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반대, 국회의장실 여론조사 편향성 문제제기
바른정책연구소 실시 여론조사도 크게 다르지 않아
민주당과 한국당 사이에 있는 바른미래당 그 안에 회의론과 낙관론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전국민이 4.27 남북 정상회담에 환호했고 이를 위장평화쇼로 폄파했던 자유한국당은 지방선거에서 심판받았다. 이것은 해석의 이견이 없는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판문점 선언에 대한 국회 비준을 두고서는 국회에서 이견이 많다.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바른정책연구소 소장)은 6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상욱 의원은 바른정책연구소의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에 대한 국민 여론이 매우 신중하다고 주장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지 의원은 최근 국회의장실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비준 동의에 국민 71.8%(국회의장실이 여론조사기관 ‘갤럽’에 의뢰해 8월21일~22일 전국 거주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했고 응답률 14.1%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그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가 지지한다는 것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겠다며 자체 여론조사 결과 73%(바른정책연구소가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9월3일~4일 전국 거주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실시했고 응답률 12.6%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의 국민이 예산검토 후 비준 동의한다는 것을 지지했다고 밝혔다. 

지 의원이 문제삼은 질문(①)과 바른정책연구소(②)에서 다시 물어본 질문은 아래와 같다. 

①지난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판문점 선언이 법적 효력을 얻으려면 국회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ㅇㅇ님께서는 판문점 선언에 대해 국회가 비준 동의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②현재 정부는 도로 철도 사업 등 북한과의 경제 협력을 위해 판문점 선언에 대한 국회 비준 동의를 요구하고 있다. 남북 경제협력에는 추가적인 예산이 소요되는데 선생님께서는 국회가 즉각적인 비준 동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충분한 예산 검토 후에 비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지 의원은 단순히 비준 동의 여부만 이분법적으로 물어본 조사결과를 두고 (갤럽이) 마치 비준 동의 여론이 절대적인 것처럼 호도했고 문희상 국회의장이 이를 정기국회 개회사를 통해 인용한 사실을 꼬집었다.

자세히 보면 ①은 “법적 효력을 얻으려면 국회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표현으로 비준 동의에 대한 지지를 유도했을 수 있다. 그러나 ②도 예산이 들어간다는 사실 그리고 “즉각적인”과 “충분한 예산 검토 후”라는 표현을 대비시켜 마치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에 국민들이 호의적이지 않은 답변을 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문장 구성이 이뤄졌다. 

(사진=박효영 기자)
지 의원은 판문점 선언에 대한 비준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지 의원은 기자의 관련 질문에 “내가 문맥을 선택한 건 전혀 없다. 가장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하게 설문을 만들어달라(리서치앤리서치)고 해서 받은 거다. 그니까 문제는 뭐냐면. 국회의장실이 의뢰한 조사는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에 동의하냐고 이렇게 물었는데 그러나 지금 비준하면 국가 재정 부담이 있다. 그럼에도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냐는 조건들을 넣은 것이다. (국회 비준에 따른 긍정적인 부가정보와 부정적인 부가정보가 있는데 둘을 아예 언급하지 않고 물어보는 것이 더욱 객관적인 게 아니냐는 질문에) 여론을 물어볼 때 반대하는가 동의하는가 그렇게만 물어보면 그게 뭔지 (국민이) 알 수가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애초 연구소에서 리서치앤리서치에 여론조사를 의뢰할 때 어떤 의도한 결과가 도출되도록 질문을 구성해달라고 주문을 했다고 볼 수 없고 고객이 그런 요구를 해도 여론조사 기관이 그걸 들어주기도 어렵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모든 자료가 공개되기 때문이다. 

관련해서 리서치앤리서치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선관위에 다 공개해야 하고 여론조사 기관의 신뢰성을 위해 그런 일(답변 유도형 질문지 구성)은 있을 수 없다. 고객이 그런 요구를 하면 처음부터 너무 편향적이면 곤란하다고 말을 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①과 ②의 질문은 둘 다 완벽히 객관적이라고 볼 수 없다. 어떤 이슈에 대한 부가정보 자체를 언급하지 않고 물어보거나,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둘 다 언급해서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 의원의 이날 기자회견은 기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사진=박효영 기자)
지 의원의 이날 기자회견은 기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사진=박효영 기자)

더구나 지 의원의 이날 기자회견 자체는 판문점 선언에 대한 긍정적 여론을 반론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있다. 지 의원은 4일 성명을 내고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의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협력 발언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그 근거로 3가지를 들었다.

△완전한 비핵화 없는 판문점 선언의 이행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미국의 대북제재 원칙에 위배 △국민들에게 얼마나 경제적 부담이 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북한에 백지수표를 써주는 것 △비준 논의에 바른미래당이 견지해 온 신중한 대처 방향에 어긋남

손 대표는 그날 오전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기본적으로 남북평화 문제에 우리 당이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판문점 선언 비준 문제도 적극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국제관계도 있으니 너무 서두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는데 지 의원은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지 의원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 과정에서 당의 강령과 가치를 합의할 때도 남북 관계에 대한 원칙이 있었고 특히 당내 많은 의원들이 비준 동의에 회의적이라고 주장했다.

근본 뿌리로 볼 때 더불어민주당 출신인 국민의당 파와 자유한국당 출신인 바른정당 파 간의 안보 철학은 당연히 다를 수 있다. 

지 의원은 성명에서 “손 대표 취임 후 하루 만에 아무런 상의도 없이 나온 발언이다. 당 지도부는 대표의 돌출 발언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촉구했는데 사실 손 대표는 분명 “국제 관계도 있으니 너무 서두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단서를 달았다. 

손 대표는 과거 현재의 한국당 소속 경기지사 일때도 햇볕 정책에 지지 의사를 표명한 적이 있었다. (사진=박효영 기자)
손 대표는 과거 현재의 한국당 소속 경기지사 일때도 햇볕 정책에 지지 의사를 표명한 적이 있었다. (사진=박효영 기자)

바른미래당이 좀 더 강경한 한국당만큼의 수위가 아니라면 국회 비준 여건은 북한의 완벽한 비핵화 이후가 될 수 없고 초기적 비핵화 조치 직전 직후일 것으로 가늠해볼 수 있다. 확실한 것은 지금 당장 해주자는 차원은 안 되고 따질 것은 따져보자는 ‘신중론’인데 여기에는 국민의당 파와 바른정당 파가 모두 수렴될 여지가 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6일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 “여야 모든 정치세력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동의안을 처리하고 전 세계에 한국의 강력한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자는 대통령과 여당의 요청에 바른미래당은 적극적인 자세로 임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어 “다만 비준 동의안 처리가 한미동맹의 균열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일부 야당(한국당)의 우려도 경청할 가치가 있다”며 “지금 시점에서는 한반도 비핵화와 판문점 선언 지지를 위한 국회 차원의 결의안을 채택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판문점 선언 비준을 지지함에도 당내 여러 반대 의사를 의식해서 단서 조항을 많이 달았다. (사진=박효영 기자)
김 원내대표는 판문점 선언 비준을 지지함에도 당내 여러 반대 의사를 의식해서 단서 조항을 많이 달았다. (사진=박효영 기자)

김 원내대표는 궁극적으로 “결의안을 통해 국회의 확고한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전 세계에 표명하고 야당의 우려를 반영해 굳건한 한미동맹 유지와 북한에 한반도 비핵화의 책임있는 이행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았으면 한다. 국회의 결의안 채택 직후 비준 동의안 처리에 관해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본격적으로 의논했으면 한다”고 결론을 맺었다.

민주당·민주평화당·정의당이 긍정론이고 한국당이 부정론이라면 그 사이에 있는 바른미래당의 지 의원은 회의적 신중론이고 김 원내대표는 낙관적 신중론이라고 볼 수 있다. 손 대표나 김 원내대표 두 지도부 인사가 비준 문제에서 낙관적인 만큼 지 의원은 여기에 견제구를 의도적으로 날리를 측면이 있다. 바른미래당의 대북 문제에 대한 당론이 그렇게만 비춰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질적인 두 정파가 통합해 만든 바른미래당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정체성과 화학적 결합 문제가 대두됐었는데 판문점 선언의 비준 문제가 이를 판가름할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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