식에 참석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났다. 준공식에 참석하는 일이 주목받은 것도 두 사람의 만남 때문이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현대와 LG 사업장을 찾은 적이 있지만 지금까지 삼성을 방문하지 않았었다. 

인도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노이다시 삼성전자 제2공장 준공식에 도착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행사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인도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노이다시 삼성전자 제2공장 준공식에 도착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행사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2017년 2월17일 이 부회장이 구속되자 당시 유력한 대선 후보였던 문 대통령은 “우리 사회가 그분의 구속을 요구하게 됐으니 참으로 착잡한 일이다. 삼성도 이제 전근대적인 경영을 버리고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취임 이후 문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 삼성을 경계했던 배경에도 아직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뇌물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라 부담스러웠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됐다. 처음으로 삼성 관련 일정에 참석하는 것도 이 부회장을 만나는 것도 주목될 수밖에 없었다.

이 부회장은 준공식장에 도착한 모디 인도 총리를 먼저 맞이했고 곧이어 문 대통령이 도착하자 허리를 90도로 숙여 수 차례 인사했다. 문 대통령과 모디 총리가 행사장으로 걸어갈 때 이 부회장은 두 사람을 안내했다. 문 대통령이 축사할 때 이 부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의 표시를 했고 다 마치자 일어서서 박수를 보냈다. 

문 대통령이 준공식에 참석해 휴대전화 생산라인을 둘러 본 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테이프 커팅을 할 때 이 부회장은 문 대통령에게 뒤에 있는 LED 전광판을 가리켰다. 전광판이 열리는 곳으로 들어가면 내부 생산라인 견학을 위한 동선이 있는데 이를 안내한 것이다. 이 부회장은 문 대통령이 공장에서 생산된 첫 번째 갤럭시 폰을 체험해볼 때도 S펜이 어디있는지 알려주는 등 가이드 역할을 했다. 문 대통령은 S펜으로 전자 서명을 한 뒤 이 부회장을 보고 환하게 웃었고 간단한 대화를 하며 악수를 청했다. 

문 대통령은 준공식장에 40분 간 머물렀는데 공장의 대기실로 이동해서 이 부회장과 홍현칠 삼성전자 서남아담당 부사장과 5분동안 짧게 대화를 나눴다. 문 대통령은 ”준공을 축하한다. 인도가 고속 경제성장을 하는데 삼성이 큰 역할을 해줘 고맙다. 한국에서도 더 많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고 이 부회장은 ”대통령께서 멀리까지 찾아주셔서 여기 직원들에게 큰 힘이 됐다. 감사하고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문 대통령이 테이프 커팅을 마친 뒤 이 부회장의 안내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문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 삼성전자 스마트폰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삼성전자가 6억5000만 달러(7228억원)를 투자한 노이다 공장은 인도 최대 규모의 스마트폰 생산 기지이고 애플과 화웨이 등 글로벌 경쟁업체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건설됐다. 

일자리 대통령을 표방했지만 갈수록 경제지표가 악화되는 마당에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더불어 문재인 정부 경제 기조의 한 축인 혁신성장 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의도인걸까. 

청와대 관계자는 인도 현지에서 기자들에게 이번 만남을 두고 “정치적 해석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부는 새로운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는 일관된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 인도 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1등이지만 중국계 기업들과 시장점유율 1%를 두고 싸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추혜선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주역인 이 부회장이 납득하기 어려운 집행유예 판결로 풀려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문 대통령의 이같은 행보는 부적절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무엇보다 촛불 시민들의 기대를 안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지금 시점에 이 부회장을 삼성의 오너로 만난다는 것은 정권 차원에서 면죄부를 준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한 듯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가 집권 1년차가 지나면서 노동과 경제정책에서 우클릭을 하고 있다는 우려가 이미 도처에서 터져나오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번 만남은 애초부터 이뤄지지 않았어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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