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시인 / 수필가
박종민 시인 / 수필가

[중앙뉴스=박종민] 독수리가 창공을 날며 예리한 눈을 번득여가며 지상에 숨겨진 먹잇감을 찾는다. 백로가 실개천에서 가만가만 긴 다리를 세워 오목한 눈을 부릅뜨고 먹거리를 찾는다.

박쥐도 생쥐도 들고양이도 풀무치도 메뚜기도 무당벌레도 아주 작은 날 파리마저도. 인간을 비롯한 이 땅위에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체들은 먹잇감과 먹거리를 찾아 늘 쉴 새 없이 움직인다. 먹히고 먹는 생태계의 자연적인 위계질서이다.

대표주자인 인간이 먹잇감과 먹거리를 찾아 분투한다. 생물들의 생존경쟁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로 모두가 살아나가기 위한 생의 치열한 몸부림이리라. 죽지 않고 살아 남기위해서 펼쳐지는 먹고 먹히는 먹거리확보가 세상사의 생존전략이며 이치 아니겠나.

이와 같은 생태계의 생존질서는 자연적인약육강식의 법칙과 철칙에 따름이다. 1차적인 먹거리로 먹고 먹히는 먹잇감과 먹거리의 범주는 생명유지를 위해서 반드시 흡입해야 만 되는, 먹어 살기에 적합한 식품 식사이어야 한다.

식량 식품으로서 즉, 푸드(Food)나 식사(Dining)에 국한 된 것이다. 먹어야 살고 먹을 수 있어야 살아남기 마련이기에 생태세계의 존재가 그렇게 자연스레 천연적인 생존질서로 명확히 잡혀 있는 것이리다.

  소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사회는 좀 다르게 생태환경 속 먹잇감과 먹거리가 독특하고 별난 엉뚱한 구석이 따로 있다. 인간들의 생활의식 안엔 먹잇감과 먹거리는 비단 신체의 근력유지를 위한 영양소에 국한돼 있질 않은 것이다.

명예를 위한 먹잇감, 명성을 위한 먹거리, 지위와 직위의 체면유지를 위한, 심지어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욕구에 따라 먹고 먹히는, 강자가 약자를 죽이고 죽는 먹잇감과 먹거리가 따로 있다.

지위와 명예 명성 체면유지가 목숨이라 친다면 그것의 유지를 위한 먹잇감과 먹거리와 별도로 있다. 이에 부질없는 인간은 죽을 줄 모르고 거기 매달린다.

그걸 먹어야 명예 명성 지위 직위와 위상 체면이 살아 유지되는 것이기에 그것 역시 먹잇감과 먹거리의 범주라 할 수 있겠다싶다. 그 부류의 사람들은 여러 가지 부적절하고 부도덕적인 과정으로 먹잇감을 흡입한다. 분별없는 못난 인간은 돈과 재물과 인격체를 먹잇감으로 마구 먹어댄다.

극약독약인줄도 모르고 먹고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 못하고 먹는다. 인간이기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지각과 인격을 가진 인간의 신분이라면 자숙하고 자제하며 사리를 분별해야 되리라.

  먹잇감과 먹거리의 실체가 무엇인가? 아무리 잡식성을 가진 인간이라도 인체의 생체유지를 위한 푸드와 식사는 분명히 구분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판별하지 못하고 있다.

먹을거리를 제대로 골라 챙겨먹으면 살고 먹어선 안 될 먹지 못할 먹거리를 잘 못 선택해먹으면 죽는 게 섭리(攝理)이며 이치다. 이게 생물이 살아 움직이고 있는 생태세상사의 철리(哲理)가 아닌가.

생체의 생명유지를 위한 먹을거리를 찾아먹고 먹잇감을 찾아 쟁취하려는 먹이사슬은 생태계를 유지해나 온 지극히 자연스런 철학적 원칙이며 법칙인데 이런 지극히 순한 이치를 거스르고 어기는 자가 많이 있다.

명성명예 허영허욕에 술수를 쓰고 변칙하고 변수를 둬 먹잇감 먹거리를 탐한다. 그러다가 그의 생체는 사그라진다. 영육이 죽고 만다. 육체와 영혼 모두 소멸되는 것이다.

돈과 재물을, 인간과 인격체를 먹잇감과 먹거리로 삼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자, 거기 치중하는 인생은 병마(病魔)를 만나게 된다. 이것 또한 생태세계의 준엄한 철학이다. 진정한 먹잇감과 먹거리의 실체를 알고 먹어야 생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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