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원론적 폐지 합의, 상임위와 국회의장단은 절반 유지, 특활비로 쓰이는 비용은 기존 제도로 지원 가능, 특활비는 감축 추세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특수활동비는 말 그대로 기밀수집·첩보활동 등 특수 활동을 위해 공무원에게 편성되는 별도의 국민 세금이다. 

최근 국회의원에게 그런 특활비가 필요한지에 대한 강한 의문이 제기됐고 참여연대가 소송을 걸어 어쩔 수 없이 공개된 국회 특활비 집행 내역을 보면 그 필요성이 전혀 인정되기 어려웠다.

국회 특활비는 그렇게 깜깜이로 쓰이는 ‘공돈’이나 다름없다. 흔히 사기업은 물론이고 작은 동호회에서조차 회비를 영수증 처리하는데 국민 세금이 이렇게 쓰여도 되는 것인지 비난가능성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거대 양당(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은 13일 기본적으로 국회 특활비를 폐지하기로 합의했다.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은 이미 국회 특활비 폐지를 당론으로 내걸었지만 양당은 일종의 사용내역 양성화를 명분으로 존치에 합의했다가 국민 여론에 떠밀려 폐지하기로 한 것이다.

이날 국회의장 주재로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가 만나 국회 특활비 폐지를 공식화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상임위원장과 국회의장 및 부의장을 독점하는 양당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특활비를 폐지하기 망설여지는 측면이 있긴 하다.

현재 국회 특활비는 교섭단체 원내대표단·국회의장단·상임위원장·사무처에게 지급되고 있다. 양당은 이중 첫 번째만 폐지하고 나머지는 감액해서 존치하는 제도 개선안에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완벽한 폐지가 아닌 것이다. 물론 오는 16일 구체적인 특활비 제도개선 방안 및 올해 국회에 편성된 62억원의 특활비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서 발표할 예정이라 그걸 지켜볼 필요가 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로 열린 주례회동에서 “특활비 문제에 여야 간 완전히 폐지하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특활비 폐지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기득권적이고 정의롭지 못 한 제도의 일면을 걷어낼 수 있게 돼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앞으로 국가정보원, 청와대, 검찰, 경찰 등 특활비를 주로 사용하는 기관들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제도 개선을 이뤄내는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교섭단체 원내대표에 배정된 특활비를 폐지하고 국회의장단과 상임위에 지급됐던 특활비를 반으로 줄이고 양성화하는 대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당을 초월한 의원 외교 등 특활비가 쓰일 곳이 있다는 목소리 때문이다.

보통 국회의원의 본질적인 활동으로 △법률안 처리 △예결산 심사 △국정감사와 국정조사 △상임위원회 업무 등은 기본적으로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하고 마찬가지로 여기에 투입된 예산 역시 철저히 검증돼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7월9일 오전 서울 국회 정문 앞에서 참여연대 회원들이 국회 특수활동비 폐지와 지출내역 공개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미 이런 활동을 보조받기 위해 국회의원은 높은 급여(연봉 1억3796만원)를 수령하고 있고 이밖에도 입법 활동비·정근수당·명절휴가비·관리업무수당·급식비·유류비·차량 유지비·통신비도 받고 있다. 의원 1인마다 보좌진 7명을 자체적으로 뽑고 이들에 대한 급여 3억8000만원 가량도 국고로 지급된다. 흔히 국회의원의 특권은 200개가 넘는다고들 한다. 여기에 원내 정당일 경우 정당보조금이 따로 나오고 해당 의원이 상임위원장이면 따로 정책 연구비를 받는다. 

또한 국회의원은 일반 시민들로부터 1억5000만원까지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고 개인당 10만원까지 세액공제 되기 때문에 그 비용도 국고로 지출된다.

참여연대는 국회 특수활동비 폐지와 지출내역 공개 촉구 관련 가장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사진=참여연대)
참여연대는 국회 특수활동비 폐지와 지출내역 공개 촉구 관련 가장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사진=참여연대)

故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7월5일 방송된 jtbc <썰전>에서 “(일부 국회의원들이) 특활비가 꼭 필요한 것처럼 얘기하는데 일반적인 판공비는 업무추진비란 이름으로 다 처리가 된다. 그 다음에 기타 운영비도 있고 특정업무경비 등 여러 항목들이 있다. 좀 귀찮을 따름이지 영수증 첨부하고 그 돈을 진짜 배우자한테 갖다줄 게 아니라면 그게 꼭 필요한 운영비라면 예산을 청구해서 배정받아서 제대로 쓰고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결산 심사를 받으면 된다. 그런데 기밀로 해서 몰래 몰래 쓰고 어디 썼는지 밝힐 수 없는 그런 용도가 과연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의원 외교가 특활비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차치하고 대법원에서 국회 특활비 집행 내역을 공개하라고 결정한 것은 국회 차원의 특활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노 원내대표도 이런 점을 거듭 강조했다.

예컨대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외국의 법원 조직 운용 사례를 비교분석하기 위해 연구 용역을 내거나 해외 연수를 간다고 치면 그 비용을 따로 청구하면 얼마든지 지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필요에 따른 추가 청구를 하는 게 아닌 기본적으로 나오는 각종 지원비 외에 또 다른 특활비 명목의 돈이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이 있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내고 “자녀 유학비나 격려금 등으로 사용해왔던 국회 특활비를 비목만 전환해서 그대로 쓰겠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이미 국회 예산에는 교섭단체와 상임위원회 입법활동, 의회 외교와 관련한 업무추진비 등이 책정돼 있다”며 “이들 예산을 증액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특활비를 어떤 활동에 사용해왔는지부터 공개하고 의정 활동을 위한 분명하고 타당한 것인지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회는 현재 진행 중인 20대 현역 국회의원의 특활비 지급 내역 공개 소송 항소를 취하하고 즉각 공개해야 한다”며 “법원이 재차 국회 특활비는 비공개 대상이 아니라고 판결하고 이미 국회가 특수활동비 폐지에 합의한 상황에서 지급 내역 비공개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이번 특활비 폐지 합의는 국회 뿐 아니라 다른 정부기관의 불필요한 특수활동비 사용과 예산낭비를 바로잡는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7월1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특수하지 않은 특수활동비 폐지인가? 개혁인가?'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2017년 전체 국가기관의 특활비 규모는 8938억원으로 이중 절반이 넘는 4931억원이 국가정보원에 할당됐다. 국정원은 조직 자체가 기밀 활동으로 가득 차 있어서 특활비가 양해됐었는데 최근 전직 국정원장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상납해 사법적 단죄를 받았고 그런만큼 비판을 많이 받고 있다. 

국정원을 비롯 사정기관(검찰청·경찰청·국세청·감사원)에 특활비가 주로 편성됐지만 문제제기가 잇따르자 갈수록 특활비 규모는 줄고 있다. 2018년 19개 기관의 특활비는 총 3217억6800만원으로 작년 대비 718억원이 줄었다.

△대통령 비서실 및 국가안보실(96억5000만원) △대통령 경호처(85억원) △국회(65억7200만원) △대법원(2억5600만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7100만원) △감사원(30억9600만원) △국무조정실 및 국무총리비서실(9억8400만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7억5000만원) △외교부(7억1300만원) △통일부(21억4400만원) △법무부(237억7900만원) △국방부(1479억9200만원) △공정거래위원회(3500만원) △국민권익위원회(3억8000만원) △국세청(43억5900만원) △관세청(5억6400만원) △방위사업청(1억5200만원) △경찰청(1030억900만원) △해양경찰청(87억6200만원)

한편, 이날 문 의장은 국외활동심사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는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의 낙마 원인이 됐던 피감기관의 돈으로 국회의원이 해외 출장을 다녀오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으로 인한 것이다. 

자문위는 장철균 전 스위스 대사를 위원장으로 하태윤 전 오사카 총영사·진선미 의원·권칠승 의원·윤재옥 의원·김순례 의원·권은희 의원 등 총 7명으로 구성됐고 16일 첫 회의를 열고 여러 해외 출장 사례를 심사하기로 했다. 현역 의원들이 5명이나 껴있어 제대로 된 심사가 이뤄질 수 있을지 우려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