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의원 정수 증원 언급한 국회의장, 이해찬 대표의 선거제도 개혁에 소극적인 명분, 정수 해결되도 개헌 권력구조 문제 있어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문희상 국회의장이 국회의원 정수 증원을 통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문 의장은 3일 보도된 <the 300>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국회의원의 월급을 줄여 그 재원으로 의원수를 늘리면 국민들도 선거구제 개편에 동의할 것이다. 촛불혁명의 완성은 개헌이고 선거구제 개편이 개헌의 핵심이다. 총선 때 득표수에 비례해 의원수를 정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당연한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의원 정수를 현재보다 10% 대략 30명을 늘려야 한다. 의원을 늘리는데 국민들의 반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현재 300명이 쓰는 예산을 330명이 쓰도록 하면 된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문 의장은 민주당의 소극성과 달리 선거제도 개혁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문 의장은 민주당의 소극성과 달리 선거제도 개혁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문 의장의 이런 발언은 당장 선거제도 개혁에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대표는 그동안 비례대표 정수를 늘리려면 지역구 의원수를 감축해야 하기 때문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가 쉽지 않다는 현실론을 내세워왔다. 

이 대표는 8월19일 국회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현재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필요한 비례대표 정수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그게 충분히 소수자의 권리를 반영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300명이라는 제한된 숫자 안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려면 비례대표를 늘릴수록 지역구 정수를 줄여야 한다. 그러면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생긴다. 각 당과 협의를 해봐야 한다. 합의를 통해서 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시간이 걸릴 것이다. 기본적으로 정당 지지율 만큼 의석에 반영되는 게 옳다고 본다. 그럴려면 지역구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발언했다.

이해찬 대표는 현실적인 기득권 내려놓기 외에 선거제도 개혁의 어려울 수밖에 없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해찬 대표는 현실적인 기득권 내려놓기 외에 선거제도 개혁의 어려울 수밖에 없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 대표의 이런 판단은 그 자체로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선관위(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15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권고한 적이 있는데 이에 따르면 국회의원 총원 300명을 기준으로 지역구 대 비례대표 비율을 2대 1로 하는 것이다. 총원을 그대로 두고 비율을 조정하면(현행 300명 중 지역구 253명과 비례대표 47명에서 각각 200명과 100명으로) 현역 지역구 의원들의 강한 저항이 예상된다. 

하지만 현행 253명 지역구 의원수의 50%인 127명으로 비례대표 수를 증원하기 위해 총원을 380명으로 늘리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 실제 야당과 시민사회에서는 지역구 의원들의 저항을 감안해 정수 증원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독주했던 민주당 외에 원내 4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은 1등 외에 나머지는 죽은 표가 돼 버리는 현행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거대 양당의 한 축인 한국당마저 단순다수대표제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강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선관위 안으로 보면 이런 거다. 총선 비례대표제를 전국 6개 권역으로 나눠 각 권역에서 정당 득표율대로 의석수를 배정하는 것이다. 예컨대 수도권 권역에 100명의 의원이 할당됐고 A정당이 40%의 득표율을 기록했다면 총 당선자가 40명이 되는 것이다. 즉 지역구 당선자가 14명이라면 나머지 26석을 비례대표로 확보하게 된다. 

문 의장이 이 대표와 민주당을 선거제도 개혁에 나설 수 있도록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박효영 기자)
문 의장이 이 대표와 민주당을 선거제도 개혁에 나설 수 있도록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박효영 기자)

그러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50%의 득표율로 지방의회 의석의 90%를 점유했던 민주당 입장에서는 어찌됐든 자기 기득권을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구 의원들의 저항을 피해갈 수 있는 정수 증원의 해법이 있음에도 이 대표는 지역구 감축을 명분으로 현실적 어려움을 부각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국민의 국회 불신이 극심하더라도 정수 증원을 통해 국회의 구태를 극복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설득력있게 제시된다면 꼭 반대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의원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논의를 지체시키는 요소로 증원 문제를 염두에 뒀을 수도 있다. 

이 대표가 지금까지 발언한 것을 토대로 보면 선거제도 개혁을 해야 한다는 당위보다는 현실적 논의의 어려움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 명분은 크게 ‘정수’와 ‘개헌’ 두 가지다. 이를테면 △비례대표 정수 부족 △지역구 정수 감축과 저항 △개헌 권력구조와 선거제도의 깊은 연관성 △권력구조 안을 두고 민주당과 야당의 간극이 매우 큼 등이 있다.

이 대표는 “(개헌과 선거제도를) 분리할 수도 있고 연계할 수도 있고 그렇다. 선거구제 개편은 헌법 사항은 아니다. 권력구조와 연계되기 때문에 같이 논의하는 것이지 법률 사항이기 때문에 분리해서 다룰 수는 있다. 다만 권력구조와 연계되기 때문에 완전 분리는 안 된다는 그런 말”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8월9일 KBS <최강욱의 최강시사>에서 “2개(개헌과 선거제도 개혁)를 연계해서 해야 되는데 우선 선거구제만 바꿀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개헌하고 같이 해야지. 그래서 야당이 정부와 여당의 안(4년 중임 대통령제)에 동의하면 저희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얼마든지 확대할 수 있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다시 말하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개헌 권력구조 안으로 원하는 4년 중임의 대통령제에 야당이 협조하면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적극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같은 날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부안은 4년 중임 대통령 중심제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다른 당은 명확한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아서 논의를 더 해봐야 한다. 지금까지 나온 뉘앙스로 봐서는 내각책임제나 아니면 이원집정부제 정도를 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건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어서 좁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거제도 개혁은 개헌과 같이 하는 것이 좋은데 개헌의 핵심인 권력구조와 관련 여야 입장차가 크다는 볼멘소리가 부각되는 상황이다.

현실적인 기득권 내려놓기 외에 이렇게 이 대표가 선거제도 개혁에 적극적이지 않기 위해 내세우는 명분은 정수와 개헌인데 문 의장까지 증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으니 이제 둘 중 절반은 거론하기 어렵게 됐다.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문 의장의 중재 역할이 더욱 커졌다. (사진=박효영 기자)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문 의장의 중재 역할이 더욱 커졌다. (사진=박효영 기자)

문제는 개헌과의 연관성이다. 

한국당은 국정농단 이후 정권을 다시 잡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최대한 권력을 국회로 가져오려고 한다. 한국당은 제왕적 대통령제 비판을 명분으로 사실상 외치는 대통령이 내치는 총리가 맡는 이원집정부제를 주장하고 있다. 야3당(바른미래당·평화당·정의당)은 개헌 공조를 통해 총리추천제를 제시했고 이는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국회의 입김이 들어간 추천 총리를 둠으로써 적절한 견제 장치를 마련한 절충안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두 가지 안을 철회시키고 4년 중임 대통령제를 관철시키기 위해 선거제도 개혁을 조건으로 내거는 모양새다. 의원 정수 문제가 풀리더라도 향후 선거제도 개혁은 개헌 문제로 지지부진해질 가능성이 높고 여기서 여야 협상의 묘가 발휘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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