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보수 대통령 첫 참배, 야당에는 훈훈한 분위기 속 여러 요구사항 전달받아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버럭, 호통, 강성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경선 과정에서도 관련해서 비판을 받았다. 

당대표로서 첫 날 행보는 그런 이미지를 상쇄하기 위해 짜여졌다.

이 대표는 27일 아주 바쁘게 움직였다. 원내 5당의 대표와 원내대표를 모두 만났다. 흔히 신임 대표와 원내대표가 되면 각각 상대 정당의 대표와 원내대표만 만나는데 이 대표는 모두 만난 것이다.

이 대표는 현충원에서 김대중, 김영삼,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모두를 참배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8시 현충원 참배 △10시 최고위원회의 △10시45분 문희상 국회의장 예방 △11시10분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예방 △11시반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 예방 △13시반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 예방 △14시45분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예방 △15시20분 이정미 정의당 대표 예방 △15시반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 예방 △16시50분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와 장병완 원내대표 예방   

역대 민주당 대표들은 서울 국립 현충원에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참배한 적이 있었지만 이 대표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본인의 삶에서 두 전직 대통령을 참배한 적은 처음이었다. 2017년 4월31일 이 대표는 당시 문재인 대선 후보의 유세를 하면서 “극우 보수세력들이 다시는 이 나라를 농단하지 못 하게 철저히 궤멸시켜야 한다”고 발언했다. 한국당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읽혀지는데 그곳에서 보수의 정체성으로 받들고자 하는 두 전직 대통령이 이승만과 박정희다. 

특히 이 대표는 박정희 정부가 유신을 선포했을 때 처음으로 사회의식을 가졌고 학생운동에 나섰다. 전두환 정부 때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감옥에 가기도 했다. 악감정이 많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현충원에서 “정부수립 70주년이고 분단 70년을 살아왔다. 이제 분단시대를 마감하고 평화와 공존의 시대로 가는 길목에 있다. 그런 차원에서 두 분에게 예의를 표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참배했다”고 밝혔다.  

첫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한 이해찬 대표. (사진=연합뉴스 제공)
첫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한 이해찬 대표. (사진=연합뉴스 제공)

국회로 돌아와 첫 최고위회의에서 이 대표는 “선거기간 동안 당원과 국민 여러분께 약속드린 공약부터 차분히 이행하고 점검해 나가도록 하겠다. 나와 최고위원들의 공약 뿐 아니라 같이 함께 한 송영길·김진표 후보, 황명선·박정·유승희 후보의 공약도 종합적으로 논의하겠다”며 포용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 본인의 공약이었던 △민생경제연석회의 구성 △당정청 협력 강화 △여야 5당 대표 회의 제안 △민주정부 20년 집권 플랜 TF 구성 △탕평과 적재적소에 기초한 당직 인선 등을 바로 진행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 대표는 문 의장을 만나 “어제 문재인 대통령과 전화해서 3차 남북 정상회담 때 의원들을 특별 수행원으로 많이 참여시켰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하겠다고 답해줬다. 당대표들이 같이 (북한에) 가는 방법도 있고 국회의장단과 외통위원이 정치색을 덜 해서 그렇게 가는 방식을 검토할 수도 있다. 2000년에 방북했을 때는 각 당 정책위의장들끼리 갔다. 그런데 북쪽과 인원 규모를 논의해야 한다”며 남북관계에서 야당의 협조를 이끌기 위한 방북 계획을 거론했다.

문희상 의장과 국회 차원의 방북을 논의한 이 대표. (사진=박효영 기자)
문희상 의장과 국회 차원의 방북을 논의한 이 대표. (사진=박효영 기자)

김병준 비대위원장을 만나서는 “예전에 청와대 계실 때 당정청 회의를 많이 하지 않았는가. 그런 마음으로 해주길 바란다”며 거듭 협조를 구했고 “(문 의장이 미중일러에 5당 대표들이 같이 가서) 한반도 비핵화 문제도 이야기하고 이런 것들을 정당 외교를 하면 국회 차원에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지난 7월18일 여야 5당 원내대표가 공동으로 미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런 차원에서 북한과 미중일러에 같이 가게 되면 여당은 야당의 협조를 구하기 좀 더 수월해질 수 있다. 사실 구체적인 이슈로 넘어가면 첨예하게 입장이 부딪치기 때문에 공동 일정으로 공감대를 형성한 뒤 그 입장차를 줄일 수 있다는 셈법이 숨어 있다. 

그럼에도 결국 정책 이슈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피해갈 수 없다. 

이 대표와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함께 일한 경험이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 대표는 “민생경제가 어렵다. 대북관계도 굉장히 조심스럽게 잘 풀어가야 하고 균형을 잘 잡아가야 한다”고 말했고 김 비대위원장은 “저희들도 민생 경제를 살리는데 있어서 여야가 있겠는가. 좋은 방향의 정책이 있으면 저희들이 적극 협력하고 한편으로는 저희들 나름대로 대안을 내놓겠다. 대표를 맡으셨으니 여야 간의 대화도 더 되어야 되지 않겠는가”라고 응수했다. 

이어 “지금 당장 미국 쪽에서 보면 우리 자동차에 대해서 25% 관세 부과한다 만다고 하는데 이런 문제는 초당적으로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국익 차원에서 소위 역할을 해야 되지 않는가 생각이 든다. 저희들도 깊이 살펴보고 고민하고 가능한 협의할 것은 협의하고 노력할 것은 같이 노력해야 되지 않겠는가. 다만 기본적인 경제정책에 대한 생각이 달라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저희들 나름대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한다”고 밝혔다.

한병도 수석은 이 대표에게 야당과의 협치를 잘 이끌어달라고 말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한병도 수석은 이 대표에게 야당과의 협치를 잘 이끌어달라고 말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한병도 수석은 “이 대표께서 유능한 정당을 말했고 협치의 중요성을 말했는데 대통령도 똑같은 생각이다. 얼마 전 5당 원내대표를 청와대에 초대해서 3개월에 한 번씩 여야정 상설협의체를 열기로 했는데 그게 실질적인 협치가 될 수 있도록 이 대표께서 역할을 해줄 것이라 생각한다”고 주문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이 대표가 힘도 있고 강단도 있기 때문에 야당을 적극적으로 배려하고 진정한 협치를 위해 집권당이 아우르는 것이 어느 지도자보다 크다고 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현재 한국당에는 홍준표 전 대표가 없다. 유일하게 강성 투쟁을 이끄는 인물이 김 원내대표다. 드루킹 특검을 관철시키기 위해 투쟁 캠프를 꾸리고 단식까지 감행했던 김 원내대표는 기본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국가의 모든 권력을 장악했다는 인식을 갖고 있고 여기서 “한 놈만 팬다”는 일념으로 투쟁의 고삐를 쥐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오늘 예방 일정 중에서 가장 불편한 주제를 많이 꺼낸 김성태 원내대표. (사진=박효영 기자)

김 원내대표는 “지금 대한민국은 국가 권력, 지방 권력도 문재인 대통령의 손에 다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나마 국회마저도 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에 휩쓸리면 안 된다. 진정한 협치를 위해서 많은 것을 가진 집권당의 입장에서 때로는 (야당이) 성가시고 지치게 하더라도 저희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이어 이 대표가 강조하는 국회의 방북에 대해 “3차 남북 정상회담에 국회가 곁가지로 가는 것은 아직 국회 차원의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것 아닌가 우려가 있다. 대통령이 갈 때 같이 따라가는 그런 것 보다는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나오고 미국을 비롯 유엔 안보리 제재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와 북핵 폐기가 아니겠는가”라며 이견을 드러냈다.

미국 정부는 북한이 ‘비핵화 시간표’와 ‘핵 리스트’를 제공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고 그 전에는 종전 선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당도 이와 마찬가지로 실질적인 비핵화 초기 조치가 있지 않고서는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에 대해 회의적이다. 이런 방향에서 여야 방북 문제도 논의되어야 한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원내대표는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이 갑자기 무산되고 4.27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비핵화를 이뤄내고자 하는 미국의 의지가 상당히 강한데 북한의 실질적인 진전이 없어서 국제사회의 우려가 많다. 남북 경제협력이나 연락 사무소 개소 이런 부분이 미국을 비롯 국제사회와 한국 정부가 엇박자를 놓고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이런 부분은 국익 차원에서 신중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아직 비핵화 조치가 진전되지 않아 국제사회의 제재가 지속되고 있는데 한국 정부만 대북 교류의 정도를 높이는 것에 대해 경계한 것이다.

이에 이 대표는 “북미 간에 큰 틀은 잡혔는데 이견을 못 좁힌 부분이 있어서 마지막까지 잘 조율해서 갈 거다. 후진하는 것은 아니고 앞으로 가긴 가는데 우리 기대만큼 빨리 못 가니까 아쉽게 느껴진다”고 답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짧은 인사말 속에 선거제도 이야기를 꺼낸 김관영 원내대표.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관영 원내대표는 “이 대표께서 앞으로 최고 수준의 협치를 야당과 하겠다고 말씀을 해줘서 야당으로서는 상당히 기대가 크다. 특히 최근 대통령께서도 얘기를 해줬던 정치개혁에 관한 과제 선거제도 개편과 개헌 문제에 있어서도 평소에 이 대표가 가지고 있는 소신이 있기 때문에 그 소신에 따라서 앞으로 대한민국 정치발전을 위해서 큰 역할을 해주실 것이라 기대하겠다”며 예민한 선거제도 문제를 거론했다.

이정미 대표는 이 점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주문했다. 

이정미 대표는 “경제 갑질을 민주화하는 것만큼 정치 갑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공직선거법상 10월에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구성돼야 한다. 그리고 내년 4월까지 각 지역구 국회의원의 선거구를 확정하면 D-365가 시작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선거제도를 개혁할 골든타임은 이번 정기국회”라며 “민주당이 처음부터 끝까지 핵심 키를 갖고 있다. 이해찬 대표께서 보다 강력하게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의지를 갖고 끌어가준다면 정의당이 모든 것에 협력할 태도를 갖고 임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에 이 대표는 “결국 정당 지지율만큼 의석으로 반영되지 않는데서 오는 문제점들이다. 이것을 개헌하고 연계시킬 수도 있고 (분리해서) 단독으로 할 수도 있다. 결론은 지지율만큼 의석이 반영돼야 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 의석수가 적다보니 그렇게 나올 수가 없는 구조라서 좀 더 정개특위(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같은 곳에서 협의를 하고 어느 쪽이든 양보를 해야 해결될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내각제 같은 것이 아니고 4년 중임 대통령제가 유지된다면 저희 당으로서도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미 대표도 선거제도 개혁을 압박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정미 대표도 선거제도 개혁을 압박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정동영 대표도 “그동안 국민을 위한 당대 정치인의 최고 봉사는 정치개혁이라고 강조해왔다. 지금 선거제도 개혁을 주창하고 있는데 문 대통령도 정치개혁에 있어서는 최대 우군이라고 생각한다. 이 대표께서 정치개혁에 참 우군이 될 것으로 기대를 가지고 큰 희망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독주했다. 거대 양당의 한 축인 자유한국당은 대구·경북 외에 텃밭인 경남·부산·울산 광역단체장을 내줬고 풀뿌리 조직인 지방의회도 민주당이 장악한 경우가 많았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동영 대표는 이해찬 대표에게 선거제도 개혁의 우군이 되어달라고 주문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50% 득표율로 90% 의석을 점유한 민주당이 그 기득권을 포기하고 선거제도 개혁에 나서기 망설여지는 지점이다. 시대적 당위를 거부할 수도 없어서 나서긴 나설테지만 민주당은 그 반대급부로 뭔가 얻어내려는 모양새다. 이 대표는 개헌 권력구조에서 야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의 중재안인 총리추천제나 한국당의 이원집정부제 요구를 무마하기 위해 선거제도 개혁의 조건으로 4년 중임 대통령제를 관철시키려는 의중을 보였다.

정의당은 문재인 정부의 집권 이후 많은 협조를 했지만 최근 혁신성장 기치 아래 규제완화(은산분리 완화와 규제혁신 5법 등)가 진행되는 흐름에 대해 강하게 견제하고 있다. 또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경제민주화 조치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정미 대표는 “지금 소득주도성장론이 연일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소득주도성장론을 제대로 밀고나갈 수 있는 경제 생태계를 민주화하는 일이 너무나 더뎠기 때문에 이런 공격 앞에서 속절없이 정부가 당하지 않았는가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대통령께서도 장하성 정책실장도 직접 나와 변함없이 더 힘차게 추진하겠다는 말을 했기 때문에 더 잘 가동되기 위해 (경제민주화) 법과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윤소하 원내대표는 규제완화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윤소하 원내대표는 규제완화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윤소하 원내대표도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께도 말씀드렸지만 본래의 촛불 정부로서 이상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는데 이것이 난기류로 국민과 정치권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규제완화 법률이나 이런 부분들을 당에서 나서서 이 대표의 진두지휘 하에 많은 의견들 모아주시고 신중하게 저희들 걱정을 좀 덜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 대표는 “경제상황은 잠재 성장률 자체가 많이 떨어져 있어서 금방 회복되진 않을 것이다. 혁신 경제로 한다고 해서 금방 회복되는 것도 아니고 (소득주도성장과) 두 가지를 조화롭게 시간을 가지고 해결해야지 그냥 경제 부양책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어렵더라도 경제 체제를 강화(수출 대기업 주도의 경제 질서를 바꾸는)시키는 쪽으로 가야한다”며 호응했다.

이 대표는 집권 여당의 수장으로 문재인 정부 중후반기 개혁 정책의 성공을 이끌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야당과의 협치가 필수적이다. 상황은 녹록치 않다. 특히 이 대표 체제의 민주당은 당장 샌드위치로 끼어있다. 

좀 더 진보적인 정의당과 평화당 내 일부 의원들이 은산분리 완화와 최저임금법(산입법위 확대) 통과 등 규제완화가 골자인 혁신성장에 대해 비판적이고, 좀 더 보수적인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당장 폐기하라고 연일 맹공 중이다.

선거제도 개혁과 개헌 권력구조 문제도 복잡한 함수가 자리잡고 있다. 이 대표 체제가 어떻게 산적한 과제들을 풀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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