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일본의 역사적 책임을 강력하게 촉구, 트럼프의 변화가 있기에 아베도 급 태세 전환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한반도의 평화구축 과정에서 북일 관계 정상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북일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도록 적극 지지하고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우리 시간으로 26일 자정 유엔 뉴욕본부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민감한 양국 관계가 있음에도 진솔하게 소통했다.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민감한 양국 관계가 있음에도 진솔하게 소통했다. (사진=청와대)

문 대통령은 “아베 총리의 메시지(평양 남북 정상회담 이전에 요청)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충실히 전달했고 이에 대한 답을 들었다”며 “평양 회담 결과에 대해 일본에서 환영하고 지지해준 것에 다시 한 번 감사하다”고 발언했다.

한일 관계는 역사 문제로 인해 외교적으로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독도, 위안부, 역사교과서,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 일본 극우 정권의 고집과 한국 정부의 반발은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 정부와의 외교적 관계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문재인 정부는 역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일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던 박근혜 정부의 극단적 상호주의와는 다르다. 투트랙 분리 전략으로 역사 문제 해결을 요구하되 별개로 경제 등 여타 분야에서는 교류협력 증진을 도모한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현지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이 비공개 회담을 통해 아베 총리에게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번영의 새 시대를 여는 과정에 북일 대화와 관계 개선도 함께 추진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서도 북일 관계를 정상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2017년 총회 연설 때 북핵 개발을 규탄하고 국제사회의 강한 압박을 호소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와 핵 미사일 문제의 해결을 위해 불행한 과거를 청산해 국교 정상화를 지향하는 일본의 방침은 변함이 없다. 북한이 가진 잠재력이 발휘되도록 도움을 아끼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위해 “김 위원장과 직접 마주할 용의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아무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한 발짝 다가갔기 때문에 아베 총리의 스탠스도 급변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문 대통령과의 비공개 회담에서 종전 선언에 대한 논의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 협상의 큰 틀이 비핵화 조치와 체제보장을 맞교환하는 것이라면, 북일 대화의 기본 전제는 일본인 납치자 문제와 역사적 만행에 대한 사과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정상 국가인 한국과 달리 전체주의 국가인 북한은 민족 주체성의 측면에서 배로 민감하다는 점이다. 그동안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의 관제 언론에서는 강도 높은 표현을 써가며 일본의 행태를 규탄해왔다.

23일 노동신문은 조희승 일본연구소 상급연구원의 논설문의 형태로 “아베를 비롯 일본 정부 당국자들과 자민당의 고위 인물들은 일본군 성노예 범죄를 어떻게 해서나 역사의 흑막 속에 묻어버리고 그에 대한 국가적 책임에서 벗어나 보려고 필사적으로 발악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이어 “20만명에 달하는 조선 여성들과 그밖의 수많은 아시아 여성들을 조직적으로 윤간한 다음 대량 학살하고도 아무런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고 법적 처벌도 받지 않고 있는 것이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과거 성노예 범죄를 비롯 모든 반인륜 죄악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서는 국제사회의 한 성원으로 떳떳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에 대해 철저히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베 정부가 정치적으로 저울질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극우 지지층을 결집하는 차원에서 평화헌법 개정(전쟁가능 국가)을 추진하고 일본 제국주의 시절의 만행을 축소·은폐하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남북이 역사적 반성을 요구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수용되는 것이 쉽지 않다. 

비공개 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아베 총리에게 역사적 문제에 대한 여러 사안들을 직접 거론했다. (사진=청와대)
비공개 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아베 총리에게 역사적 문제에 대한 여러 사안들을 직접 거론했다. (사진=청와대)

김 대변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아베 총리에게 △화해치유재단의 해산 가능성 시사 △12.28 위안부 합의 파기나 재협상까지는 요구하지 않겠음 △박근혜 정부와 당시 사법부가 부당하게 강제징용 소송을 지연시켰기에 다시 법적 절차를 밟게될 것 등 민감한 역사 문제를 거론했다.

문 대통령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국민의 반대로 화해치유재단이 정상적 기능을 못 하고 고사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혜롭게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고 사실상 해산을 예고했다.

화해치유재단은 2015년 12월28일 박근혜 정부가 졸속으로 체결한 위안부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가 10억엔을 출연해 만들어진 재단으로 일부 피해 할머니들은 지원금을 수령 거부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합의를 비롯 과거 1965년 6월22일 맺은 ‘한일 협정’을 근거로 더 이상 식민지 범죄에 대한 법적 배상 책임은 끝났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위안부 할머니들과 전쟁범죄 피해자들은 개인 차원의 민사적 손해배상 청구권은 살아있으며 무엇보다 당사자의 뜻을 배제한 박정희·박근혜 부녀 대통령의 졸속 합의였다는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위안부 할머니들은 26년째 서울의 주한 일본대사 앞에서 수요 집회를 개최하고 있고 △일본 정부의 진정어린 사죄 △법적 배상 △교과서에 기록 등을 요구하고 있다.
 
김 대변인은 “아베 총리가 회담에서 위안부 문제와 강제 징용자 문제 등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을 (문 대통령에게) 설명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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