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임위 관련 문제들과 인사청문회 일정 합의, 한국당의 이득, 법사위의 문제, 국회가 할 일은 산더미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국가 의전서열 2위인 국회의장이 공석이었고 헌법기관인 국회가 공백 상태였는데 다시 가동될 수 있게 됐다. 

국회의장 1석과 국회부의장 2석 그리고 18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놓고 130석의 더불어민주당과 112석의 자유한국당이 1부 리그에서 치열하게 겨뤘고, 30석의 바른미래당과 20석의 평화와정의(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의 공동교섭단체)는 2부 리그에서 경쟁했다.  

원내 4개 교섭단체가 10일 18시 20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과 의사일정 협상에서 대타협을 이뤘다. 

10일 18시가 넘은 시각 국회에서 20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 협상을 타결한 교섭단체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내용을 브리핑하고 있다. 왼쪽부터 평화와정의 장병완,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자유한국당 김성태,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 뒤엔 왼쪽부터 한국당 윤제옥, 민주당 진선미, 바른미래당 유의동 원내수석부대표. 윤소하 평화와정의 수석부대표는 잠깐 자리를 비웠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야는 우선적으로 국회의장단을 채우기 위해 13일 10시 본회의를 여는 것으로 시작해서 26일까지 회기를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상임위원장 배분을 비롯 각종 처리해야 할 상임위 관련 문제도 합의했고 이를 완료하기 위한 본회의는 16일 14시에 열린다. 

먼저 주요 결정사항을 살펴보면.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교육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위원회로 분리 △윤리특별위원회는 비상설특위로 변경 △2개 이상의 부처를 소관으로 하는 상임위는 복수 법안심사소위원회를 두고 위원은 여야 동수로 구성 △법안소위 위원장은 교섭단체 간 의석 수 비율로 배분 △비상설특위의 위원은 여야 동수 18인으로 하고 활동기간은 2018년 12월31일까지로 함 △인사청문특위는 4개 교섭단체별 의석수대로 1회 순회하고 이후에는 민주당과 한국당이 교대로 맡음 △국정조사특위는 모든 교섭단체가 의석수대로 교대로 맡음

당장 치러야 할 국가기관 주요인사 인사청문회와 임명 문제도 타결됐다. 

△대법관 후보자 3인(김선수·이동원·노정희)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23일~25일까지 실시하고 임명동의안 표결을 위한 본회의는 26일 10시에 개최 △경찰청장 후보자(민갑룡)에 대한 인사청문요청안은 행정안전위원회에서 23일까지 심사 완료 △국가인권위원회 및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은 26일 10시 본회의에서 선출 

여야 합의로 배분된 상임위. 상설과 비상설 24개. (자료=더불어민주당 제공)

주목됐던 상임위 배정 문제에서 민주당의 통큰 양보가 있었다. 한국당이 권한이 많은 알짜 상임위원장 자리를 많이 가져갔기 때문이다. 일단 여야는 상설 상임위(18개)와 비상설 특별 상임위(6개)를 합계 24개로 설정하는데 합의했다. 여기에 국회의장단 3석까지 더하면 총 27개의 자리다.

△민주당 11개(국회의장·운영위·기획재정위·정무위·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국방위·여성가족위·행정안전위·문화체육관광위·남북경제협력특위·사법개혁특위)
△한국당 10개(국회부의장·법제사법위·국토교통위·예산결산특위·외교통일위·보건복지위·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환경노동위)
△바른미래당 4개(국회부의장·교육위·정보위·4차산업혁명특위)
△평화와정의 2개(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정치개혁특위)

한국당은 원구성 협상의 최대 관건이었던 법사위원장을 차지했고 경제 빅5 ‘국토교통위·예결위·보건복지위·산자위·환노위’를 확보하는 기염을 토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투기 방지형 부동산 정책을 강력히 견제할 수 있게 됐다. 예결위를 통해 각종 재정 투입까지 제동을 걸 수 있게 됐다. 특히 보수정당으로서 자유시장과 기업의 가치를 중시하는 한국당이 환노위를 가져갔다는 것은 눈에 띈다. 진보정당인 정의당이 공개적으로 원하던 그 자리다.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기본급 외 각종 수당을 산입범위에 포함시키는 최저임금법 등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상황이라 민주당 입장에서 책임의 무게를 한국당에 일정 정도 전가할 수 있다는 이해관계가 작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외통위도 차지했는데 문재인 정부의 최대 역점 사안인 대북 협력과 한반도 대전환 국면에서 어떤 목소리를 낼지도 주목된다.

당초 한국당은 원구성 협상에서 에너지가 약화된 것으로 판단됐다. 홍준표 전 대표의 일방적인 당 운영 그리고 민심과 동떨어진 언행도 있지만 국회 운영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의 이미지가 지방선거 참패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어서 새로운 상임위를 요구할 명분이 약해졌다고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형국을 반전시키는데 성공했다.

하루 빨리 국회를 정상화하기 위해서 홍영표 원내대표가 김성태 원내대표에게 통크게 양보를 해준 것으로 평가된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법사위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번 후반기 원구성 협상의 최대 난제이자 쟁점으로 작용했다. 

국회법 86조 1항에 따르면 “상임위에서 법률안의 심사를 마치거나 입안을 했을 때 법사위에 회부해 체계와 자구에 대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고 명시됐고 이를 근거로 사실상의 국회 내의 국회 즉 ‘상원’ 역할을 관행적으로 자처했던 곳이 법사위다. 법률에 따르면 체계와 자구만 심사해야지 법안 내용에 이의를 제기해 통과를 저지할 권한은 없다(국회법 86조 2~4항에 법사위에서의 심사가 지지부진하고 법안이 오래 계류되면 바로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는 근거를 명시). 심지어 각 상임위에 배정된 전문위원들과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이미 법안에 대한 체계와 자구 심사를 진행하고 법사위에 상정하기 때문에 1항의 내용도 불필요하다. 하지만 어찌됐든 법사위원장의 승인이 없으면 본회의로 가는 길목은 막힐 수밖에 없고 이게 관행으로 통했다. 이 때문에 해당 상임위에서 여야 의원들이 합의해서 법안을 법사위에 올려도 정당의 원내지도부가 당론으로 거부하면 얼마든지 법사위원장은 그 명을 받아 법안 통과를 지연시킬 수 있었다. 

법사위의 ‘제1소위’는 원래 소관 부처인 법무부와 사법 관련 법률들을 심사하지만 ‘제2소위’는 타 상임위의 법률들에 감놔라 배놔라하는 월권을 행사해왔다. 한국당을 제외한 3개 교섭단체는 모두 이 제2소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했다. 이미 법사위원장을 가져갔지만 원구성 협상 국면에서 한국당은 법사위원장을 맡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우리가 한 번 더 맡게 되면 합리적으로 잘 해볼게’라는 식이었다.

9일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원구성 협상의 쟁점을 소상히 설명한 평화와정의 원내 지도부. 가운데에 장병완 원내대표와 오른쪽 윤소하 원내수석부대표. (사진=박효영 기자)

9일 오후 원구성 협상이 예정대로 타결되지 않자 평화와정의 소속 장병완 원내대표와 윤소하 원내수석부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교섭단체 모두가 법사위의 제도 개선에 공감했지만 한국당은 유보적이었다고 증언했다. 특히 정의당과 민주당은 전반기 국회에서 그동안 한국당 소속 권성동 전 법사위원장이 강원랜드 채용 비리에 휘말려 검찰에 불려나가는 것을 비롯 여러 법사위적 횡포를 일삼았기 때문에 후반기에는 한국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으면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었다.     

권성동 법사위원장은 강원랜드 채용 비리와 맞물려 문제적 법사위를 만든 장본인이 되어 버렸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법사위의 월권은 또 있다. 모든 상임위에서 1차 심사를 마친 법률들은 곧 해당 정부부처의 장관들이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사안이고 물론 대통령까지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통상 ‘상임위 법안소위 →상임위 전체회의 →법사위 →본회의 →국무회의 →대통령 공포’로 이어지는 입법 절차에서 첫 단계인 법안소위의 끝장토론 뒤 만장일치 합의만 이뤄지면 그 다음은 프리패스가 되는 것이 관행이다. 하지만 주목을 받는 법안의 경우 법사위에서 야당 소속 법사위원장과 간사가 딴지를 걸어 장관들을 불러서 따져 물을 수 있다. 이를 명분으로 뜬금없는 현안 질의를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유시민 작가는 법사위원장의 “갑질”에 장관들도 허리를 숙일 수밖에 없다고 증언한 적이 있었다. 

유신체제였던 1973년 9대 국회부터 18대·19대(2008년~2016년 민주당 계열 소속 의원이 맡음)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법사위원장은 전부 한국당 계열 정당(민주공화당·민주정의당·신한국당·한나라당) 소속 17명의 전직 의원들이 맡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1997년 최초로 야당이 된 한나라당이 강력 주장해서 형성된 관행은 집권여당이 의석수로 법안을 밀어붙이는 날치기를 방지하기 위해 제1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게 됐다. 한국당은 이 명분을 강조해서 결국 법사위원장을 차지했지만 헌정 체제에서 법사위원장의 월권은 대부분 한국당이 자행했던 게 사실이다.

결국 이번 원구성 협상에서 한국당이 법사위원장을 맡고 운영위 산하 운영개선소위를 구성해 법사위의 제도 개선을 논의하기로 하는 등 절충적 타협이 이뤄지게 됐다. 개선소위에서는 최근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특수활동비 문제도 다루기로 했다. 

한국당 외의 정당에서 법사위원장을 맡고 제도 개선까지 관철시키면 속 편할지 몰라도, 현행 국회 선진화법 체제에서 한국당이 의석수 파워로 보이콧하기로 맘만 먹으면 상임위 법안소위에서부터 모든 법률안을 저지시킬 수 있고 그러면 이른바 개혁입법 추진은 더욱 소원해지기 때문에 원만하게 타협이 이뤄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에 발표된 합의문.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편, 원구성 협상은 타결됐지만 당장 국회가 처리해야 할 법률들과 이슈는 산더미다. 

△개헌 논의 △선거제도 개선을 위한 논의 △선거권 연령하향 문제에서 한국당의 변화 주목 △판문점 선언 지지 결의안 문제 △각종 미투 관련 법률안 처리 △국회 선진화법 개정 논의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병역법 개정 △방송법 개정 논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반영하기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 논의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권 폐지 등 국정원법 개정 논의 △문재인 정부의 개각으로 몰려올 장관 인사청문회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미세먼지 저감법 △양성평등기본법 △규제혁신 5법(행정규제기본법·금융혁신지원특별법·산업용합촉진법·정보통신융합법·지역특구법) △규제프리존특별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파견근로자보호법 

이밖에도 처리되지 못 하고 계류 중인 민생 법률들만 9000여건에 이르고 있다. 다시 말해 여야가 언제든지 국회를 올스톱시킬 경색거리들은 매우 많다. 20대 국회가 후반기에서 어떤 일을 어떻게 할지 국민이 철저히 감시하고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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